일감 몰아주기 의혹 관련 압수수색 후 유의미한 성과…윤 대통령의 ‘지배구조 선진화’ 주문 작용 분석도
하지만 최근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연임을 시도했던 구현모 전 대표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KT를 상대로 한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KT 등을 겨냥해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며 ‘주인 없는 회사’들의 지배 구조 선진화를 강조한 탓에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끊이지 않는 KT 흑역사
KT는 민영화 이후, 남중수·이석채·황창규 등 전 대표들이 정권교체 시기마다 검찰 수사나 정치적 외풍에 시달리던 흑역사가 있다. 이 가운데 연임까지 완주한 인물은 황창규 전 대표가 유일할 정도다.
남중수 전 대표는 2008년 연임에 성공했으나, 같은 해 11월 배임 혐의로 구속되며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당시 윤갑근 부장검사)가 수사에 나섰고, 납품업체와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남중수 대표와 조영주 KTF 전 사장 등이 구속기소됐다.
그 후 취임한 이석채 전 대표 또한 취임 3년 뒤 연임을 이어갔으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2013년 10월,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당시 양호산 부장검사)는 이석채 KT 회장의 배임 혐의로 KT 등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실시했다. 참여연대가 KT의 스마트애드몰,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사업 등 무리한 사업 추진이 수백억 원의 배임에 해당한다며 고발한 건에 대한 강제수사였다. 그러자 이석채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했고 결국 100억 원대의 횡령,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다만 4년여의 재판 끝에 이 전 대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음 취임한 황창규 전 회장은 역대 KT 대표 가운데 처음으로 연임과 임기 완주에 성공했다. 하지만 연임 기간 내내 정치권 공격에 시달렸고, 이 과정에서 불법 비자금 쪼개기 후원 의혹으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는 데 성공했지만, 대신 이 과정에서 황창규 회장 다음으로 대표가 된 구현모 대표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결국 구현모 전 대표는 7월 5일 1심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KT 대표 연임 시도 문제 삼았던 대통령실
정권 교체기마다 등장한 KT를 향한 검찰 수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한 뒤에도 계속됐다. 구현모 대표는 연임을 시도했고 올해 초 이사회로부터 차기 대표로 낙점됐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대표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며 공개경쟁 방식으로 재추진했고, 결국 구현모 대표는 후보자 자리에서 사퇴했다. 시민단체 고발에 따른 검찰 수사 가능성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 나왔다.
후임으로 구 대표의 측근인 윤경림 KT 트랜스포메이션부문 부문장(사장)이 지명됐지만 대통령실 안팎에서 KT 이사회의 윤 후보자 낙점을 놓고 ‘이권 카르텔’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이사회를 하루 앞두고 윤 후보도 사의를 표명했다.
#구속영장 청구까지 염두에 두고 진행 중인 수사
구현모 대표와 윤경림 사장 사의 때만 해도 검찰 수사는 압박용으로 풀이됐었다. 하지만 사건이 배당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최근 KT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 관련 수사 성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이뤄진 압수수색을 통해 혐의를 입증할 유의미한 증거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 20일 구현모 전 대표는 물론, 남중수 전 KT 대표 및 박종욱 현 대표이사 직무대행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 10여 곳에 수사팀을 보내 혐의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KT 부동산사업단 단장 홍 아무개 씨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사건 핵심 인물로 꼽히는 황욱정 KDFS 대표를 구속한 지 엿새 만이었다.
검찰은 KT 자회사 일감을 KDFS에 몰아준 것이 ‘비자금 저수지’로 활용하기 위함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구속된 황욱정 대표는 허위 자문료를 지급하거나 자녀를 직원으로 허위 등재하는 식으로 회사 돈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이 전직 경영진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황 대표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구 전 대표, 남 전 대표를 언급한 녹취록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전 대표는 아내를 KDFS의 고문에 이름을 올리는 방식으로 돈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구 전 대표 등을 소환할 방침이다. 비자금 추적 결과에 따라 이번 사건이 정치권 상대 로비 의혹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건 흐름에 밝은 법조인은 “사건 초반에만 해도 정권 때마다 반복됐던 KT 대표의 개인적인 의혹 수준이었다면, 현재는 KT 전직 대표들의 구조적인 비자금 창구를 겨눈 큰 사건으로 확대되는 수순”이라며 “구 전 대표에 대해서는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도 거론된다”고 귀띔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있지만, 검찰 수사 더 빨라
사실 일감 몰아주기는 국세청과 공정위 조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6월 26∼28일, KT본사 그룹경영실과 SCM전략실, 재무실 등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해 다량의 자료를 확보했다. 공정위보다 늦게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더 빠르게 치고 나가는 모양새다.
자연스레 공정위 조사보다 검찰 수사가 먼저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통상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사건은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가지고 있다. 공정위 고발 후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검찰이 먼저 수사하고 기소 직전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 외에 횡령과 배임까지 포괄적으로 수사하는 방식이다.
KT 사건 흐름에 정통한 법조인은 “처음 고발이 이뤄질 때만 해도 검찰 수사는 정부가 원치 않는 인사를 강행하려 했던 대표와 이사회에 대한 압박 차원이었다면, 지금 검찰 수사는 KT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드러나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상황”이라며 “주인 없는 회사에 대해 제대로 된 인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 공정위 조사와 맞물려 KT 이사회도 구성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