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전북 경기·콘서트 등 엑스포 유치전 내세워 홈 경기장 사용…시, 농구단 떠난 뒤에야 재유치 경쟁도
연이은 해외 클럽의 인기몰이는 '한국 축구의 현재이자 미래' 이강인이 소속된 파리생제르맹 초청경기에서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파리 유니폼을 판매하는 정식 발매일부터 이강인의 이름이 새겨진 셔츠를 사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 같은 열기에도 일부 축구팬들은 쓰린 속을 달래고 있다. 허탈감을 감추기 어려운 이들은 부산 아이파크 팬들이다.
#아시아드경기장 가변석 일시 철거
파리의 초청경기 장소는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이다. 일본에서 프리시즌을 보내다 김해공항으로 입국하는 파리 구단의 사정을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대팀은 전북 현대다. 전북은 2000년대 후반부터 K리그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며 명실상부 명문 구단으로 성장했다. 빅클럽 초청경기에 K리그의 빅클럽으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연고지가 아닌 부산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부산 아이파크 구단으로선 안방에서 남의 잔치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부산은 파리 초청경기인 3일에서 이틀이 지난 5일 천안과 홈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친선전을 위해 공식전 일정을 변경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경기 장소도 문제로 지적됐다. 부산아시아드경기장은 수용인원 5만 이상의 대형 경기장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치렀고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이다. 규모 면에서 대형 이벤트를 치러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부산은 경기장 형태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 홈구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종합경기장 특성상 축구경기 관전이 불편할 수 있다. 이에 육상트랙에 가변석을 설치해 더 가까이서 축구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환경을 팬들에게 제공해왔다.
파리와 전북의 경기에서는 이 가변석이 일시 철거된다. 관전 시야보다 많은 인원 수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부산 구단이 홈구장에서 쫓겨나는 모양새가 됐다. 이틀 사이 가변석 재설치가 어려운 탓이다. 가변석은 설치에만 시일이 걸릴 뿐 아니라 설치 이후 안전 진단도 받아야 한다.
#부산광역시에 대한 섭섭함
이 같은 '불편한 상황'에도 부산 개최를 강행한 배경에는 엑스포 유치 기원이라는 목표도 담겼다. 부산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파리 초청경기 이전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연 바 있다. 시는 엑스포 유치전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정작 연고 구단은 시의 외면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산 구단 팬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부산 연고 팀이기에 부산에서 개최 시도를 하고 있는 엑스포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부산시의 행태는 '너희는 신경 쓰지 않아'다. 부산시의 스포츠 행정은 부산 아이파크를 아프게 하고 있다."
부산 구단 서포터즈 P.O.P 측에서 전한 말이다. 이외에도 이들은 "구단은 아시아드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임대 계약이 돼 있다"며 "어떤 도시는 연고 구단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장 위탁운영권을 주거나 대관료를 감면해주기도 한다. 반면 부산시는 기부채납 기간이 종료된 클럽하우스까지도 사용료를 내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파리 초청경기 이후 부산광역시청 앞 항의 시위를 예고하기도 했다.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을 향해서는 "'아이파크 축구단이 국내 최고, 아시아 최고의 팀으로 발전하길 부산시민과 함게 염원한다'는 글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지금 부산의 스포츠행정이 이 내용과 맞다고 보는가"라고 일갈했다.
시와 대립각을 세워서 좋을 것이 없는 구단에서도 공식적으로 "경기장 관련 이슈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힐 정도다. 일시적인 홈 경기장 변경은 시즌권을 구매한 팬 좌석 배정 등 구단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이들이 홈 경기장에서 쫓겨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10월 BTS 부산공연, 지난 5월 드림콘서트, 6월 A매치 등 엑스포 유치 기원 관련 행사가 열릴 때마다 부산 구단은 안방을 내줘야 했다. 이런 일이 잦다 보니 불만을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구단의 미래도 팬들의 분통을 터지게 하는 점이다. 부산시는 2026년부터 사직야구장 재건축 공사를 계획하고 있다. 그사이 부산 연고 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KBO리그 경기는 야구장으로 개조된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치를 전망이다. 부산시가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시아드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부산 아이파크 구단은 공식적인 협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가 아시아드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실현된다면 아이파크 구단은 그간 대체 홈구장이었던 구덕운동장도 사용하지 못할 전망이다. 사직야구장 재건축 기간에 구덕운동장 재건축도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파크는 아시아드보조경기장에 둥지를 틀어야 할 판이다. 보조구장은 5000석 미만의 관중석 규모로 K리그 최소 규정(1부리그 1만 석, 2부리그 5000석)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고지 내 세미프로 구단인 부산교통공사 축구단과 교통정리도 필요하다.
#'구도 부산' 애칭 무색
부산시는 아이파크뿐 아니라 다양한 종목의 구단들과 행정지원 등을 놓고 갈등을 벌인 바 있다. 국내 제2의 도시로서 종목마다 특색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구도'라는 애칭이 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부산은 프로농구 원년부터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정착한 '농구 중심지'였다. 허재, 강동희, 김영만 등 숱한 스타들이 거쳐갔다. 현대모비스로 모기업이 바뀐 이후에는 KT 농구단이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KT의 연고지는 2021년 여름부터 수원으로 변경됐다. KT의 연고 이전 배경에는 구단과 모기업의 사정이 있었으나 부산시와 갈등도 있었다. KBL이 연고지 정착제를 도입하자, KT 구단은 사직체육관 옆 보조체육관을 연습구장으로 사용케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부산시는 신축을 주문했다. 그간 사직체육관 대관료 등으로도 갈등을 벌여왔던 이들의 관계는 더욱 멀어졌고 결국 KT는 부산을 떠났다. 약 18년 만에 부산에 남자 프로농구단이 사라진 것이다. 부산 농구팬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시는 뒤늦게 남자농구팀 연고지를 위해 애쓴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수개월간 농구계를 시끄럽게 한 데이원 농구단이 KBL 제명과 해체 위기를 맞자 인수 기업과 연고지 물색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부산시는 적극적으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버스가 떠난 뒤 손 흔드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전 데이원 구단을 인수할 기업으로 대명소노그룹이 등장했고 연고지는 기존 경기 고양시로 유지됐다.
부산 연고 롯데 자이언츠의 안방 사직야구장은 노후화된 야구장으로 악명이 높다. 1985년 개장해 프로야구 역사(1982년 창설)를 함께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광주, 대구, 서울(고척), 창원 등에 신구장이 드러서며 사직구장의 노후화된 시설은 더욱 두드러졌다. 2015년 심창민, 2019년 강백호 등 구장 시설 탓에 부상자가 발생하며 사직구장의 시설 문제는 더욱 부각됐다. 때로는 더그아웃에 비가 새기도 했다. 단순 시설 낙후를 넘어 부산시의 관리 소홀이 문제로 지적됐다.
부산은 2000년대 중반부터 구장 건설 후보지 1순위로 떠올랐다. 선거철이면 부산 지역 정치인들은 신구장 건설, 돔구장 건설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헛공약'으로 이어졌다. 2021년 취임한 박형준 현 시장은 야구장 신축을 추진했고 올 3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됐다. 야구계 염원이던 부산 신구장 계획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