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이정후 부상으로 리빌딩 선택…삼성 외국인 투수 교체까지 하며 꼴찌 탈출 의지
삼성도 기분 좋게 웃을 수는 없는 처지다. 삼성은 지난 6월 22일 키움과 대구 홈 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최하위로 추락했다. 삼성이 정규시즌 10경기 이상 치른 시점에 꼴찌가 된 건 2018년 5월 14일 이후 1865일 만의 '사건'이었다. 삼성은 그 후 줄곧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49일 만에 키움의 하락세에 편승해 순위표 최하단을 벗어났다. 물론 여전히 키움과 치열한 탈꼴찌 전쟁을 이어가야 할 형편이다.
#키움이 최하위로 처진 이유
키움은 '포스트시즌 단골팀'이다. 2013년 정규시즌 3위로 처음 포스트시즌에 오른 뒤 지난해까지 10년 중 2017년(7위)을 제외한 9시즌 동안 매번 가을잔치에 진출했다. 아직 우승 경험은 없지만 세 차례나 준우승을 했다. 2014년과 2019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우승을 겨뤘고, 지난 시즌에도 한국시리즈에서 SSG 랜더스와 우승을 다투다가 6차전까지 이어진 명승부 끝에 아쉽게 돌아섰다.
키움은 올해 그 여세를 몰아 창단 첫 우승까지 노려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잦은 연패를 거듭하다 최하위권을 맴도는 신세가 됐다. KBO리그 최고 타자 이정후가 부상으로 이탈한 뒤 가뜩이나 불안정하던 팀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키움의 공격은 2017년 나란히 입단한 이정후와 김혜성 듀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4번 타자로 활약하던 외국인 타자 에디슨 러셀이 왼쪽 손목 부상으로 이탈한 뒤엔 더 그랬다. 특히 지난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이정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키움의 올 시즌 등락 그래프는 이정후의 타격감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정후가 7월 22일 부산 롯데전에서 8회 수비를 하다 왼쪽 발목을 다쳤다. 정밀 검진 결과 왼쪽 신전지대(발목 힘줄을 감싸는 막)가 손상돼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닷새 뒤 수술대에 올랐다. 회복까지 3개월 정도가 걸려 올 시즌 내 복귀가 불투명하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그간 내린 비로 그라운드 상황이 썩 좋지 않았는데, 외야의 누런 잔디 부분이 푸른 잔디 부분보다 더 부드럽고 질퍽거렸다고 한다"며 "그 질퍽거리는 부분에 발이 약간 박혀 있는 상황에서 스타트를 끊다가 발목이 밀리면서 손상이 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정후는 올 시즌을 끝으로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MLB) 진출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 가기 전 꼭 팀에 우승을 안기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고, 키움도 이정후의 '커리어 하이' 시즌과 함께 첫 정상에 서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오면서 선수단 내 동요가 커졌다.
이정후의 부상 전까지만 해도 키움은 5위 롯데와 3.5경기 차로 포스트시즌 티켓 싸움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정후가 이탈한 뒤 치른 16경기에서 3승(1무 12패)을 거두는 데 그치면서 중위권과 급속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김혜성이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고군분투했지만 분명한 한계가 보였다.
결국 키움은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어차피 이정후 없이는 우승이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리빌딩 모드로 돌입했다. 수년간 국내 선발진의 한 축을 지킨 국가대표 출신 투수 최원태를 LG 트윈스로 보낸 게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94년 이후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LG는 취약한 토종 선발 자리를 보강하기 위해 키움에 내야수 이주형과 투수 김동규, 내년 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내줬다. 키움이 데려 온 우투좌타 내야수 이주형은 2020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전체 13순위)로 LG에 입단한 유망주다. 내·외야 수비가 모두 가능하고 군복무까지 마쳤다. 또 김동규는 2004년생으로 올해 2라운드에서 전체 18순위로 LG에 뽑힌 신인 투수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2022시즌이 끝난 후 정상 정복을 위해 나름대로 전력 강화를 준비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며 "시즌 중반을 넘어선 가운데 조금 더 냉정을 찾고 구단의 현재 전력상 약한 부분 보강과 미래 전력 강화를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이번 트레이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순위 싸움보다 다음 시즌 준비에 무게를 두고 트레이드를 단행했다는 의미다.
그렇게 차포를 모두 뗀 키움은 구단 창단 후 최다 타이 기록인 9연패에 빠졌다가 8월 9일 롯데전에서 10-8로 이겨 10연패 위기를 벗어났다. 8회까지 10-3으로 앞서다 9회 초에만 무려 5실점하며 역전 위기에 놓이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간신히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하지만 긴 터널을 벗어난 안도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선발 마운드를 지탱하던 지난해 강속구 에이스 안우진마저 과부하가 걸려 잠시 2군에 갔다. 홍 감독은 "경기 초반 투구 수가 늘어나면서 불편한 동작을 하거나 전에 보지 못한 공을 던지는 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유난히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며 "역시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안우진이 올 시즌을 완주하기 위해선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건너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키움은 9연패 탈출 바로 다음 날 다시 패하면서 2년 4개월 만의 최하위를 경험했다. 키움의 '수난시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이 탈꼴찌를 원하는 이유
삼성의 올 시즌은 가시밭길 투성이다. 박진만 신임 감독과 함께 5강 재도전을 목표로 새출발했지만, '전반기 꼴찌'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전반기 팀 평균자책점(4.56)이 최하위, 팀 타율(0.252)이 9위로 투타에서 모두 바닥을 쳤다. 특히 역전패가 절반 가까이 됐을 정도로 불펜이 흔들렸다.
불펜 강화를 위해 지난 4월 베테랑 내야수 이원석을 키움으로 보내고 오른손 투수 김태훈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키움에서 잘 던지던 김태훈은 삼성 이적 후 제구 난조에 시달리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원석의 빈 자리만 더 커졌다. 20대 초반 유망주로 구성된 내야진이 경험 부족을 노출하면서 치명적인 수비 실수가 줄줄이 이어졌다. 내야에 구멍이 뚫리자 마운드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6월 들어 최하위로 추락한 삼성은 다시 KIA 타이거즈에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상대 핵심 불펜 투수 트레이드를 요청했지만 KIA는 베테랑 류지혁 카드를 내밀었다. 류지혁은 내야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하고 타격도 나쁘지 않은 만능 내야수다. 삼성은 고심 끝에 KIA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올 시즌을 끝으로 다시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포수 김태군을 KIA로 보냈다. '탈꼴찌' 목표를 향한 절박함이 느껴지는 트레이드였다.
과거 삼성은 포스트시즌에 그야말로 '밥 먹듯이' 나가던 팀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2015년까지 33년 동안 단 다섯 시즌(1983년, 1994~1996년, 2009년)만 가을야구를 쉬었다. 가장 오래 포스트시즌에 못 나간 기간이 고작 3년이었고 그 기간 순위도 1994~1995년 5위, 1996년 6위로 최하위권은 아니었다. 2011년부터 4년간 전무후무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도 일궜다.
다만 2016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7시즌 중 가을야구를 한 건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친 2021년이 유일하다. 2016년부터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팀 자체 최장 기록을 다시 썼다. 2019년의 승률 0.420(60승 1무 83패) 역시 창단 이래 최저였다. 2021년 잠시 반등했지만 지난 시즌을 다시 7위로 끝내 가을 야구와 멀어졌다. 그 사이 삼성 감독은 세 차례 바뀌었다.
그래도 삼성은 한 번도 최하위는 한 적이 없다. 2016년과 2017년에 연속으로 10개 구단 중 9위에 그친 게 창단 이후 가장 낮은 순위다. 그런데 올해 끝내 최하위를 찍고 한 달 넘게 그 자리를 유지하자 구단 안팎에서 "꼴찌는 절대 안 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원년 구단이자 명문 구단인 삼성이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인 셈이다.
다행히 삼성의 후반기는 전반기보다 나아졌다. 후반기 성적만으로는 8월 10일 기준으로 5위다. SSG, 두산 베어스, 롯데, 한화 이글스, 키움이 주춤하는 사이 착실하게 5할을 웃도는 승부로 승률을 끌어 올렸다. 후반기 팀 평균자책점이 5.11로 여전히 같은 기간 8위에 머물고 있지만 팀 타율(0.320)이 후반기 1위로 올라서는 반전을 이뤄낸 덕이다. 부상에서 복귀한 팀 간판 스타 구자욱이 7월 이후 4할대 타율을 넘나드는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고, 그를 중심으로 타선 전체가 함께 살아나면서 이기는 날이 더 많아졌다. 변화한 팀 분위기가 꼴찌 탈출 움직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은 이 흐름에 발맞춰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다. 가을야구가 사실상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부상으로 낙마한 외국인 투수 앨버트 수아레즈를 내보내고 NC 다이노스에서 뛰던 투수 테일러 와이드너를 영입하기로 했다. 삼성은 이 사실을 공개하면서 "잔여 시즌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와이드너와 계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다른 팀이 포기한 외국인 선수를 삼성이 데려온 건 2012년 브라이언 고든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수아레즈는 삼성이 애착을 갖고 있던 외국인 선수다. 지난해 삼성에 합류한 뒤 6승 8패, 평균자책점 2.49로 활약했고 올 시즌에도 19경기에서 4승 7패, 평균자책점 3.92로 제 몫을 했다. 팀 사정상 승운이 따르지 않아 승수는 많지 않지만 안정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다. 그러나 8월 6일 LG전 도중 왼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돼 한 달간 회복에 전념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삼성은 수아레즈를 곧바로 교체하는 1안과 그를 기다렸다가 다음 시즌 재계약하는 2안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교체로 가닥을 잡았다.
때마침 외국인 선수 영입 시장엔 비자 발급 시간도, KBO리그 적응 기간도 필요 없는 투수가 한 명 나와 있었다. NC가 가을야구에서 '더 강한' 외국인 투수와 함께하기 위해 와이드너를 웨이버 공시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와이드너는 올 시즌 11경기에서 4승 2패, 평균자책점 4.52를 기록하고 있다. 기복이 심해 NC의 애를 먹였지만 방출 직전 두 경기에서는 13이닝 동안 3실점 하면서 좋은 투구를 했다. 와이드너가 방출 후에도 출국하지 않고 창원에 머물자 곧 "국내 다른 팀(삼성)에 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결국 삼성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와이드너는 앞으로 삼성이 기적의 레이스를 펼쳐 5위 안에 들더라도 가을야구 마운드에는 설 수 없다. '8월 1일 이후 웨이버에 의해 이적한 선수는 포스트시즌에 출장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삼성은 '탈꼴찌'를 위해 아끼던 수아레즈를 포기하고 와이드너와 손을 잡았다. 그만큼 의지가 강력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