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이명박 잠잠하면서 윤 대통령에 무게 실려…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일대일 프레임으로 총선 나설 듯
내년 총선을 앞두고 주목을 받았던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최근 잠잠해진 것까지 감안하면 보수 진영에서 윤 대통령 입지는 보다 공고해졌다는 평이다. 주주 명부를 재정비한 국민의힘은 ‘선명 보수’ 간판을 내걸고 문재인 전 대통령 5년 실정 심판론 깃발을 앞세워 전선에 뛰어들 전망이다.
#다 계획이 있었구나
윤 대통령의 이념 드라이브는 멈출 조짐은커녕, 오히려 강도를 높여가는 모양새다. 8월 28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인사말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상징인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이날 나타난 윤 대통령은 덕담을 건네는 수준을 넘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대해 보수 이념을 확실히 가지라는 주문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9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일본에서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주최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식에 참석한 일을 겨냥한 언급으로 풀이됐다.
윤 대통령은 앞선 9월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 “지금 우리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아직도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윤 대통령의 이념 발언은 “정치 활동 뜻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내놓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연결됐다. 박 전 대통령이 “옛 대주주는 지분을 행사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념 드라이브라는 큰 행보에 나선 윤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고 나선 모습을 노출, 윤 대통령을 명실상부한 보수 대주주로 올려 세워준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유영하 변호사는 9월 3일 MBN 정운갑의 시사스페셜에 출연, “박 전 대통령께서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서는 정치적인 활동은 안 하실 것”이라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내년 총선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이른바 ‘친박계’ 인사들에 대한 지원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없다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유 변호사는 ‘친박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주 없다”며 “주도하는 세력이 (있으려면) 박근혜 전 대통령밖에 없는데, 대통령께서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친박은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 친박은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정치에 대해 대통령이 갖고 계신 여러 생각이 있었고, 그런 생각에서 친박은 없다고 누차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는 또 “그 말씀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말씀하실 기회가 곧 있을 것이라 본다. 이달이 가기 전에도 있을 수 있고, 늦으면 10월 초·중반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쐐기를 박을 예정이라는 취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르면 추석 밥상 여론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맞춰 언론 인터뷰 또는 다른 형식을 통해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이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경북 구미시를 찾아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가 크게 움직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이 나왔다. 한때 콘크리트 지지층을 형성했던 박 전 대통령이었던 만큼, 총선을 앞두고 세력 결집을 시도한다면 적잖은 인물들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보수 텃밭 대구·경북(TK)을 포함해 자신의 남은 보수 지분을 윤 대통령에게 모두 넘겨주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의 각별한 노력으로 양측은 두터운 신뢰 관계를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과정에서 보수 세력이 분열을 멈추고 윤 대통령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는 뜻을 박 전 대통령은 가진 것으로 관측된다.
박 전 대통령은 8월 16일 윤 대통령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조문을 가지는 않았지만 전화 통화를 통해 조의를 표했다. 박 전 대통령의 조의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차원에서 조만간 윤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회동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친이계 전·현직 정치인들이 8월 말 이명박 전 대통령과 식사 모임을 가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친이계의 세력화 모습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친이계 인사들 역시 “단순한 식사 자리였다”며 확대해석에 손사래를 쳤다. 이 역시 옛 보수 지분의 정리가 마무리됐다는 것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의 이념 드라이브는 보수정당 경력이 짧은 윤 대통령과 보수 전통 지지층과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는 의도적 시도였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이 과정에서 보수정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도 이에 동조화하는 장면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보수 대주주의 위치에 확실히 오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윤석열 대 문재인’ 프레임 먹힐까
여권은 “문재인 전 대통령 5년 실정에 대한 진정한 심판이 국회 권력 교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내년 총선 준비에 임하고 있다. 3지대가 꿈틀대고 있지만 세몰이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구도는 움직일 수 없는 총선 지형이 될 전망이다. 이런 전략 아래에서 여권은 문 전 대통령 비판에 공을 들이고, 이에 문 전 대통령이 참전하면서 여권의 작전은 맞아떨어지는 형국이다.
여당 구성원들에 대한 문 정부 5년 실정 심판론 설명은 윤 대통령이 직접 했다. 윤 대통령은 8월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문재인 정부를 기업에 우회 비유하며 “벌여놓은 사업도 많은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전부 회계가 분식이다. 내실로 채워져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질타했다.
윤 대통령은 “돈은 없는데 사장이 벤츠 S600 같은 고급 승용차를 굴리고, 이런 식으로 해서 안 망한 기업 없지 않나”라며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라 살림이 어려운 형편에 문재인 정부가 퍼주기로 일관했다는 뜻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됐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의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결국 이 사안에 대해서는 문 전 대통령이 9월 3일 직접 뛰어들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흉상 철거 계획을 철회해 역사와 선열에 부끄럽지 않게 해 달라”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육사 차원에서 논의된 일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논란이 커졌으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다”면서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흉상 철거는 역사를 왜곡하고,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라며 “우리는 홍범도 장군의 애국심과 헌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문 전 대통령은 8월 27일에도 흉상 이전 추진에 대해 페이스북을 통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숙고해 주기 바란다”고 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9월 1일엔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했는데 이때도 윤 대통령을 때렸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너무 심해 제1야당 대표가 단식하는 상황이 염려스럽다”고 말했다고 윤건영 의원이 국회 소통관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연이어 발끈하고 나서자 대통령실은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비판한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해 9월 4일 “전직 대통령이 지나치게 나서는 게 문제”라고 쏘아붙였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공식 브리핑을 통해 비판의 화살을 날린 점을 감안할 때 ‘윤석열 대 문재인’ 구도는 총선까지 확전 양상을 이어갈 것으로 점쳐진다. 이는 친윤계가 노리는 그림이기도 하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