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결승 1승 4패 밀렸지만 “기량 거의 대등” 평가…스미레 3단 한국행 타진, 10대 천재들의 활약 기대감
“결승전을 통해 최정 사범님한테 엄청 많이 배웠다. 두 번의 결승3번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많이 발전했다고 느낀다. 부족한 부분을 알았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될 것 같다”(김은지 6단)
#최정, 김은지 도전 연거푸 뿌리쳐
최정 9단이 김은지 6단과의 연속된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2개의 타이틀을 추가했다.
9일 경기도 판교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3 닥터지 여자 최고기사결정전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최정 9단이 김은지 6단에게 248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2-1로 3년 연속 우승컵을 안았다.
‘한국 여자바둑의 현재와 미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2023 닥터지 여자최고기사결정전 결승3번기는 8월 22일 열렸던 1국에서 김은지 6단이 최정 9단에게 승리하면서 뜨겁게 불타올랐다. 3일 뒤 속개된 2국에서 최정이 극적인 반집승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최종 3국에서도 김은지의 도전을 뿌리치며 관록을 과시했다.
최정은 이에 앞서 8월 23일 끝난 2023 IBK기업은행배 여자바둑마스터스 결승전에서도 김은지를 2-0으로 물리치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연속된 타이틀전에서 김은지의 도전을 연거푸 뿌리치고 일인자 자리를 사수한 최정은 김은지와의 상대전적도 12승 2패로 차이를 벌렸다.
#패배한 김은지에 더 많은 것 얻어
그렇다면 김은지의 도전은 실패로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결승시리즈에서 승리한 최정보다 패배한 김은지가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분석한다.
정상을 지키려는 일인자와 이에 도전하는 신예의 승부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중요한 법. 그런데 이번 다섯 번의 대결에서 김은지는 의미가 있는 승리를 거뒀을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줄곧 앞서는 모습을 보여 지켜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최정의 단점이 초반 포석단계인 것을 감안해도 중반까지 흐름은 항상 김은지가 주도해나갔다. 김은지가 패했던 IBK기업은행배 결승1국은 AI 분석에 의하면 100수 언저리까지 김은지가 95% 우세를 보였고, 2국은 97.8%, 닥터지 2국은 98.3% 우위를 보이는 등 국면의 흐름은 언제나 김은지가 앞서나갔다.
김은지가 마지막으로 패한 닥터지 3국은 최정이 흐름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대국마저도 필패의 바둑을 종반 한때 역전시키면서 최정을 끝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결승전 다섯 판을 지켜본 한 전문가는 “기량 면에서는 거의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수치로 환산한다면 최정이 100이라 할 때 최소 90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김은지의 문제는 역시 초읽기에 몰리는 후반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그 부분은 단 기간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경험이 더 쌓이고 관록이 더해지면 나아질 것이다. 신진서도 박정환에게 꼼짝 못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한번 극복하고 나니 11연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시간이 문제인데 생각보다 성장 속도가 더 빨라서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좋은 승부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실제 김은지는 여자랭킹 3위 김채영 7단에 2022년 2승을 거두고 있고(2023년에는 대국이 없었다), 2위 오유진 9단에겐 최근 10국에서 9승 1패의 압도적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일인자 최정과 대동소이한 성적이다.
#김은지에 자극받은 스미레도 국내활동 타진
문제는 과밀한 대국수다. 김은지는 9월 10일 기준 올해 공식대국 117판을 기록 중이다. 연간 최다 대국수(174국)를 기록했던 지난해와 별로 다를 게 없는 수치다. 하루 두 판을 소화한 날도 13일이나 되며 더블헤더 전적은 20승 6패다.
16세 소녀에게 너무 과한 대국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한편에선 한창 성장하는 시기엔 많은 대국을 소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반론도 있어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한편 김은지의 빠른 성장은 이웃 일본의 천재소녀 나카무라 스미레 3단(14)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기원은 최근 한국기원에 스미레 3단을 객원기사로 받아줄 것을 요청해왔다.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 것은 물론이다.
바둑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스미레 3단이 일본보다 층이 두터운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면서 “스미레는 한국에서 도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또래 친구도 많다. 라이벌 김은지 6단의 성장세에 자극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기원에서 직접 요청해온 만큼 한국프로기사협회는 곧 있을 대의원 회의에서 나카무라의 객원기사 활동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대의원 회의에서 승인되면 한국기원에 정식 안건으로 제출되고, 한국기원은 운영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10대 천재 바둑소녀들의 빠른 성장세 속에 향후 여자바둑계 판도는 더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