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받는다는 불안감 해소” vs “국가 부채로 잡혀 악영향 우려”…후세의 적극 생산활동 구조 조성이 중요
올해 6월 기준 국민연금 기금적립금 규모는 983조 원으로 국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45%에 달할 정도로 GDP 대비 기금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의 추계 결과 32년 후인 2055년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산됐다. 2055년은 1990년생이 수령을 시작하는 때인데,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이 시점에 기금 적자가 47조 원에 달할 것으로 계산했다. 이 때문에 젊은 층 사이에서는 노후에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올리고 지급연령을 늦추는 방향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시하고,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계획을 밝혔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지난 9월 4일 KTV ‘생방송 대한민국’에 출연해 “국민연금법에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지급보장을 명확하게 해달라고 해서 개혁할 때 더 명확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도 “청년층에게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 기금고갈 시 국민연금의 지급보장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에도 지난 9월 1일 공청회에서 연금개편안을 발표하며 ‘지급 보장 명문화’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국가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보험료를 내고 있는 젊은 층 사이에서 기금 고갈 시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이 조항보다 더 명확하게 지급보장을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급보장 명문화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가 국민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보지는 않지만 현재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성 회복과 불안감 해소 측면에서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용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위원장(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은 “지급 보장과 관련된 법조문이 없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은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고 지급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명확한 법조문이 있어야 안심된다고 한다면 지급보장 명문화를 국민연금 제도 개선 방안으로 넣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사무처장은 “명문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연금 지급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만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을 덜고,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명문화하는 것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국민연금 신뢰 회복을 위한 최소 전제 조치가 지급보장 명문화라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더 내고 늦게 받는 식이라 자기 희생을 해야 되는 거라서 국가가 재정적 책임을 진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적연금의 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것은 당연한 책무로 국민신뢰 회복을 위해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와 함께 국민연금에 대한 다른 개혁 방안들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 위원직을 사퇴한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 지급보장 명문화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만 해서는 안 된다”며 “소득대체율 인상 등 개혁 방안들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소득대체율 인상안이 국민연금 개혁안에 빠지자 사퇴하며 반발했다. 이번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에서 발표한 개혁안은 재정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정계산위는 보험료율은 올리고, 수급 개시 연령도 상향하자고 제안했지만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은 40%로 그대로 뒀다.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는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국가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현재 지급보장 명문화를 반대하는 일부 전문가들도 국가 재정 부담을 우려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은 “국민연금 미적립부채가 올해 1800조 원이 넘는다.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8200만 원 정도를 빚진 것”이라며 “지금도 제도가 지속 불가능한데 지급보장 조항 넣으면 적자만 더 심해진다”고 말했다.
미적립 부채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운영될 때 연금보험료와 연금 기금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잠재 부채다. 당장 갚아야 하는 부채는 아니지만 미래세대가 보험료, 세금 등으로 메워야 하는 빚이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50년 6105조 원으로 증가하고 2090년에는 4경 4385조 원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국민연금 지급액은 국가 부채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지급 보장이 명문화되면 기금 고갈 이후 수백조 원의 지급액이 국가 부채로 잡혀 국가 신용 등급 등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 연구위원은 “재정을 안정화해서 제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적자 보전액을 보고도 국민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를 한다는 것은 똑같이 화약고로 들어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 등은 적자 시 국가 또는 지자체가 이를 보전하도록 돼 있다. 실제로 현재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재원 고갈로 부족액을 국가가 보전해주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올해 4조 6927억 원의 적자를 봤고, 내년에도 4조 4412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후로도 연평균 4.3%로 적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군인연금도 올해 3조 789억 원의 적자를 봤고, 내년에는 3조 2489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군인연금은 연평균 9.3%씩 적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 여부보다 국민연금 제도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생산세대가 적극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변화하는 인구구조에 맞게 국민연금 제도 보완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은 “지급보장 명문화를 하는 순간 국가가 공식적 부채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지급보장 명문화가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명문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국가경제 상태가 안 되면 지급을 못해주는 거고, 경제상황이 좋으면 명문화를 하지 않아도 지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문화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부소장은 “국민연금은 내가 낸 돈을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당대의 생산활동 세대가 만들어내는 결과로 노후를 보장받는 시스템”이라며 “그래서 내가 내는 만큼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를 논의하기 보다 어떻게 내 후세대가 적극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국가가 무작정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하겠다고 하는 법만으로는 청년들의 불신을 해소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인구구조가 바뀌면서 전반적으로 노후 부양 비용이 급격히 늘어날 텐데 기금이 고갈된 이후에 이런 부분을 어떻게 준비를 할 건지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이나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