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몸 바친단 약속 70% 지켜”…오지환 “팬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 죄송”
야구장이 아닌 선수단 버스 안에서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직행 소식을 들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LG 투타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주장 오지환과 불펜 투수 김진성, 그리고 이호준 코치와의 인터뷰를 통해 LG 우승 직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 정도면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LG 트윈스가 29년 만의 우승을 이룬 배경에 여러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됐겠지만, 베테랑 투수 김진성의 노력은 ‘MVP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김진성은 10월 5일 사직 롯데전에서 개인 100번째 홀드를 달성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김진성은 올시즌 LG의 필승조로 나서 개인 최다이자 리그 최다인 78경기 출장을 기록했고, 21홀드, 평균자책점 2.24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5일 경기를 마치고 이뤄진 전화 인터뷰에서 김진성은 자신의 개인 기록보다 LG가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이룬 점에 더 큰 감격과 감동의 인사를 전했다.
“NC에서도 정규시즌 우승을 경험했지만 LG에서의 우승은 또 다른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방출된 선수를 받아준 팀이고, LG와 계약하면서 우승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말했는데 그 약속을 70% 정도 지킨 것 같아 다행이다. 나머지 30%는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채워 넣을 것이다.”
김진성은 2021시즌 후 창단 멤버로 9시즌을 함께 했던 NC 다이노스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20년 NC가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뤘을 때 김진성은 한국시리즈 전 경기(6경기)에 등판해 3홀드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2021시즌 성적이 떨어지자 NC는 더 이상 김진성의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 팀을 잃게 된 김진성은 당시 9개 구단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입단 테스트를 문의했다. 그때 손을 내민 이가 LG 차명석 단장이다. 김진성은 2022시즌 LG에서 67경기 58이닝 6승 3패 12홀드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했다. 시즌 마치고 FA 자격을 얻은 그는 LG와 2년 총액 7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에 계약했는데 올 시즌 자신의 몸값을 훨씬 뛰어넘는 활약으로 LG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김진성은 3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좋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은 진심을 전한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도 여전히 좋은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시즌 종료 후 가장 쉽게 배제되는 베테랑 선수들을 쉽게 내쳐서는 안 된다는 울림을 주고 싶었다.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베테랑 선수에 대한 인식이 바뀌길 바랐다. 그래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했던 것 같다.”
김진성은 LG가 정규시즌 우승을 이룬 배경으로 오지환과 김현수의 존재감을 꼽았다.
“(오)지환이가 선수들을 잘 다독여주는 편이라면 (김)현수는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불어넣는다. 후배한테 필요한 거라면 사비로 도구를 구입해 건네줄 정도로 후배 사랑이 각별하다. LG는 어떤 상황에서도 똘똘 뭉칠 정도로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한다. 처음 LG에 합류했을 때 (오)지환이가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그동안 여러 주장들을 많이 만나 봤지만 오지환과 같은 주장은 처음이다.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 임에도 선수들에게 낮은 자세로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 선수들이 힘들다고 말하기 전 미리 파악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정말 잘한다. 오지환이야말로 완벽한 주장이고, ‘주장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찐’이다.”
김진성은 투수조에선 임찬규, 이우찬이 LG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그중 이우찬에 대해 김진성은 “외모는 다소 투박해 보여도 우찬이가 정말 따뜻한 심성을 가진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LG에 와서 선수가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더 성장할 수도, 성장을 멈출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선수의 마음을 헤아리고, 선수들 마음속으로 들어오려고 노력하는 코치님들 덕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코치님들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김진성의 시선은 이미 한국시리즈에 가 있었다. 통합 우승으로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이루는 멋진 감동과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LG의 주장 오지환이 느끼는 정규시즌 우승은 오랜 시간 동안 만나고 싶었고, 닿고 싶었던 ‘선물’이었다. 그는 “29년 전이면 정말 오래전인데 그 이후로 줄곧 우승을 못 했던 LG가 이번에 한국시리즈 직행을 이뤄냈다”면서 “LG 입단 후 우승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올 시즌 중간 중간 고비가 생길 때마다 선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2021년(1.5경기 차)에 이어 2022년에도 정규시즌 2경기 차이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걸 잊지 말자고 말이다. 우리가 이겨야 하는 경기는 144경기 중 매 경기라는 것도 강조했다. LG는 항상 좋은 팀워크를 유지했는데 올해는 어느 때보다 선수들끼리 잘 뭉친 것 같다. 그 힘이 1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
주장 입장에선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베테랑 선수들의 도움이 컸을 터. 오지환도 불펜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김진성의 활약을 첫 손가락으로 꼽았다.
“(김)진성 형이 정말 많은 경기에 나섰지만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내색한 적이 없었다. 항상 묵묵히,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해나갔다. 형의 그 모습을 보고 배운 후배들이 정말 많다. 그 점이 고마웠다. 젊은 선수들도 선배들을 잘 따라왔다. 박명근, 유영찬, 함덕주, 홍창기, 신민재 등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고, 몸을 던져 수비에 나섰고, 공격에 임했다. 우승은 한두 명의 노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선수들의 ‘최선’이 모아져 우승이란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오지환은 올 시즌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시즌 초반 우측 복세근 미세 손상 진단을 받고 전력에서 이탈했던 상황을 꼽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팀의 주장이 시즌 초반부터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돼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그 자리를 (김)민성이 형이 정말 잘 메꿔줬다. 민성이 형이 유격수로 나선 건 6년 만의 일인 걸로 아는데 그럼에도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민성이 형 덕분에 조금은 부담을 덜고 재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지환은 올시즌 LG의 화두였던 ‘뛰는 야구’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체력적으로 힘든 면도 있었지만 상대 팀 투수와 수비에 부담을 준 건 분명한 사실이고, 설령 실패했다고 해도 결국에는 팀 전력에 보탬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염경엽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디테일의 야구’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처음엔 도루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두 뛰는 야구에 적응해 갔던 것 같다.”
오지환은 29년의 정규시즌 우승에 눈물을 쏟는 팬들을 보며 고마움보다 미안한 마음을 먼저 표현했다.
“팬들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던 것 같다. 정규시즌 우승 확정이 선수단 버스에서 이뤄져 감흥이 덜했는데 이후 영상을 통해 팬들의 우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고, 항상 어느 곳에서나 한결 같은 응원과 박수로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다. 앞으로 통합 우승으로 더 큰 선물, 더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오지환은 한국시리즈에서 어느 팀과 맞붙고 싶냐는 질문에 “지금은 어떤 팀이 올라와도 개의치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마지막까지 LG다운 야구를 하는 게 목표다. 상대 팀에 따라 우리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도 우리의 야구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어느 팀이랑 붙어도 자신 있다.”
LG의 이호준 타격코치는 올 시즌 위기를 느낀 순간에 대해 “별다른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라고 대답한다.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올 시즌 LG는 연패도, 연승도 길지 않았다. 후반기 KT가 치고 올라오고, 게임 차가 좁혀지면서 조금 긴장하긴 했지만 난 단 한 번도 LG의 정규시즌 1위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LG가 최고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호준 코치는 LG의 주루플레이는 10개 팀 통틀어 가장 압도적이었다고 말한다. 그건 염경엽 감독이 스프링캠프 때부터 강조한 경기 운영이었고, 디테일 야구를 추구하는 염 감독의 방향성을 선수들이 잘 이해하고 따른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LG 선수들은 3루에서 땅볼 나왔을 때 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힘이 있다. 한 베이스 더 뛰는 야구, 정말 열심히 뛰는 야구를 선보이는 게 LG다. 내가 이 팀의 코치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프로 10개 팀들 중 LG처럼 열심히 주루플레이 하는 팀은 없다고 확신한다. 득점권 상황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해서든 한 점 내는 야구를 했다. 덕분에 LG가 득점권타율 부문 1위에 올랐다.”
이호준 코치는 LG 선수들이 자신의 ‘자리’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빈틈을 주지 않으려고 몸 관리에 신경 쓰고, 그런 점들이 자연스러운 경쟁심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시즌 초반 (오)지환이가 부상으로 빠지고 (김)민성이가 유격수를 맡을 때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최선을 다해 뛰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팀 사정으로 쉴 수 없는 상황에서 민성이는 자신의 한쪽 다리를 바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걷지도, 뛰지도 못하게 되자 민성이가 '코치님, 이젠 다 쏟아부었습니다'라고 말하더라. 이런 열정과 헌신이 LG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코치는 인터뷰 말미에 LG 팬들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LG에서 2시즌을 보내며 팬들이 보내는 응원과 관심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분들의 응원이 정규시즌 우승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본다. 한국시리즈가 시작되면 잠실야구장의 3분의 2를 LG 팬들이 뒤덮을 것으로 예상한다.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려 잠실야구장을 눈물 바다로 만들고 싶다. 꼭 그 모습을 보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