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자” “합치자” 민주당 우세 경기도 가장 많아 ‘촉각’…비례제 샅바싸움도 안 끝나, 획정 늦어질 듯
#재조정 선거구만 30개
지난 2월 6일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선거구획정위)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 ‘획정 기준 불부합 국회의원지역선거구 현황’을 송부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인구수(1월 31일 기준)를 토대로 조정이 필요한 선거구를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개특위는 이 보고서를 참고해 선거 1년 전인 4월 10일까지 선거구를 확정해야 했다. 기한이 한참 지났지만 선거구는 정해지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2대 총선에서 하한인구수는 13만 5521명, 상한인구수는 27만 1042명이다. 선거구획정위는 이 기준에 따라 총 30개 선거구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30개 지역에서는 공청회 등 선거구 조정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여야는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안을 내놨다.
서울에서는 강동구갑이 조정 대상으로 지목됐다. 강동구갑 인구는 28만 4553명이다. 상한인구수를 넘겼다. 강동구갑 일부 지역을 강동구을(17만 5588명)로 편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인구구조는 둔촌주공 사태 나비효과로 만들어졌다. 강동구을 둔촌주공 재건축 완료일이 2025년으로 미뤄지면서 인구가 대거 유출됐다. 보수 지지세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 둔촌주공 주민들이 타지로 빠져나가면서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지형이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도는 조정이 필요한 선거구가 가장 많다. 수원시무, 평택시갑·을, 고양시을·정, 시흥시갑, 하남시, 용인시을·병, 파주시갑, 화성시을, 화성시병이 상한인구수를 초과한 것으로 파악됐고 광명시갑, 동두천시연천군은 하한인구수를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성시을(35만 1194명) 화성시병(30만 2178명)이 조정 대상인 화성시도 선거구 전체가 개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화성시 선거구는 갑·을·병으로 나눠져 있다. 3개의 선거구를 4개로 재편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화성시에 출마를 준비하는 후보자들은 선거운동에 혼선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디가 자신의 선거구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시흥시갑은 28만 6940명으로 인구수 상한선을 초과해 조정 명단에 올랐다. 시흥시갑에 속한 능곡동을 시흥시을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능곡동 인구는 2만 5204명이다. 능곡동 이전 여부는 총선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에서 현역인 문정복 민주당 의원은 함진규 미래통합당 후보를 9058표 차이로 이겼다. 능곡동 인구보다 적은 표차다. 능곡동 이전 여부에 따라 선거 승패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파주시갑에서는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파주시갑은 32만 1755명으로 조정 대상이다. 파주시갑 일부 행정동이 파주시을로 이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주시갑은 진보 성향이 우세하고, 파주시을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 파주시갑 인구가 파주시을로 유입되면 진보 진영 후보가 유리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인구 8만 1826명 편입안을 내세우고 있고, 국민의힘은 5만 7523명 편입안을 주장하고 있다.
고양시도 선거구 전체를 조정해야 한다. 고양시을 인구는 31만 2152명이고 고양시정은 27만 1512명이다. 인구수 상한선을 초과했다. 고양시을은 행정동 1~2개 정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고양시병(26만 2971명)도 인구수 상한선에 근접했다는 점이다. 만일 고양시을 지역의 일부 지역을 고양시병으로 이전하면 인구수 상한선을 넘을 수 있다. 이 경우 고양시 선거구 전체를 조정해야 한다.
용인시도 사정이 비슷하다. 상한인구수를 초과한 선거구는 용인시을(27만 1326명)과 용인시병(28만 9443명)이다. 그러나 나머지 용인시갑(25만 8883명)과 용인시정(25만 4998명)도 상한인구수에 근접해 있는 상황이다. 용인시도 선거구 전체를 재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용인시 선거구를 5개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남시는 분구가 필요한 선거구다. 하남시 인구는 32만 6496명이다. 하남시는 16대 총선부터 단일 선거구로 유지됐지만, 인구 상한을 초과하면서 분구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하남시갑과 하남시을로 나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원시무 인구는 28만 243명이다. 상한인구수를 넘었기 때문에 선거구 조정이 필요하다. 수원시무의 일부 행정동을 수원병으로 이전하는 경계 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택시갑·을은 각각 28만 2563명과 29만 7448명으로 인구수 상한선을 넘었다. 평택시의 경우 평택시병을 새로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택시청 인근 지역이 평택시병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광명시갑(13만 4855명)과 동두천시연천군(13만 3205명)은 하한인구수에 미달했다. 이에 광명시갑은 광명시을과의 합구 방안이 거론된다. 동두천시연천군은 양주시나 포천시 가평군과 병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천은 서구을(32만 3235명)과 연수구갑(13만 3276명)이 조정 대상으로 지목됐다. 서구는 기존 갑·을에서 갑·을·병으로 나누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젊은 인구가 대거 거주하는 검단 신도시가 있는 서구는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선거구가 세 개로 분할되면 민주당 의석수가 하나 더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정1동 등 행정구역을 나누는 과정에서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수구갑은 연수구을 지역의 일부 행정동을 이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부산 동래구에서는 여야 셈법이 부딪히고 있다. 동래구는 27만 3177명으로 조정 대상이다. 국민의힘은 동래구 분할을 주장하고 있다. 동래구는 국민의힘 강세 지역이다. 21대 총선에서 김희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득표율 51.85% 기록하며 42.78%를 기록한 박성현 민주당 후보를 이겼다. 동래구가 두 개의 선거구로 나뉘면 국민의힘의 의석수가 하나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부산 북구강서구을도 조정 대상이다. 이곳은 원래 선거구 조정 예외 지역이었다. 공직선거법은 하나의 자치구나 시, 군 일부를 분할해 다른 국회의원 지역구에 속하게 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다만 이 지역구 인구가 기준에 미달하면 인접 지역의 일부를 분할해 선거구를 구성할 수 있다. 이에 인구가 부족했던 강서구와 북구가 합구된 선거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면서 강서구는 예외 대상이 아니게 됐다.
민주당은 강서구와 북구를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서구가 분할되면 인구수 상한을 초과한 북구는 다시 갑과 을로 나눠지게 된다. 이 지역은 ‘낙동강 벨트’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분구가 확정되면 민주당 우세 지역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 지역구 조정 논의는 답보상태다.
부산 남구갑·을은 합구 가능성이 높다. 두 선거구는 각각 12만 6976명, 12만 9214명으로 하한인구수를 밑돌았다. 합구가 이뤄지면 현역 의원들의 맞대결이 성사될 전망이다. 남구갑은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있고, 남구을에는 박재호 민주당 의원이 있다. 박수영 의원은 초선이지만 여의도연구원장을 역임하며 당내 입지를 다졌다. 재선 박재호 의원은 지역 밀착형 정치인이다. 두 사람이 격돌한다면 남구는 22대 총선 최대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부산 사하구갑(13만 1021명)도 하한인구수를 밑돌았다. 사하구갑은 사하구 내 다른 선거구인 사하구을과 행정구역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충청남도 천안시을(28만 9393명), 전라북도 전주시병(28만 7348명), 경상남도 김해시을(28만 1737명)도 조정 대상이다. 천안시을과 전주시병은 일부 지역을 인접 선거구에 이전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김해시을은 분구해야 한다는 주장과 구역만 조정해도 된다는 방안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의 일부 선거구는 인구 하한선을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에서는 익산시갑(13만 674명), 남원시임실군순창군(13만 912명), 김제시부안군(13만 1681명)이다. 전남에서는 여수시갑(12만 5749명), 경북에서는 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덕군(13만 2297명)이 조정 명단에 올랐다. 이 지역은 인근 선거구와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획정위의 보고서에는 없지만 서울 종로구, 성동구, 중구, 인천 계양구 등의 선거구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치 1번지’ 종로구와 중구의 합구 여부가 주목받는다. 21대 총선에서는 중구성동구갑, 중구성동구을로 선거가 치러졌다. 그런데 성동구는 인구수 28만 707명으로 인구 상한선을 넘었다. 9월 26일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선거구획정위 일각에서는 성동구를 분리하고, 중구와 종로구를 병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선거구 획정 감감무소식
선거구 획정 문제는 복잡하다. 결과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타협이 쉽지 않다. 민선영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선거제도를 국회의원이 바꾸다 보니 너무 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선거제도 결정이) 지체되는 상황”이라며 “그래서 40~50일 남겨 놓고 (선거제도나 선거구 획정이) 처리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 간사는 “(11월 12일) 유권자 등록도 등록이지만, 정말 중요한 타임라인은 예비후보자 등록일”이라며 “이날부터 그 지역의 시민들이 누가 선거에 나올 것인지 본격적으로 검증하고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선거가 임박해서야 선거구를 획정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 획정은 선거일 13개월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20대 총선에서는 선거 42일 전(2016년 3월 2일)에서야 선거구가 결정됐다. 21대 총선 땐 39일(2020년 3월 7일)을 남겨두고서야 선거구 획정이 이뤄졌다.
정치권이 선거구가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다른 후보자들과 지역구 활동이 겹치지 않게 서로 알아서 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민주당 소속 보좌관은 “지난 총선 선거구대로 획정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지금의 지역구 관리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보좌관은 나중에 선거구가 바뀌면 그때 전략을 다시 짜면 된다고 했다.
원외인사들은 난감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역 의원보다 열세인데 선거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다른 선거구까지 돌며 미리 지역구를 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이창근 하남시 당협위원장은 “공천이 늦어지면 그만큼 (상대 당과의) 싸움에서 전력투구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물론 민주당도 같은 입장일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특히 경기도에서 민주당보다 열세다. 열세인 상황에서 더 전력투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시민들 입장에서는) 이 후보가 우리 지역 후보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봤더니 ‘이 후보가 아니네’ 이렇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9월 11일 선거구획정위는 이러한 혼선을 막고자 정개특위에 “국민의 참정권이 온전하게 보장되도록 국외 부재자신고 개시 1개월 전인 10월 12일까지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10월 12일까지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관련 논의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외선거 유권자 등록일인 11월 12일은 물론 예비 후보자 등록일인 12월 12일까지도 획정안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비례대표제를 두고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병립형)를 당론으로 정했고, 민주당은 여기에 반대하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11월 말까지 논의를 한 다음 합의가 되지 않으면 병립형을 받고 선거구 획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소속 정개특위 위원은 후보자 등록일인 12월 12일까지 합의가 가능한지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 (합의가) 힘든 부분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선거구 획정이 우선 논의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선거구획정위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을 위해서는 시도별 의원 정수를 몇 명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개특위에서 정해져야 한다”며 “이 부분이 국회에서 확정되지 않으면 (선거구 획정 작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은 국회에서 합의가 돼서 (획정안이) 통과되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