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이후 17년 만에 한화에서 배출…“내년엔 15승 목표로 뛸 것”
#5년 연속 투수가 신인왕 올라
한화가 배출한 마지막 신인왕은 2006년 류현진이다. 그해 2차 1라운드(전체 2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 류현진은 30경기에 나와 201⅔이닝을 소화하며 18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23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작성했다. 그 결과 역대 최초로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를 동시에 수상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류현진 이전에는 이정훈(1987년)과 김태균(2001년)이 '이글스 출신' 신인왕으로 이름을 남겼다.
신인왕 후보에는 총 10명의 선수가 올랐다. 문동주 외에 문현빈(한화), 김동헌·이주형(이상 키움 히어로즈), 유영찬(LG 트윈스), 윤영철·최지민(이상 KIA 타이거즈), 김민석·윤동희(이상 롯데 자이언츠), 김동주(두산 베어스)였다. 이 중 윤영철(15표), 최지민(4표), 윤동희(3표), 김동헌(2표), 김민석·유영찬(이상 1표)이 표를 받았다.
문동주가 트로피를 가져가면서 5년 연속 투수가 신인왕에 오르는 강세도 이어졌다. 마지막 야수 신인왕은 2018년 수상자인 KT 위즈 외야수 강백호다. 이후 2019년 정우영(LG), 2020년 소형준(KT), 2021년 이의리(KIA), 2022년 정철원(두산)이 신인왕을 받았다.
문동주는 트로피를 받아든 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트로피가 참 무겁다'는 거다. 이 무게를 잘 견뎌야 할 것 같다"며 "최원호 감독님, 박승민 코치님, 이동걸 코치님께 감사하고 (지난 5월 물러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님과 호세 로사도 코치님께도 감사하다. 전력분석과 트레이닝 파트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에 신인왕을 수상할 수 있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주변에 두루 인사했다. 이어 "이 상은 류현진 선배님 이후로 한화가 17년 만에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영광을 팬들에게 돌리겠다"고 했다.
#광주 출신 문동주가 대전으로
광주 진흥고를 졸업한 문동주는 떡잎부터 남다른 투수였다. 투수 경력은 남들보다 짧다. 고교 1학년 때 내야수에서 투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그런데 2년 만에 시속 150㎞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뿌리면서 고교 야구 최고 투수로 올라섰다. 수많은 강속구 투수가 '제구 불안'이라는 고질적 약점에 시달렸지만, 문동주는 "구속이 늘면서 오히려 제구가 더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동주가 고교 3학년이던 2021년은 연고지 1순위 유망주를 선점하는 1차 지명 제도가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해다. 전국구 에이스급인 문동주는 당연히 KIA의 1차 지명 후보로 꼽혔다. 문제는 광주동성고에 '제2의 이종범'으로 불리던 내야수 김도영이 존재했다는 거다. 김도영은 타격의 정확성, 장타력, 빠른 발, 수비력, 강한 어깨를 모두 갖춰 완성형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내야수", "단점을 찾기 어렵다"는 극찬이 이어졌다. '역대급' 유망주 둘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던 KIA는 결국 김도영의 손을 잡았다. 김도영의 스피드와 순발력에 특히 높은 점수를 줬고, "입단 후 내야 수비와 타선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선수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야수로 성장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KIA의 선택만 기다리던 한화는 쾌재를 불렀다. 직전해 최하위였던 한화는 1순위 전국 지명권(전년도 하위 3팀이 성적 역순으로 연고 지역과 무관하게 1차 지명할 수 있는 권리)을 갖고 있었다. KIA가 김도영을 지명하자 곧바로 문동주를 1차지명하겠다고 발표했다. 고향팀에 입단하지 못해 내심 아쉬웠을 문동주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김도영(4억 원)보다 1억 원 많은 계약금 5억 원을 안겼다. 한화 구단 역대 신인 계약금 중 세 번째로 많은 금액이었다.
#프로 첫 시즌은 '예열 단계'
문동주의 프로 첫 시즌은 '예열 단계'였다. 한화는 입단 직후부터 미래의 에이스를 애지중지 관리하기 시작했다. 문동주가 입단 직전인 2021년 9월에 23세 이하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등 다른 고교 투수들보다 많은 공을 던졌다는 점을 고려했다. 지명 후 3개월간 공을 잡지 않고 휴식하게 했다. 다른 팀 1차지명 유망주들과 달리 1군 스프링캠프도 보내지 않았다. 자칫 "빨리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욕심에 오버 페이스를 할까 봐 경계한 것이다. 대신 충남 서산 2군캠프에서 몸 상태에 맞는 단계별 투구 프로세스를 거치게 했다.
천천히 몸을 만들어나간 문동주는 시범경기를 앞두고 한 차례 KBO리그를 떠들썩하게 했다. 불펜 피칭에서 연속으로 시속 156㎞를 찍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즌 준비에 박차를 가하다 개막 직전 내복사근 손상 진단을 받았다. 치료와 재활을 마치고 5월에야 1군에 올라왔고, 불펜 투수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한화는 그 후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엔 1이닝씩 소화하도록 했고, 점차 멀티이닝과 연투로 마운드에 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문동주는 6월 9일 두산전에 처음으로 선발 등판한 뒤 어깨 부상으로 다시 이탈하는 악재를 만났지만, 9월에 마운드로 돌아와 선발 투수로 3경기를 더 소화했다. 마지막 등판이었던 10월 3일 SSG 랜더스전을 5이닝 4실점(3자책)으로 마치면서 2년 차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시속 160.1km 나왔다
부상으로 휴식했던 기간은 오히려 문동주에게 기회가 됐다. 투수 신인왕 자격은 최근 5년 이내에 입단한 선수 중 누적 투구 이닝이 30이닝 이하인 투수에게 주어진다. 문동주는 첫 시즌 13경기에서 28⅔이닝을 소화해 1⅓이닝 차로 신인왕 후보 자격을 유지했다. 2년 차가 된 문동주에게 '신인왕'이라는 목표는 큰 동기부여가 됐다.
1년간 구단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은 문동주는 한층 더 성장했다. 스프링캠프부터 연일 시속 150km 후반대 공을 뿌려 화제에 올랐고, 결국 개막 직후 '사고'를 쳤다. 4월 12일 대전 KIA전 1회 말 박찬호 타석에서 3구째 시속 160.1km의 강속구를 던지면서 KBO가 투구추적시스템(PTS)을 공식 도입한 2012년 이후 역대 국내 투수 최고 구속 기록을 새롭게 썼다. 종전 기록은 2012년 9월7일 롯데 소속이었던 최대성이 한화를 상대로 기록한 시속 158.7km였다. 문동주가 국내 투수 최초로 시속 160km 시대를 연 것이다. 문동주가 신인왕을 받던 KBO 시상식에는 공교롭게도 당시 타석에 있던 박찬호도 수비상 수상을 위해 참석했는데, 문동주는 진행자에게 관련 질문을 받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박찬호 선배님께 죄송했고, 감사드린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문동주는 이후 국내 최고의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앞세워 한화의 선발 로테이션 한 축을 안정적으로 지켰다. 한화도 부상 이력이 있는 문동주를 위해 투구 이닝을 120이닝 안팎으로 제한하는 '에이스 보호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문동주는 그렇게 23경기에서 118⅔이닝을 소화하면서 8승 8패, 평균자책점 3.72로 시즌을 마쳤다. 펠릭스 페냐(11승)에 이어 팀 내 다승 2위를 기록하며 토종 에이스로 우뚝 섰다.
국제대회에서도 문동주의 활약은 눈부셨다. 지난 10월 끝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인 대만전 2경기에 선발 등판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했다. 도합 10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아내는 위력도 보여줬다. 대만과 예선 대결에서는 4이닝 2실점으로 물러났지만, 결승전에서 다시 대만을 만나 6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역투해 한국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문동주는 당시 "금메달을 따서 기쁘고, 내가 한몫한 것 같아 더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시즌 종료 후 열린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대표팀에서도 중책을 맡았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결승 진출을 목표로 삼고 첫 경기인 호주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문동주를 선발 투수로 내보내겠다"고 밝혔다. 문동주는 호주 타선을 상대로 5⅔이닝 동안 공 102개를 던지면서 5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첫 단추를 잘 꿴 한국은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3년 차 되는 문동주의 포부
한화와 대표팀을 오가며 바쁜 한 해를 보낸 문동주는 어느덧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한 명이 됐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신인왕을 수상한 뒤엔 '막내'의 풋풋함을 숨기지 못했다. 시상식 후 "트로피를 받자마자 머릿속이 백지가 됐다"며 "포수 최재훈 선배님 얘기를 꼭 하려고 했는데, 미처 언급하지 못했다. 끝나고 '죄송하다'는 연락을 드리려고 휴대전화를 꺼냈는데, 선배님의 축하 연락이 먼저 와 있었다"고 털어놨다. 최재훈은 문동주에게 '올해 참 잘했다. 내년에는 15승 가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문동주는 "최재훈 선배님 말씀대로 내년엔 함께 15승을 목표를 삼고 달리겠다"고 했다.
신인왕 레이스에서 유일한 경쟁자로 꼽혔던 1년 후배 윤영철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올해 입단한 19세 신인 윤영철은 KIA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꿰차고 25경기에서 8승 7패, 평균자책점 4.04로 활약했다. 문동주는 "영철이와 경쟁한 게 시즌 내내 많은 도움이 됐다. 정말 좋은 투수고, 앞으로도 나와 많은 경쟁을 해나가야 하는 상대"라며 "영철이를 응원하겠다. 계속 좋은 경쟁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으면 좋겠다"고 덕담했다.
첫 번째 과제를 해냈으니 그다음 목표도 생겼다. 문동주는 "이제 다음 시즌엔 투수 부문 타이틀을 받고 싶다"며 "올해는 신인왕에만 집중해서 개인 타이틀까지는 생각을 안 해 봤는데, 내년 시즌을 잘 치르다 보면 '이건 도전할 수 있겠다' 싶은 타이틀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더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문동주는 또 "작년 입단식 때 구단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얘기한 각오가 두 가지 있었다. 신인왕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둘 다 1년씩 미뤄져서 올해 두 개를 한꺼번에 이뤘다"며 "말로 뱉어놓으니 목표를 지키려고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하나씩 다 이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앞으로도 목표를 잘 세우고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날 정규시즌 MVP는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에 오른 에릭 페디가 받았다. 페디는 올 시즌 30경기에서 20승 6패, 평균자책점 2.00으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20승과 2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투수는 1986년의 선동열 이후 37년 만에 처음이었다. 수비상 투수 부문까지 수상하면서 흠 잡을 데 없는 한 해를 보냈다. 페디가 투표에서 총 111표 중 102표(91.9%)를 휩쓴 이유다.
페디는 신인왕이 된 문동주에게 MVP 트로피를 보여주며 "이 트로피가 내년에는 네 것이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문동주는 손사래를 치며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올해 첫 풀타임을 보냈지만, 내 성적이 페디처럼 리그를 압도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직 MVP는 어렵다"면서도 "언젠가는 MVP를 목표로 삼고,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 당장은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내년에는 훨씬 더 발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내년에도 한화 선수가 신인왕?
문동주가 입단하기 직전 한화는 2년 연속 최하위였다. 입단 첫해인 지난 시즌에도 그랬다. 2년 차가 된 올해는 꼴찌 탈출에 성공했지만, 9위로 정규시즌을 마쳐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연속 최하위의 수모를 겪은 덕분(?)에 걸출한 유망주들을 품게 됐다. 광주에 살던 문동주를 2022년 1차 지명해 대전으로 데려온 데 이어 2023년과 2024년 신인드래프트에서도 2년 연속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행사했다. 올해는 시속 160㎞의 공을 던지는 오른손 투수 김서현을 낚아챘고, 내년에는 시속 150㎞대 직구와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돋보이는 왼손 투수 황준서가 입단한다. 한화는 내년 시즌 김서현과 황준서가 나란히 맹활약하면서 신인왕 집안싸움을 펼치는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문동주는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나를 보면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선수가 돼야 할 거 같다. 신인왕을 탈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니, '더 잘하라'고 주신 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며 "서현이나 준서처럼 좋은 후배들이 많이 생겼는데, 내가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잘하겠다. 내년엔 둘 중 한 명이 신인상을 받아서 '한화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또 "무엇보다 내년에는 우리 팀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나도 더 열심히 던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