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에서 힘들었던 강백호 형 손 내미니 꽉 쥐더라”
문동주는 프로 2년 차인 올시즌 23경기 118⅔이닝 8승 8패 195탈삼진 평균자책점 3.72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한화의 에이스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등 잇단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오랜만에 문동주를 만나 정신 없이 달려온 2023시즌의 소회를 들어봤다.
11월 27일 열린 ‘2023 KBO 시상식’에서 신인상 수상자는 한화 이글스의 문동주였다. 한화가 KBO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건 1987년 이정훈, 2001년 김태균, 2006년 류현진에 이어 4번째 수상이었고, 무려 17년 만의 신인왕 배출이었다. 문동주는 신인상 수상 직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역대 한화의 신인상 수상자인 선배님들을 보니 내가 이 ‘라인업’에 들어가도 되나 싶었다. 그만큼 화려한 커리어의 선배님들 이름 밑에 내 이름이 올라가니 책임감도 크고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정말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신인상에는 총 10명의 후보가 경쟁을 펼쳤다. 김동헌 이주형(이상 키움), 유영찬(LG), 윤영철 최지민(KIA), 김민석 윤동희(롯데), 김동주(두산), 문동주 문현빈(한화)이었다. 문동주는 기자단 투표 총 111표 중 85표를 획득해 2위 윤영철(15표)을 무난히 제치고 신인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실 시즌 중에는 경쟁자들을 의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아시안게임 준비차 조금 일찍 시즌을 마무리한 다음 훈련을 이어가면서 경쟁 대상이 되는 선수들 경기나 기록을 다 찾아봤던 것 같다. 누구 한 명이 아니라 많은 선수들을 챙기면서 비교를 해본 시간들이었다.”
문동주는 그럼에도 자신이 유력한 신인상 수상자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문동주는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만 그랬던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미리 어떤 결과를 예측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어떤 누구도 자신이 받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내 할 일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시상식 전까지 수상과 관련해서 애써 마음을 비웠던 문동주는 시상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혹시나’ 싶어 수상 소감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막상 수상 직후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데 너무 무겁더라. 순간 준비했던 수상 소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한테 투표해준 기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어야 했는데 그걸 까먹었고, 한 시즌 동안 배터리를 이루며 내게 큰 힘이 돼준 (최)재훈 선배님한테도 감사 인사하는 걸 잊어버렸다.”
시상식 참석이 많아지다 보니 입고 나갈 양복이 걱정될 수도 있을 터. 그러나 문동주는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지금까진 정장 한 벌에 넥타이만 바꿔가며 입었다”라고 대답한다. 그 넥타이도 팬들한테 받은 선물이라 자신의 양복보다 넥타이에 주목해달라는 말도 덧붙인다.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문동주는 여전히 올 시즌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 존재한다.
“평균자책점에서 리그를 압도할 만한 수치를 보이지 못했다. 올 시즌 경기 중 160km/h를 던져 더 큰 주목을 받았는데 그 관심만큼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년 시즌에는 지금의 아쉬움을 잊지 않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문동주는 지난 5월 성적 부진으로 전격 경질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에 대해 남다른 고마움을 안고 있었다. 스프링캠프부터 문동주에게 이닝 제한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문동주도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설명을 듣고 계획을 세운 다음 시즌에 돌입할 수 있었다.
“당시 로사도 코치님과 자주 미팅을 갖고 시즌 동안 팀에서 나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내용을 전해 들었다. 로사도 코치님은 내 투구 수까지 세부적인 내용을 준비해놓았다. 나뿐 아니라 다른 투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선수들의 계획표가 준비돼 있던 터라 선수들도 믿고 코치님을 따랐다. 이닝 관리, 이닝 제한은 이례적인 일이었고, 구단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 이렇게 팀에서 날 관리해주고 배려해주는데 더 이상 부상이 생기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문동주는 수베로 감독의 경질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고 한다.
“그날 인천 SSG 원정 경기를 앞두고 나랑 (장)민재 선배님이랑 먼저 인천으로 이동했다. 선발 투수들은 원정 경기 등판을 앞두고 있을 때 하루 정도 먼저 움직인다. 이동하기에 앞서 대전에서 수베로 감독님께 인사를 드렸고, 민재 선배님과 인천 도착 후 뉴스를 보는데 ‘수베로 감독 전격 경질’이란 제목이 보이는 게 아닌가. 처음엔 오보라고 생각했다. 진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 순간 멍했던 것 같다. 원정 스케줄 마치고 대전에 와서 로사도 코치님께 연락드렸더니 아직 대전에 계신다고 해서 그때 만나 뵙고 인사를 나눴다.”
로사도 코치는 문동주가 신인상을 수상했을 때 자신의 개인 SNS에 문동주의 수상을 축하하는 게시물을 남겼고, 문동주는 로사도 코치한테 따로 연락을 취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로사도 코치님은 나한테 아버지 같은 분이다. 정말 아들처럼 세심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그 감사함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문동주는 지난 10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차출됐다. 대만전에 2경기 등판했는데 조별리그에서는 4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됐고, 결승전에선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큰 힘을 보탰다.
문동주는 아시안게임이 시작되기 전 대표팀의 최일언 투수코치를 통해 조별리그 대만전 선발 등판 스케줄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에 대만 선수들 전력 분석을 하는데 타선이 너무 좋아 보이더라. 그러나 KBO리그에서도 쉬운 상대는 없고, 투수와 타자가 처음 만났을 때 투수가 유리하기 때문에 미리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문동주는 대만의 1번 타자 쩡종저에게 조별리그와 결승전에서 안타 4개를 허용했다. 결승전 6회말에는 쩡종저에게 홈런성 타구를 맞았다. 당시 최일언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왔고, 문동주는 최 코치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코치님이 내게 “쩡종저가 잘 치는 거니 괜찮다”고 말씀해주셨고, 나는 “정말 그렇다. 경기 끝나면 사인이라도 받아야겠다”고 하니까 코치님이 웃으셨다. 조별리그 때도 1회 2루타를 허용했는데 결승전 때도 1회 똑같은 코스에 2루타를 맞았다. ‘이게 뭐지?’ 싶었다. 여기서 실점하면 큰일나겠다 싶어 굉장히 집중해서 경기를 치렀다.”
다행히 실점 없이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한 문동주는 대표팀이 대만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획득하자 강백호와 함께 수훈 선수 인터뷰에 나섰다가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강)백호 형이 아시안게임 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눈물도 많이 흘렸고,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백호 형 손 뒤에 내 엄지손가락을 줬는데 형이 그 손가락을 꽉 잡았고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내 엄지손가락을 놓지 않았다. 백호 형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됐던 것 같다.”
인터뷰 말미에 문동주한테 류현진의 한화 복귀 관련된 질문을 건넸다. 당장 내년 시즌부터는 어렵다고 해도 2025시즌 한화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을 상상한다면 문동주는 어떤 그림을 떠올릴까. 문동주는 상상만 해도 설렌다고 대답했다. 선배 류현진과 함께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공부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문동주는 다음과 같은 속마음을 내비친다.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몇 차례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류현진 선배님과 함께 야구하는 시간들 또한 내 야구 인생에 엄청난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들이 언젠가는 꼭 현실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