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송 콘텐츠 대부분 소유하는 셈…요금 인상 불가피? 가입자 이탈 방지 위해 많이 올리지 못할 듯
CJ ENM의 OTT 티빙과 SK스퀘어의 웨이브가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재 티빙의 최대주주는 지분 48.85%를 보유한 CJ ENM이고, 웨이브의 최대주주는 40.5%를 보유한 SK스퀘어다. 아직 구체적인 합병 비율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CJ ENM이 최대주주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0월 기준 티빙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510만 명으로 넷플릭스와 쿠팡플레이에 이어 3위다. 웨이브는 423만 명의 MAU를 보유하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하면 중복가입자를 제외한 MAU가 약 600만 명에서 700만 명의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에 대한 이야기는 2020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SK스퀘어가 CJ ENM에 여러 차례 합병 논의 의사를 밝혔지만 CJ ENM 측에서는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가 계속해서 1위를 차지하며 독주하고 있고, 지난 8월 쿠팡플레이가 국내 OTT MAU 1위를 차지하며 티빙이 2위로 밀려나 위기에 몰렸다.
더불어 티빙과 웨이브는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티빙의 적자 규모는 2020년 61억 원에서 2021년 762억 원, 2022년 1192억 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3분기까지 1177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웨이브도 2021년 558억 원 손실에서 2022년 1216억 원의 손실로 1년 새 2배 이상 손실이 커졌다. 웨이브는 2019년 출범할 당시 투자금을 유치하며 투자조건으로 5년 이내 기업공개(IPO)를 약속한 바 있다. 기한이 내년 11월까지라 상장이 불발되면 웨이브는 전환사채(CB) 2000억 원을 상환해야 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규모를 키워 OTT업계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티빙과 웨이브는 합병을 본격화했다.
두 플랫폼의 합병 논의에 이용자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티빙은 tvN, 엠넷, JTBC 등 다수 방송 채널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고, 웨이브는 국내 지상파 3사(KBS‧MBC‧SBS)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두 기업이 합병되면 국내 방송 채널 콘텐츠 대부분을 소유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이용자들에게 제공되는 콘텐츠도 다양해질 수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성사되면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다 들어가게 돼 해당 방송 채널의 콘텐츠들을 시청할 수 있고, 거기에다 영화까지 볼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두 기업이 각각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보다 합병했을 때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자해서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낼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이 성공하게 되면 소비자들은 좀 더 새로운 콘텐츠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웨이브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내년 9월 독점 계약이 종료된다. 합병 후 독점 계약이 아닌 비독점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면 티빙과 웨이브에서만 볼 수 있는 단독 콘텐츠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한 플랫폼이 아닌 여러 곳에서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게 되면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을 해도 경쟁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일정 요금을 내는 이용자들도 이에 따른 혜택을 보기 어렵다.
운영방식은 하나의 플랫폼에서 모든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티빙과 웨이브를 각각 접속해 콘텐츠를 시청한다면 이용자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희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겸임교수는 “두 플랫폼이 합병이 되면 단기적으로는 두 플랫폼을 유지하다가 하나로 통합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아예 처음부터 통합할 수도 있다”며 “시기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운영되는 것이 비용을 절감하면서 매출을 늘리는 운영 효율성을 만들어내는 데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비용 측면에서도 이득이다. 특히 티빙과 웨이브를 모두 구독하고 있는 중복가입자들은 구독요금을 줄일 수 있다. 아직 MOU만 체결된 상태라 요금제가 확정된 상황은 아니지만 가격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타 OTT들과 요금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용자수가 가장 많은 넷플릭스는 가장 비싼 프리미엄 요금제가 월 1만 7000원이며, 쿠팡플레이는 월 4990원인 쿠팡 와우 멤버십을 가입하면 무료로 쿠팡플레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티빙의 프리미엄 요금제는 월 1만 7000원이며, 웨이브의 프리미엄 요금제는 월 1만 3900원이다.
이문행 수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다른 OTT들과의 가격 경쟁과 이용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수준에서 요금을 많이 올리지 못할 것”이라며 “콘텐츠가 더 많아지고 두 기업이 적자이기 때문에 요금을 약간 상승을 시키겠지만 현재 티빙과 웨이브의 요금을 합해서 요금제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두 OTT의 합병 여부는 관심밖인데 갑자기 합쳐서 요금을 더 내라고 하면 저항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과감하게 기존 가격을 유지할 수도 있다”라며 “소비자들이 적응하는 기간을 두고 점차 요금을 올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두 플랫폼의 합병이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적자 극복이라는 과제도 있어 요금을 올리긴 해야 한다. 하지만 티빙과 웨이브 중 한 가지만 구독하고 있는 이용자들에게는 요금이 조금이라도 인상되면 비용 측면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또한 한 플랫폼에 있는 콘텐츠가 좋아서 해당 플랫폼을 구독한 사람들에게는 합병이 되면 콘텐츠 이용은 한정적이고 요금만 늘어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의 반발과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요금은 인상해야 하지만 당장은 쉽지 않고 시간을 두고 조금씩 올릴 것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두 기업의 합병은 콘텐츠의 다양성이나 비용, 편의성 측면에서 이용자들에게 일부 이익이 될 수 있지만 합병이 성사되기까지 거쳐야 할 난관도 많다. 전환사채의 상환, 지분율 유지를 위한 자금 확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웨이브의 재무적 투자자인 미래에셋벤처투자의 PE본부와 사모펀드 운용사 SKS프라이빗에쿼티가 발행한 20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의 만기가 다가오는데, 누적된 적자로 해결 방법이 쉽지 않다”면서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비상장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지분을 40% 이상 보유해야 하는데, CJ ENM이 티빙-웨이브 합병 후 지분율 40%를 유지하려면 상당한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합병을 한 후에도 기존 이용자들이 해지하지 않고, 새로운 이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OTT 전문가인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 교수(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는 “지금까지 구독자들이 이용했던 화질, 콘텐츠, 인터페이스, 요금제 등을 잘 유지하거나 더 개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구독자 입장에서는 합쳤는데 좋은 것도 없고, 금액도 높고, 옛날의 색깔을 잃어버린다면 굳이 그 플랫폼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심영섭 교수는 “콘텐츠가 많으면 많을수록 라인업을 만들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OTT 화면에서 콘텐츠 라인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핵심이 될 것 같다”며 “지분을 많이 가진 곳이 콘텐츠 라인업을 짜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티빙과 웨이브 측은 합병 관련 MOU가 체결된 사실 이외에 요금제, 운영방식, 계정공유 등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고 전했다. CJ ENM 관계자는 “합병과 관련해서 MOU를 체결한 것은 맞다”면서도 “아직 MOU 체결 단계라 정확한 합병 시기나 운영방식 등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웨이브 관계자도 “양측이 OTT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의를 거쳐, 주주사간 합병 MOU를 체결했으나 현재 상세 내용은 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