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력 매체들 대형 계약 점쳐…포스팅비 손에 넣을 키움도 대박 예감
#이정후 이전 포스팅 역사
이정후가 MLB 진출에 성공하면, KBO리그 출신 선수로는 역대 7번째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 프로야구 무대를 밟는 선수로 기록된다. 역대 최초 사례는 2009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던 투수 최향남이었다. 그러나 당시 38세였던 최향남은 MLB에서 성공보다 "단 한 번이라도 빅리그 마운드를 밟아보고 싶다"는 '꿈의 도전'에 무게를 둔 케이스였다. 롯데와 미리 "포스팅비가 단 1달러라도 보내준다"는 약속을 하고 포스팅에 나갔고, 실제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101달러라는 헐값을 적어낸 뒤 최향남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최향남은 끝내 빅리그 경기에는 나서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후 2012년 말 한화 이글스 소속이던 투수 류현진이 KBO리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포스팅을 통해 MLB 무대를 밟는 새 역사를 썼다. 당시엔 포스팅에 응찰한 구단들 중 가장 큰 금액을 적어낸 팀이 독점 협상권을 갖는 시스템이었는데, LA 다저스는 류현진을 데려오기 위해 무려 2573만 7737달러 33센트라는 거액을 포스팅비로 써냈다. 한화는 그 돈으로 충남 서산에 2군 전용 훈련장과 숙소를 지었다. 류현진과 다저스의 계약 규모도 보장 금액만 6년 3600만달러였다. 류현진은 당시 한국 최고 투수의 위상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당당히 MLB로 떠났다.
2년 뒤인 2014년 말에는 류현진과 동갑인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유격수 강정호가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했다. 포스팅비는 500만 2015달러, 계약 조건은 4년 1100만 달러였다. 또 이듬해인 2015년 말에는 넥센에서 뛰던 1루수 박병호가 포스팅비 1285만 달러를 얻어내면서 미네소타 트윈스와 4년 1200만 달러에 사인했다. 2019년 말에는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투수 김광현이 두 번째 포스팅 도전 만에 MLB 무대를 밟는 데 성공했다. 세인트루이스가 포스팅비 160만 달러를 내고 2년 800만 달러에 김광현을 데려갔다.
키움 주전 유격수였던 김하성은 그로부터 1년 뒤 포스팅비 552만 5000달러, 계약 조건 4년 2800만 달러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었다. 김하성은 입단 3년째인 올해 유격수와 2루수를 오가면서 1번 타순에 기용되는 등 샌디에이고의 주요 전력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또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그해 빅리그에서 가장 수비를 잘한 선수에게 주는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해 유격수 부문 최종 후보 3인에 들었다가 고배를 마셨지만, 올해는 새로 생긴 유틸리티 부문에서 역대 첫 수상자로 뽑히는 기쁨을 누렸다.
#계약 총액은 5000만 달러 이상?
김하성과 절친한 사이인 외야수 이정후는 키움 출신 선수로는 역대 네 번째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빅리그 무대를 밟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정후는 2017년 1차 지명을 받고 넥센에 입단해 신인왕에 오른 뒤 2022년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하면서 KBO리그를 대표하는 천재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동안 간판 내야수 셋을 MLB로 보내면서 총 2337만 7015달러의 포스팅비를 챙겼던 키움은 프로 7시즌을 꽉 채운 이정후의 포스팅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키움이 손에 넣을 포스팅비는 이정후의 계약 총액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이정후가 총액 2500만 달러 이하에 계약하면, 전체 보장 금액의 20%를 받는다. 계약 총액이 2500만 1달러~5000만 달러 사이면, 최소 기준선인 2500만 달러의 20%(500만 달러)와 2500만 달러를 초과한 보장 금액의 17.5%가 포스팅비로 지급된다. 또 이정후가 총액 5000만 달러를 초과하는 금액에 사인하면, 2500만 달러의 20%, 2500만~5000만 달러의 17.5%, 5000만 달러 초과 금액의 15%를 모두 더한 금액을 받을 수 있다.
현지에선 이정후의 계약 규모가 5000만 달러를 훌쩍 넘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의 유력 스포츠 매체들은 지난달 말부터 꾸준히 5년 6300만 달러(ESPN), 4년 6000만 달러(MLB 네트워크), 4년 5600만 달러(디 애슬레틱) 등 대형 계약을 점쳐왔다. 심지어 이정후의 대리인은 MLB 최고의 거물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다. 보라스는 자신의 고객이 될 선수를 엄선하고, '동급 최강' 계약을 끌어내는 에이전트로 유명하다. 이정후의 능력과 가치에 보라스의 협상 능력, 빅마켓 구단들의 영입 경쟁이 더해지면서 몸값이 계속 치솟는 분위기다. ESPN은 12월 8일자 기사에서 "이정후가 지난해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 레드삭스)의 계약 조건인 5년 9000만 달러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며 예상 금액을 파격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CBS 스포츠도 "25세 이정후를 영입하는 팀은 그의 전성기를 함께하게 된다"며 6년 9000만 달러 계약을 전망하기도 했다. 이정후와 키움 모두에게 분명 좋은 소식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메츠의 관심
이정후의 계약 규모만큼 관심을 모으는 건 그가 새로 몸담게 될 소속팀이다. 뉴욕포스트는 "이정후를 노리는 팀이 30개 구단 중 20팀에 달한다"고 썼다. 그중에서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이정후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여러 차례 러브콜을 보낸 팀이다. 올해 2월 키움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매일같이 스카우트를 보내 이정후를 면밀히 관찰했다. 피트 푸틸라 샌프란시스코 단장은 지난 10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이정후의 올 시즌 마지막 타석을 직접 관전하고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올해 말 샌프란시스코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한 밥 멜빈 감독도 "우리 팀은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수비력도 갖춘 새 중견수가 필요하다"며 이정후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멜빈은 올해 샌디에이고 지휘봉을 잡고 김하성을 내야 주전으로 중용한 감독이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는 내년 시즌 중앙 수비 보강이 시급하다. MLB닷컴은 "샌프란시스코가 중견수 포지션 업그레이드를 위해 이정후를 눈여겨보고 있다"며 "한국에서 골든글러브를 5회 수상한 이정후는 수비력을 갖춘 중견수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나 코디 벨린저 같은 전문 중견수를 영입한다면, 수비력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부자 구단' 뉴욕 메츠도 이정후를 향한 관심을 숨기지 않는 모양새다. 억만장자 스티브 코헨이 구단주인 메츠는 최근 수년간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뛰어난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이번 스토브리그엔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이목을 끌었는데, USA 투데이는 "메츠는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의 중견수 이정후에게 확실히 관심이 있다"고 전했다. 뉴욕 지역 일간지 AM 뉴욕도 이정후의 포스팅이 고지된 다음 날, '데이비드 스턴스의 발언을 토대로 예상한 2024년 메츠 선발 라인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직 메츠와 계약도 하지 않은 이정후의 이름을 9번 타순에 올려놓았다. 스턴스는 메츠의 야구 운영부문 사장이다. 그가 MLB 윈터 미팅에서 만난 현지 취재진에 이정후 영입 의지를 확실히 표현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AM 뉴욕은 "이정후는 KBO리그를 떠나 빅리그를 향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메츠의 내년 예상 라인업 중 가장 의미 있는 와일드카드가 될 수 있는 선수"라고 소개했다. 이 매체는 또 "이정후가 MLB에서 얼마나 효과적인 타자가 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한국에서 7시즌 통산 타율 0.340을 기록했지만, KBO는 마이너리그 더블A와 비교할 만한 수준의 리그"라면서도 "이정후의 콘택트 능력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메츠의 하위 타선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견고한 조각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이어 이정후의 수비 포지션을 '좌익수'로 적은 뒤 "MLB 생활에 수월하게 적응하려면 KBO에서 주로 맡았던 중견수보다 좌익수로 옮기는 게 나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샌디에이고 급부상
김하성의 소속팀 샌디에이고도 본격적으로 이정후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MLB 네트워크의 존 헤이먼 기자는 12월 7일 "샌디에이고 주전 외야수였던 후안 소토와 트렌트 그리셤이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샌디에이고가 KBO리그 출신 외야수 이정후를 영입할 거라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샌디에이고는 이정후의 유력한 행선지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MLB닷컴의 마크 파인샌드 기자도 이날 한 소식통을 인용해 "샌디에이고는 소토를 (양키스로) 보내면서 연간 3000만 달러 이상을 아끼게 됐다. 지금 샌디에이고에 남은 주전급 외야수는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뿐"이라며 "이정후는 샌디에이고의 영입 대상 리스트 우선 순위에 올라 있다. 계약이 빠르게 이뤄질 수도 있다"고 썼다.
샌디에이고가 이정후를 영입할 수도 있다는 전망은 오래전부터 흘러나왔다. 김하성 영입을 주도해 성공을 맛본 A.J. 프렐러 샌디에이고 단장이 이정후에게도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샌디에이고에는 소토, 그리셤, 타티스 주니어 등 탄탄한 외야진이 버티고 있어 이정후가 계약한다 해도 당장은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샌디에이고가 소토와 그리셤을 양키스로 보내고 투수 4명과 포수 1명을 데려오는 대형 트레이드에 합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전 외야수 두 명이 빠져나간 샌디에이고는 향후 이정후 영입에 총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커졌다. MLB닷컴은 앞서 "샌디에이고가 소토를 트레이드하고 마운드를 강화하면, 이정후 영입에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이정후는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내야수 김하성과 친한 사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정후를 필요로 하는 빅마켓 구단들 사이에 향후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정후에게 관심이 큰 구단 중 하나로 알려졌던 양키스는 한 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양키스 역시 마땅한 왼손 타자 외야수가 없어 이정후 영입을 염두에 뒀지만, 보스턴에서 뛰던 좌타 외야수 알렉스 버두고에 이어 또 다른 좌타 외야수 소토까지 확보하면서 여유가 생겼다. 이제 양키스는 마운드 보강으로 눈을 돌려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 에이스인 야마모토 요시노부 영입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