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과 징용 배상 문제 발언 등으로 지탄…재단 측 “좌우 다 포용, 국민통합 차원서 위촉”
#이영훈, 추진위원 임명 논란
이승만기념관 추진위원회는 지난 6월 28일 발족했다. 김황식 전 총리가 추진위원장직을 맡았다. 추진위에는 △고 이인수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상임고문 △박지만 EG 대표이사 △노재헌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등이 고문으로 위촉됐다.
4·19 혁명에 참여했던 이영일 전 의원, 주대환 죽산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등도 추진위원으로 참여했다. 추진위가 이 전 대통령 명암을 균형 있게 다룰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던 이유다. 당시 이영훈 전 교수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이승만재단은 7월 28일 정식 출범했다.
이승만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10월경 이 전 교수를 추진위원과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이 관계자는 “좌우를 다 포용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며 “(이 전 교수가)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해서 활동도 쭉 했고 (재단에서) 판단하기에 이분을 위촉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전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 강제 징용 일본 책임 부정 등으로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선진적인 제도가 도입됐고, 일본 자본이 대거 투입돼 조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됐으며 그 결과 조선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됐다는 이론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러한 식민지 개발 경험이 해방 후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 전 교수는 자신의 책 ‘반일종족주의’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했다.
이 전 교수는 2019년 8월 이승만 학당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이며, 이 제도는 해방 이후 민간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형태로 존속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교수는 반일종족주의에서 “위안부 제도는 원래 있던 공창제가 군사적으로 동원 편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위안부’들은 ‘고수익’을 챙겼고,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강제연행은 없었다. 위안부 숫자를 과장해선 곤란하다”고 적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조명을 받았다. 한때는 ‘아마존 재팬’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전 교수는 2023년 4월 24일 주간조선 인터뷰에서는 징용 배상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커진 원인을 묻는 말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월급도 못 받고 노예처럼 혹사당했다’고 그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문제가 커졌다”며 “한국인의 거짓말 문화와 물질주의, 근대국가 국민에 어울리지 않는 비국민의식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이 전 교수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줄곧 ‘대한민국 국부’라고 평가했다. 이 전 교수는 뉴라이트 중요 인사다. 뉴라이트 인사들은 이 전 대통령을 국가의 아버지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주 4·3 사건과 4·19 혁명 등도 이 전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
이 전 교수는 2018년 7월 27일 이승만TV에서 “(이 전 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라며 “(한국의 민주화 세력들은) 그들이 (지난 70년 동안) 누린 자유가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자유는) 바로 건국의 아버지가 가져다준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8월 2일 이승만TV에 올라온 ‘이승만 공7과3론의 허구성’에서는 이 전 대통령 독재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은 역사가 그에게 강요한 십자가와 같은 것”이라며 “어느 의미에서는 최후의 봉공이었다. 흔히 이야기되는 이승만 공7과3은 너무 경박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재단의 공식 입장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김황식 전 총리는 10월 17일 TBS 라디오 ‘살 만한 세상 서두원입니다’에서 “서로 통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이 (기념관) 건립의 기본 취지”라며 “무조건 이승만 대통령의 과는 묻어두고 무조건 찬양을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일을 해나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개인자격으로 추진위에 참여했다고 밝힌 주대환 부회장은 7월 5일 일요신문 통화에서 “기념관에는 당연히 객관적으로 공과가 다 포함돼야 한다. (기념관을 반대하는) 분들의 걱정과 우려는 일리가 있다”며 “초대 대통령이니까 ‘국부’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기념관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그렇게 하니까 반발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첫 삽 뜨기도 전에…이승만 기념관 건립 잡음 나오는 까닭).
주대환 부회장은 12월 26일 통화에서 “(이 전 교수가) 이승만 대통령을 선양하고 되살리는 운동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주 부회장은 “(추진위원은) 25명쯤 되는데, 한 분 한 분 다 따지면 이 전 교수보다 국민 정서의 끝에 있는 분도 몇 분 있다”며 “이 전 교수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분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승만재단은 이 전 교수의 위촉 사실을 고문단엔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현철 이사장은 “추진위원회에서 하는 일은 추진위에서 하고, 인선이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상의를 안 한다”며 “(이 전 교수가) 자문위원으로 돼 있는 것은 몰랐다”고 전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그런 인사는 바람직한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추진위원에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이인호 전 KBS 이사장, 김길자 전 경인여대 총장, 김명섭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김길자 전 총장은 배우자인 백창기 전 이사장과 함께 2014~2015년 김황식 전 총리의 딸 등 교수 3명을 부정 채용했다는 혐의로 2019년 기소됐다. 둘은 2016년 교직원 성과급 4500만 원을 지급한 뒤 이를 현금으로 되돌려 받아 이승만 전 대통령 석상 제작비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인천지방법원 형사10단독(재판장 현선혜)은 6월 16일 1심 선고공판에서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 전 총장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총장 부부는 판결 직후 항소했다.
재단 이사장인 김황식 전 총리는 “김길자 전 총장은 처가 쪽과 사돈 관계로 연결된 먼 친척이다. 이런 인연으로 딸이 시간강사 자리를 소개받아 처음 경인여대에 간 것이지, 과거 내가 했던 재판 결과와는 무관하다. 김길자 전 총장이 알아서 배려했을 수는 있지만, 우리 쪽에서 김 전 총장에게 채용을 부탁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추진위원 명단에 있다. 조 후보자는 6월 28일 발족식 때부터 함께했다. 조 후보자 부친은 조지훈 시인이다. 조지훈 시인은 ‘지조론’이라는 수필을 통해 이승만 정부를 비판했다. 4·19 혁명 때는 학생운동을 지지하기도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뉴라이트 인사인) 이영훈 교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조지훈 선생의 아들이 추진위원회에 있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방 기획실장은 “조지훈은 지조론과 정의론을 말한 (이승만 정부 비판에 앞장선) 분”이라며 “4·19 혁명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사업에 (조지훈 시인의 아들이) 가입한 것이다.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500만 원 기부
국가보훈부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을 ‘예우에 관한 법률(전직대통령법)’이 아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에 근거해 추진했다. 국가유공자법이 적용되면 정부가 건립비용을 100% 뒷받침할 수 있지만, 전직대통령법에 따르면 최대 30%까지만 지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지난 4월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독립운동 이력만을 부각하고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 등 이 전 대통령의 과오는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추진위는 ‘대통령으로서 예우하자’는 점에 공감해 전직대통령법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70%에 해당하는 비용은 국민 성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모금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 이영애 씨가 5000만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사회 각계각층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9월 26일에는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가 기부금을 냈다. 10월 19일에는 해병대 전우회가 기부금을 보냈고, 10월 19일에는 기독교계가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11월 21일에는 해군사관학교 총동창회가 힘을 보탰다.
정치인들도 동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1일 500만 원을 기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은 세계를 무대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으며, 이 전 대통령이 이룩한 시장경제체제와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됐다”며 “대통령은 성금을 기부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의 성공을 응원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뒤이어 오세훈 서울시장이 11월 2일 건립 기금 400만 원을 냈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도 11월 3일 300만 원을 보냈다. 재단에 따르면 12월 26일 기준 약 80억 원의 성금이 모였다. 건립비용은 총 460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방학진 기획실장은 이 전 대통령의 명암을 제대로 다루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념관에 세금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방 기획실장은 “이번에 30%에 해당하는 국고 지원은 2024년 예산에 포함이 안 돼 있다”며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예산에 포함이 안 돼 있어서 국고 지원은 현재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재단 관계자는 “(정부 지원 비율은) 정해진 것은 없다. 기부 액수에 따라서 (결정) 하면 될 것 같다”며 “일단은 기업후원이나 이런 것들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 국민들이 참여하는 것을 최대한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영훈 전 교수 위촉에 대해서는 “이승만 학당이라는 활동을 꾸준히 했다. 통합 차원에서 (추진위원 위촉이) 타당하지 않겠냐는 판단을 (재단에서) 했다”며 “이분이 추진위원이 됐다고 해서 국민 통합형으로 가지 않겠다는 취지로 선회한 것은 아니다. 큰 틀에서 그렇게 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일요신문은 이영훈 전 교수가 학장으로 있는 이승만 학당을 통해 관련 내용을 질문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