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털어도 먼지 안 나와…지금 수사 방식 중수부 되살아난 느낌”
―검사장 사표를 내자마자 총선 출마 준비에 나섰다.
“사직의 변에서 ‘검사로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회의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원래 국민의 편에 서서 피해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의 도구가 된 것 같다. 공익을 위한다기보다 정치 편향된 어떤 사람들에 사유화돼 사익을 추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검찰 내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이제 밖에 나가서 검찰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검찰을 되돌려놔야겠다 생각에 뛰쳐나왔다.”
―2021년 수원지검장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사건’을 지휘했다.
“22년 검사 생활 통틀어 가장 화나고 자괴감이 든 사건 중 하나다. 사건 수사는 일반 상식으로 접근했을 때 납득이 돼야지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우선 이재명 대표와 쌍방울 측 임원들 사이에 인적 네트워크가 별로 없었다. 또한 당시 이 대표는 직권남용·공직선거법 등 혐의로 2심에서 일부 유죄를 받고, 대법원 선고가 계류 중인 상황이었다. 대법원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 그런 상태에서 쌍방울이 친분도 없는데 20억 원이라는 거금을 현금으로 대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구조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맡겨졌으니 하는 데까지 해보자 해서 수사하는데 고생을 했다.”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나 압박이 있었나.
“그건 없었다. 그럼에도 수원지검에 배당이 됐기 때문에 수사를 했다. 그리고 이미 언론에서 뭔가 혐의가 있는 것처럼 계속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검찰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다만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편에 서서 수사할 게 아니라, 원리원칙에 따라 증거와 법리만 보고 결정하자 생각했다. 하지만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사건은 털어도 털어도 먼지조차 나오지 않았다. 실체를 밝히기 위한 사건이 아니라 선거를 위한 네거티브 사건이었다.”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하는 것을 두고 비판도 나온다.
“이미 사건 배당 받았을 때 언론에서 이재명 대표와의 대학 학연으로 엮어 내가 이 대표에 유리한, 부당한 수사를 할 것이라 낙인을 찍었다. 그런 상황에 개의치 않고 원리원칙대로 수사했다. 하지만 관련 사건은 의혹이 계속 붙어서 확인할 게 늘어났다. 그런 와중에 대선이 끝났고, 정권이 바뀌고 나도 인사이동으로 수원지검을 떠나고 새로운 수사팀이 들어왔다. 그 수사팀이 나와 이 대표의 관계를 고려해 원점에서 다시 철저히 수사한 걸로 알고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에서 인사한 그들이 변호사비 대납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내가 종결한 것이 아니다. 난 편향된 수사를 한 게 아니고 법조인으로서 원칙대로 했다.”
―출마 준비 과정에서 이 대표와 의견을 나누었는지.
“따로 연락한 적은 없다. 이전에도 내가 수원지검장으로 발령 받고 가볍게 인사 정도 해 일면식만 있을 뿐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해 평가한다면.
“얼굴만 아는데 평가한다는 건 어렵다. 그런데 검찰이 이 대표 수사하는 걸 보면 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은 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지금 이 대표를 향한 수사는 죄를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목표를 설정하고 나가는 듯하다. 이 대표뿐 아니라 주변, 가족 모두가 2년 넘게 수사를 받고 있는데, 이런 적은 없었다. 굉장히 안 좋은 선례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어떻게 보나.
“검찰은 법원과도 또 다른 굉장한 힘을 갖고 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그런 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잘 활용할 수도 있다. 이를 공적으로 원칙대로 잘 운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반대로 나쁜 마음을 먹으면 충분히 악용할 수 있는 소지들이 많다. 나는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 검찰 출신 대통령·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나와 미래지향적 검찰로 새로 탈바꿈할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 지금 수사하는 방식을 보면 과거 중수부 수사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중수부 방식의 수사는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모아져 폐지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우려가 된다. 이 정권이 끝나고 여든 야든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검찰이 지금과 같은 역할을 못하고 견제가 들어올 것 같다.”
―법무부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취소’ 항소심 선고를 받아들여 상고를 포기했다.
“이례적이다. 1심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정당했고, 오히려 면직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선고를 이끌어낸 변호인들을 윤석열 정부 들어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교체한 것 자체가 사실 문제가 심각했다. 이후 법무부를 대변하는 변호인들이 항소심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보니 패소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 사안은 양 진영이 나뉘어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는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비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 오히려 더 공정하게 진행하고 보이는 모습도 정의로워야 했는데, 변호사 교체에 의구심이 제기됐고 또 결과도 이렇게 나오니까 불공정하게 비치는 거다.”
―국회에 입성하면 검찰개혁을 우선순위로 고려하는 것 같다.
“내게 고향과 같은 검찰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된다. 그러기 위해선 개혁이 필요하고, 몇 가지 방안들을 생각하고 있다. 먼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기본적으로 기소와 수사는 좀 분리하고 일부 권한은 외청으로 떼어낼 필요가 있다. 지금 공수처가 분리돼 있지만 그 기능이 한정돼 있다. 선거사건이나 부정부패, 정치적 사건 등 더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마약청 등도 신설해 검찰에 집중된 수사권을 나눠야 한다. 경찰의 국가수사본부도 강화해 전문 수사청을 만들면 수사 파트가 세 군데로 나눠진다. 검찰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수사권을 행사하고, 기소 여부나 수사지휘만 하면 균형과 견제가 잘 이뤄질 것 같다.”
―검찰 손해배상 특별법 필요성도 언급했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만으로 개혁이 되는 게 아니다. 물론 검찰 구성원 대다수는 원칙대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가며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소수의 검사들이 본인의 정치적 성향 혹은 윗선의 압박으로 목표 지향적인 수사나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이 민사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검사들이 본인들 돈으로 손해배상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이를 통해 인사고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생각을 하면 누군가의 압력이나 부탁을 받아도 부당한 수사를 안 할 것이다.”
―검사 비리를 막기 위해 민주당이 검사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 검사는 행정 공무원이다. 탄핵은 어감상 통치권자나 고위 공직자에 정치적으로 적용하는 건데, 검사가 그 정도 지위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검찰이 스스로 문제가 있는 구성원에 대해 공정하게 징계나 제재하지 않고 ‘제 식구 감싸기’로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으로서도 검사 비리를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탄핵을 선택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검찰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을 추진했는데 반발이 심했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두 개 중 무엇을 가져야 하느냐를 두고 논의가 치열했다. 그땐 수사권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반면, 최근엔 수사지휘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높은 것으로 안다. 2차적 수사권 정도만 부여해주면 본 기능을 잘 발휘할 거라 생각한다.”
―고향인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 지역구에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현역 소병철 의원과 ‘검사 출신 대결’ 구도다.
“소병철 의원은 내가 존경하고 친한 분이다. 아직 소 의원과 출마 관련해 대화는 안 해봤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고, 소 의원이 추구하는 바가 있다. 지역구 주민들의 선택에 맡기고 선의의 경쟁을 한번 해보려고 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