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중도표 유입 기대 속 이낙연은 마이웨이…보수진영선 지역의료 무시 등 프레임 싸움 걸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2일 오전 10시 29분쯤 부산 강서구 대항전망대에서 가덕도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준비된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김 아무개 씨에 습격을 받아, 흉기에 왼쪽 목을 찔렸다. 이 대표는 부산대병원에서 응급조치 등을 받은 뒤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현재 병실에서 회복치료를 받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야당 총수가 살해 위험을 겪은 적은 비일비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69년 6월 신민당 원내총무로 국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대정부질의를 한 뒤, 서울 상도동 자택 인근에서 괴한이 던진 질산에 차량 창문 일부가 녹아내리는 테러를 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3년 8월 일본 망명 중 도쿄에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요원들에게 납치, 선박에 감금돼 동해에 수장될 뻔했지만 129시간 만에 서울 동교동 자택 부근에서 풀려났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200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커터칼 피습’, 2022년 송영길 전 대표의 ‘망치 피습’ 등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재명 대표를 죽이려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접한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은 큰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더 나아가 이 대표의 피습에 따른 파장이 어떻게 퍼져나갈지도 관심사다.
5일 현재 이 대표는 수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의 수술을 집도한 민승기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1월 4일 브리핑을 열고 “순조롭게 회복 중이나 외상 특성상 추가 감염이나 수술 합병증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경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절대적 안정이 필요해 당분간 치료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에선 정신적 충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무시할 수 없다. 이 대표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일반 대중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어느 누가 또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갖게 된다”며 “이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산전수전 다 겪고 올라온 만큼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본다”고 전했다.
정가에선 이번 일이 결과적으로 민주당엔 전화위복이 될 것으로 점치는 이들이 많다. 현재 민주당은 친명과 비명 간 내홍에 휩싸인 상태다. 비명계에선 이 대표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출범도 임박했다. 하지만 피습 사건으로 일단 시간은 벌었다는 평가다. 거세게 불었던 당의 원심력 역시 약화되는 모양새다.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의 추후 밝혀질 사건 전말에 따라 여권이 그 책임론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또한 기존의 야권 지지층은 물론 동정 여론으로 인한 중도 표심까지 가져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피의자 김 씨가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당원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배후설’까지 거론하고 있다.
총선 정국에서도 이 사건은 뜨거운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영이 프레임 싸움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보수 진영에선 사건 후에 벌어진 일련의 조치 등을 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극우 유튜버들은 이 대표 측의 자작극 음모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정치권 관계자는 “사건이 터진 당일 보수진영에선 ‘서울대병원 전원으로 부산 홀대’ ‘닥터헬기 특혜 이송’ 등 프레임을 짜고 반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두고 윤석열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야권의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대선 경쟁자이자 제1야당 당대표를 범죄자 취급하며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있다. 검찰도 2년이 넘게 먼지털이식 수사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 발맞춰 극우 진영에서는 끊임없이 이 대표를 욕하며 ‘악마화’하고 있다. 피습 이후에도 ‘자작극’ ‘닥터헬기 특혜’ 등 막말을 쏟아내지 않았느냐”며 “이러한 정치적 세뇌 공격이 결국 실제 신체적 폭력까지 행사하도록 야기한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 피습으로 야권의 정치일정은 사실상 멈췄다. 1월 첫 주 신당 창당이 예상됐던 이낙연 전 대표는 이 대표 피습 이후 공식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계획했던 ‘비명계’ 주축 모임인 ‘원칙과 상식’ 의원들도 일정을 연기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탈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이 전 대표 측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1월 7일 광주를 찾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이르면 1월 9일경 민주당 탈당 및 창당의 구체적 구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원칙과 상식’ 소속의 이원욱 의원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호전되면 다시 최후통첩을 날릴 것이라고 했다(관련기사 [인터뷰] ‘원칙과 상식’ 이원욱 “이재명 대표 호전되면 최후통첩 날릴것”).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경호 문제도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4일 광주를 방문했을 때 경찰 등 경호가 강화됐다. 광주송정역에서 수십 명의 경찰에 에워싸인 채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날 한 위원장 광주 일정에는 광주경찰청 소속 기동대 4개 중대, 280여 명의 인력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해 5개 경찰서 정보과 등 경찰 인력도 경호에 나섰다.
빨간 마스크를 쓴 일부 당원들이 자원봉사로 한 위원장과 일정을 함께하며 자체 경호에 나서기도 했다. 경찰뿐 아니라 119구급대 차량도 한 위원장 전체 동선을 따라붙었다.
한 위원장이 국립 5·18민주묘지에 방문해 참배하는 과정에서 한 중년 여성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고 고함치는 등 소란을 피우자 곧바로 경호 인력이 제압했다. 보수 유튜버와 지지자 수십 명이 “한동훈 파이팅”을 외치며 악수를 요청하며 몰리자, 경찰과 당직자들이 이를 저지하며 잠시 충돌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과잉 신변보호’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 ‘국민의힘이 공문으로 경찰에 경호 강화를 요청했다’고 보도하며 불을 지폈다. 하지만 국민의힘 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경찰에서 경호 강화 관련 문의가 있었으나, 당에서 추가로 협의하거나 요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경찰과 소방 경호가 강화되다 보면 범죄 예방 및 대응·군중 질서 유지·구조구급 상황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제 4월 총선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전국 각지에서 유세가 시작될 것이다. 그럼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각 지역구에서 거리로 나와 유권자들과 만나게 된다. 이번 이 대표 피습의 모방범죄가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당과 후보가 자체적으로 경호 인력을 충원하겠지만, 경찰 및 소방당국도 투입될 수밖에 없다. 그럼 자원이 한정된 경찰·소방에 다른 빈틈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