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탈당 등 압박 거세져 ‘친명 체제 고삐’ 관측…일각, 반명 포함 통합·확대 선대위 구성 전망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월 10일 병원에서 퇴원했다. 흉기 피습으로 수술을 받은 지 8일 만이다. 이 대표는 서울대병원을 나서며 “우리 국민 여러분께서 살려주신 목숨이라 앞으로 남은 생도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서만 살겠다”라며 “모두가 놀란 이번 사건이 증오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끝내고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제대로 된 정치로 복원하는 이정표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이 정치를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당분간 자택에서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 당무 복귀 시점에 대해 “자택 치료 경과와 의료진 의견들을 종합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 제한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당무에 대해서는 의사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마음 편히 회복 치료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다. 22대 총선이 90일 앞으로 다가왔고, 눈앞에 놓인 과제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탈당이 예상됐던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이 이 대표 퇴원을 전후로 당을 나갔다. ‘비명계’ 주축 모임인 ‘원칙과 상식’의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의원이 이 대표 퇴원 당일 탈당 및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셋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 독선과 독주, 무능과 무책임을 심판해야 하지만 지금 이재명 체제로는 심판하지 못한다”며 “방탄·패권·팬덤 정당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했지만 거부당했다”고 했다.
1월 11일에는 이낙연 전 대표가 탈당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정당’ ‘방탄정당’으로 변질했다”며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를 향한 사당화 논란도 거세다. 최근 불거진 ‘친명계’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성희롱 논란이 여기에 불을 지폈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이 입원 중이던 이 대표와 현 부원장 징계 수위를 의논하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당 안팎에서 사당화 비판이 나왔다.
이원욱 의원은 1월 1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당의 윤리 감찰 시스템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측근 의원과 당대표가 증거에도 남을 문자 메시지로 후보자나 당원에 대한 징계 수위까지 논의된다는 건 공당으로서 있을 수가 없는 얘기”라며 “완전 사당화 되지 않은 정당이라고 한다면 있을 수 없는 얘기인데 사당화의 완전 증거를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역시 1월 11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이 대표의 병상에서 맨 처음 일성이 ‘현근택은요’였다”며 “사당화의 완전 증거를 보여준 사례”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친명 체제 공고화 지적에 선을 그었다. 당대표정치테러대책위원회 간사 박상혁 의원은 1월 10일 YTN라디오 ‘이슈앤피플’에 출연, 이원욱 의원을 향해 “이 대표가 병상에 있기 때문에 당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중진 의원에 조언을 구하는 것이 왜 사당화냐”며 “본인도 예전에 정세균 총리라든지 이런 분들과 의견그룹을 만들고 조언을 드리고, 의견을 보좌하는 것을 많이 해보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1월 12일 공관위 1차 회의에서 서면 대독 인사말을 통해 “공정한 공천 관리는 총선 승리 핵심 열쇠”라며 “혁신 공천으로 미래의 희망을 선사하는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혁백 공관위원장 역시 “민주당 공천에서는 친명도 없고 비명도 없고 반명도 없다. 오직 더불어민주당계만 있다”며 “국민참여 공천제에 따라 모든 후보는 공정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계파 배려가 없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총선 승리를 위해 선명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여권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 야권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와 ‘원칙과 상식’ 3인방이 탈당했다. 이로써 4월 총선에서 제3지대 정당 등장은 현실화됐다. 윤석열 정부 부정평가층과 무당층 유권자들에 누가 더 호소력 강한 메시지를 내서 표를 가져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럼 경쟁적으로 선명성 강한 정치혁신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민주당 내에서 강하게 개혁 목소리를 내는 쪽은 친명계 인사들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친명 체제가 공고해지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총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 싸움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부여당을 향해서는 ‘김건희 특검법’ 및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앞서 대통령실은 김건희 특검법을 국회가 정부로 이송한 지 하루 만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1월 9일 국회가 처리한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행사에 대한 국민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월 8일부터 10일까지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65%가 ‘잘못한 결정’이라고 답했다. ‘잘한 결정’은 23%에 불과했다. 보수성향이 강한 TK(대구·경북) PK(부산·울산·경남)를 포함해 전 지역에서 ‘잘못한 결정’이라는 응답이 높았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악재가 쌓이고 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은 물론, 이태원 특별법까지 거부권을 행사하면 큰 역풍에 직면할 게 눈에 뻔하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와 직결된 문제인데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며 “이렇게 악재를 빨리 털어내지 못하면 총선 기간 내내 민주당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탈당파를 겨냥한 공세도 높였다. 민주당은 1월 11일 의원 129명의 공동성명을 통해 이낙연 전 대표 탈당을 공개적으로 만류했다. 강득구 강민정 강준현 신정훈 의원 등은 성명을 통해 “명분 없는 창당으로 민주당을 분열의 길로 이끌어선 안 된다”며 “민주당의 분열은 윤석열 정권을 도와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전 대표가 민주당에서 5선 국회의원·전남도지사·국무총리 등을 지낸 것을 언급한 뒤 “단 한 번의 희생도 없이 모든 영광을 민주당의 이름으로 누리고서도 탈당하겠다고 한다”며 “이낙연을 키운 민주당을 기억하기 바란다, 정권교체를 위한 길이 어떤 쪽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3남’ 김홍걸 의원도 자신의 SNS에 “김대중 정신이 실종됐다는 이낙연 대표님, 정작 김대중 정신을 저버린 분은 대표님 본인입니다”라고 비판했다.
친명계는 ‘원칙과 상식’ 의원들 탈당을 두고도 4인방 중 한 명이었던 윤영찬 의원이 막판에 뜻을 바꿔 민주당에 남기로 한 점을 들어 탈당 명분이 희석됐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윤 의원 잔류 선택에는 본인의 지역구의 강력한 경선 후보였던 현근택 부원장이 성희롱 발언 논란에 휘말린 게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친명계로 알려진 민주당 관계자는 “‘원칙과 상식’ 4인 의원들은 ‘이 대표 사퇴’ 및 ‘탈당 선언’ 압박이 본인들의 공천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 타파와 정치개혁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현근택 부원장 논란과 윤영찬 의원의 당 잔류는, 결국 그들의 그동안의 당내 분란 조장이 공천 때문이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탈당의 명분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재명 대표가 통합·확대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은 결국 자신이 품을 수 있는 세력을 최대한 하나로 모아 의석수를 늘리는 싸움이다. 이 대표도 피습 이후 퇴원하면서 다시 한 번 ‘통합’ 메시지를 내지 않았느냐”며 “친문계·친노계·동교동계를 포함해 반명계까지도 함께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