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PBR·배터리주 묶여도 주가 힘 못 써…현대글로비스 “주주 친화 정책 향후 주가에 반영될 것”
현재까지 현대글로비스의 유의미한 주가 상승은 없다. 최근 저PBR 종목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PBR 1배 미만인 현대글로비스는 여기서도 소외되고 있다. 이규복 대표 취임 후 지지부진한 주가와 실적에 이 대표의 입장이 난처(관련 기사 재무통인데 실적 떨어졌네…현대글로비스 ‘이규복 대표 자질론’ 솔솔)하게 됐다.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생각이 복잡해질 듯하다.
지난 1월 25일 진행된 기업설명회에서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는 이차전지 재활용 사업 진출을 선언하는 등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이규복 대표는 “전기차(EV)용 배터리 사업을 가시화해 나갈 예정”이라면서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하고 있는 물류 역량을 활용하면서, 관련 회사에 지분투자 및 국내외 관련 산업을 위한 설비 구축 작업도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용 후 배터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면서, 배터리 재활용 사업 분야에서 현대글로비스의 초기 사업기반을 단단히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배터리 관련 사업에 발을 넓히고 있다. 지난 1월 22일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전처리 기술을 확보했다면서 해당 기술을 가진 (주)이알과 지분 투자에 관련한 투자계약서(SSA)를 체결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실적 부진으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시각도 그중 하나다.
이규복 대표가 2022년 말 취임한 이후 현대글로비스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현대글로비스는 2023년 잠정치 기준 매출액 25조 6832억 원, 영업이익 1조 5540억 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8%, 13.6% 감소했으며, 당기순이익은 1조 700억 원으로 전년보다 10.3% 줄었다. 실적 부진은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지난해 21만 원대까지 올랐던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이규복 대표 취임 후 종가 기준 20만 원대에 단 한 차례도 오르지 못했다.
이규복 대표의 노력에도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좀처럼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첫 보도자료 배포일인 지난 1월 22일 종가는 16만 9100원으로 전거래일 대비 1200원 상승했지만 이후 등락을 반복하며 16만~18만 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그 사이 시장은 저PBR 관련 종목들이 주도하고 있는 양상을 보였다. 금융당국이 저평가 기업들의 가치를 높이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이달 중 발표하기로 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PBR 0.87배 수준인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흐름은 지지부진하다. 공교롭게도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이자 같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자동차(현대차)의 주가는 저PBR 관련주로 묶이며 고공행진이다. 16만 9000원까지 빠졌던 현대차 주가는 25만 원대까지 상승한 후 현재 23만 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주가의 지지부진과 현대차 주가의 고공행진이 고착화되면 정의선 회장의 지배구조 개편에 드는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대글로비스 주가 하락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은 현대글로비스 최대주주인 정의선 회장이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정의선 회장이 확보한 이들 회사 지분은 현대차 2.04%, 기아 1.74%, 현대모비스 0.32%에 불과하다. 정의선 회장이 이들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한 모습이라 지분 매입을 통해 이들 회사 가운데 한 곳의 지배력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 규모로 보면 현대모비스(시총 약 21조 4000억 원), 현대차(약 50조 4000억 원), 기아(약 46조 2000억 원) 가운데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확보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 비용이 가장 적게 든다. 그래도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30% 확보하려면 6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지분 비중이 높은 곳은 아무래도 경영진이 주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물론 주가의 흐름을 경영진에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주가관리를 잘 하지 못하면 오너 일가의 부정적인 평가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배터리 관련 사업은 2021년 폐배터리 용기 특허를 신청하면서 이미 진행됐던 것”이라면서 “그룹 내 저 저PBR 주 가운데 현대차나 기아가 저평가됐다는 시각이 나오면서 (현대글로비스에 비해) 주가가 많이 오른 것이며, 현대글로비스도 주주 친화적인 정책과 향후 배터리 사업 등의 성과가 나타나면 주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