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탄원서’ 차범근, ‘원희룡 후원회장’ 이천수 등 연일 화제…홍준표 축구 훈수로 존재감
타의로 포문을 열었던 인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슈퍼스타 박지성이다. 박지성은 2023년 12월 국민의힘 총선 인재 영입설에 휩싸였다. 국민의힘이 수도권 핵심 거점이자 험지인 수원 승리 플랜 일환으로 박지성 영입을 고려한다는 내용이었다. 해프닝으로 끝났다. 박지성이 정치권 진출 가능성을 칼같이 차단한 까닭이었다.
2023년 12월 14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12회 JS 파운데이션 재능학생 후원금 전달식’을 마친 뒤 박지성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면서 “현재 거주지가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에 놀랐다”고 했다. 박지성은 “정치인이 된다는 생각, 상상을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상상을 할 필요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제게 제의를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웃었다.
이 해프닝으로부터 얼마 뒤엔 1세대 슈퍼스타를 둘러싼 설화가 불거졌다.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이야기다. 2024년 1월 차 전 감독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입시 비리 사건’ 재판부에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차 전 감독 탄원서 제출 소식은 AFC 카타르 아시안컵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알려져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아시안컵 당시 차 전 감독 차남 차두리 코치는 ‘클린스만호’ 코칭스태프로 활동하고 있었다.
탄원서에서 차 전 감독은 “조국의 아이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라면서 “그 용기와 반성을 깊이 헤아려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고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 탄원서에 따르면 차 전 감독은 “(조국 사태가) 벌써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면서 “그동안 조국 가족이 받은 고통과 그들이 감수한 징벌은 비슷한 경험을 한 대한민국 수많은 학부모에게 큰 경종이 됐으리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탄원서가 논란 중심에 서자 차 전 감독 측은 “조 전 장관과 사적 인연은 없으며, 조 전 장관에 대한 지지나 정치적 성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축구계 관계자에 따르면 차 전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차두리 코치 대학 입시 과정에서 각종 논란에 휩싸인 전력이 있는 까닭에 조국 전 장관 입시비리 논란에 동병상련 감정을 느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국 전 장관은 1월 31일 유튜브 채널 ‘새날’ 라이브방송에서 탄원서 논란에 휩싸인 차 전 감독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조 전 장관은 “차 한잔, 밥 한끼 먹은 적 없다”면서 “나와 내 가족하고 사적인 연이 하나도 없는데 탄원서를 써줬다고 해서 크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은 “기사가 나가니 많은 사람이 (차 전 감독을) 공격하지 않느냐”면서 “이런 것까지 감수하게 만들어 나로서는 죄송스럽다”고 했다.
2월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일원이었던 슈퍼스타 출신 이천수가 정치권에서 직접적인 행동을 개시했다. 인천 계양을에서 펼쳐질 ‘명룡대전’에 이천수가 참전했다. 이천수는 원희룡 국민의힘 후보 후원회장으로 두 팔을 걷어 붙였다. 제21대 총선에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를 도왔던 이천수가 4년 만에 같은 지역구 다른 당 후보를 직접 지원하게 된 상황이다.
이천수 후원회장 영입은 원희룡 후보가 직접 제안해 성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천수는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면서 “그런데 사람은 좀 알 것 같다”고 했다. 이천수는 “어떤 분이 계양 발전을 위해 필요한지, 어떤 분이 계양에 있어야 주민들이 행복할 수 있는지, 인천 계양이 행복해져야 인천이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원 후보를 지지하고 후원회장을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천수는 원희룡 후보와 동행하며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지역 정치권에선 사실상 ‘러닝메이트’나 ‘수행실장’처럼 이천수가 원 후보와 밀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지역 토박이’면서 전국적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이천수가 여권 헤비급 인사와 다니면서 겪는 고초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3월 8일 원희룡 후보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3월 7일 계양역에서 출근 인사를 하는 중 한 남성이 이천수 후원회장에게 악수를 청하며 손을 잡고는 허벅지를 무릎으로 가격했고, ‘하지 마세요’라고 했음에도 추가 가격을 시도했다”면서 “같은날 오후 2시께 임학동에서는 드릴을 든 한 남성이 ‘두고 보자, 내가 너의 집도 알고 와이프와 애들이 어디 사는지도 안다’면서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원 후보는 이천수를 향한 신변 위협과 관련해 “명백한 범죄”라면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고,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원 후보는 “폭행과 협박을 당한 이천수 후원회장에게 면목이 없다”고 덧붙였다.
왕년의 축구스타를 후원회장으로 영입한 원 후보는 ‘이재명 클린스만론’을 띄우기도 했다. 3월 2일 원 후보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난 25년 동안 민주당 당대표를 2명이나 배출했지만, 계양 발전은 더뎠고, 주민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이제는 더 이상 범죄 혐의자를 공천해도, 허무맹랑한 공약을 내던져도, 무조건 당선시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 후보는 “범죄 혐의자냐 지역 일꾼이냐”면서 “클린스만이냐 히딩크냐”라고 반문했다. 이재명 대표를 위르겐 클린스만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유하면서 원 후보 본인을 4강 신화 주역인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에서도 묵직한 ‘축구 논쟁’이 오갔다. 2월 22일 민주당이 ‘비명횡사 공천 논란’으로 들썩이고 있을 시기,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공천갈등을 축구대표팀 ‘손흥민-이강인 갈등’에 비유했다. 박 전 원장은 국가대표 이강인이 영국 런던을 찾아 손흥민에게 직접 사과한 것처럼 이재명 대표가 직접 공천 파동을 수습해야 한다는 취지 발언을 했다.
박 전 원장은 “이강인이 손흥민을 찾아가서 하듯 ‘잘못은 잘못했다’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이강인이 손흥민을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그러니까 손흥민이 다 껴안아주지 않느냐”고 했다. 당 내홍으로 번지는 공천갈등 국면에서 이재명 대표가 사과하는 ‘이강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대표를 ‘손흥민’에 비유했다. 2월 28일 정 최고위원은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깃발과 상징이 계승됐다”면서 “축구로 치면, 차범근-황선홍-박지성-손흥민으로 깃발이 계승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계보와 축구 레전드 계보를 평행으로 배치해 이 대표가 ‘손흥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최고위원은 “지금 민주당의 깃발이요 상징은 이재명 대표”라면서 “축구팬들은 ‘나는 황선홍까지만 지지한다’거나 ‘박지성까지만 지지한다’고 하지 않고 현재 한국 축구 상징인 손흥민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했다. 정 최고위원은 “민주개혁 진보세력 국민들은 그 상징과 깃발인 김대중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노무현과 문재인을 지지하고 지켰다”면서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꿈’을 향해 이재명 깃발을 지키고자 한다”고 했다.
그는 “노장 선수 자리에 (신인선수를) 교체하는 것이 축구계 흐름이라면 정치계도 신인 정치인들이 노쇠한 정치인을 밀어내고 교체한다”면서 “이것이 시대흐름이고 정신”이라고 했다. 대규모 친문 물갈이에 대한 ‘세대교체론’ 명분을 내세운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치 상황을 축구에 비유하는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축구에 직접 훈수를 두는 케이스도 있다. ‘축구 훈수’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는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홍 시장은 역대급 라인업을 가지고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한 ‘클린스만호’를 연일 직격했다.
2월 14일 홍 시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클린스만 해임 안 하면 앞으로 국가대표 경기 안 본다”라면서 “일개 무능한 감독 하나가 이 나라를 깔보고 국격을 무너뜨리는 터무니없는 행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고 했다. 홍 시장을 필두로, 권성동 의원, 원희룡 후보 등 정치인들이 ‘클린스만 경질론’을 강력하게 띄우며 ‘축구 마케팅’에 동참했다.
대구 FC 구단주를 겸임하고 있는 ‘축구계 관계자’ 홍 시장은 2월 16일엔 손흥민-이강인 갈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홍 시장은 “대표선수도 이참에 싸가지 없는 사람, 겉멋에 취해 헛발질 일삼는 사람은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홍 시장은 “정치권에서 소위 싸가지 없다는 비판을 받으면 능력 여하를 불문하고 퇴출되듯이 축구나 스포츠계에서도 그런 논리는 적용된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2월 2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준표 대구시장 ‘훈수’를 반박했다. 이 대표는 “누구도 홍 시장님에게 ‘이강인 인성 디렉터’를 맡긴 적 없다”면서 “정치인이 이렇게 줄기차게 선수 개인 인성을 운운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축구는 핫 키워드로 부상 중이다. 슈퍼스타 출신들을 둘러싼 설화부터 축구계 상황에 정치권을 대입하는 비유형 논평, 축구대표팀 관련 이슈에 직접 훈수를 두는 방식까지 축구 관련 다양한 부분이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기기 위해서 코칭스태프와 선수 간 팀워크가 필요한 게 축구와 정치의 공통점”이라면서 “내부 갈등으로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한 축구대표팀 사례가 정치권에 ‘리더십의 중요성’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채 교수는 “클린스만이라는 리더가 대표팀 내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팀 내에선 스타급 선수들 사이 불화설이 터진 일련의 과정이 정치권에 상당히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져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