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줄부상에도 불펜· 대타 활약 등 힘입어 선두…롯데 타격 부진에 ‘곰탈여우’ 김태형 리더십도 통하지 않아
#이범호 감독 앞세운 KIA의 '잇몸야구'
KIA는 개막 전부터 유력한 5강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올 시즌 초반 기세는 예상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개막하자마자 부상병이 속출했기에 더 그렇다. 주포 나성범은 개막 직전 시범경기에서 베이스러닝을 하다 오른쪽 허벅지 뒤 햄스트링이 부분손상돼 아직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초반과 같은 부상이다. 거포 내야수 황대인도 개막 나흘 만인 3월 27일 광주 롯데전에서 안타를 때리고 1루로 달리다 햄스트링을 다쳤다. 아직 복귀 시점을 알 수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불펜 투수 임기영은 3월 31일 두산 베어스전에 앞서 불펜 피칭을 하다 왼쪽 옆구리 근육이 미세하게 손상됐고, 주전 유격수 박찬호도 허리 통증으로 4월 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박찬호를 대신해 유격수로 출전하던 박민은 4월 10일 LG 트윈스와의 광주 경기에서 파울 타구를 잡으려다 3루 쪽 펜스에 무릎을 강하게 부딪친 뒤 구급차에 실려 그라운드를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중심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와 최형우의 시즌 초반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범호 감독이 이끄는 KIA는 올 시즌 가장 먼저 10승 고지를 밟고 선두로 달려나갔다. 탄탄한 불펜과 신들린 대타 성공률이 '부상 병동' KIA를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비결이다. 특히 지난 4월 10일 LG전이 상징적이었다. 이날 KIA 선발투수였던 이의리는 갑작스럽게 왼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해 1⅓이닝 3실점 하고 마운드를 떠났다. 이미 0-3으로 끌려가던 KIA는 불펜을 총동원해 흐름을 바꿔야 했다. 이때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김건국이 3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 경기 양상은 시소게임으로 변했고, 5회 이후부터는 사실상 필승조인 이준영-곽도규-장현식-전상현이 차례로 배턴을 이어받았다. LG 타선은 4명의 투수를 상대로 단 1안타를 뽑는 데 그쳤다.
그러자 타선도 화답했다. 2-4로 쫓아가던 7회 선두타자 김태군이 안타로 출루하자 이범호 감독은 곧바로 대타 서건창 카드를 냈다. 서건창은 볼넷을 골라 후속 김선빈의 1타점 좌전 적시타의 징검다리를 놨다. 3-4로 추격한 8회에는 2사 후 최원준이 안타로 출루하자 고종욱이 대타로 투입돼 중전 안타로 최원준을 3루에 보냈다. 이어 이전 타석 대타로 출장한 서건창이 우월 2루타를 때려 극적인 4-4 동점을 만들었고, LG 마무리 유영찬이 2사 2·3루에서 뜻하지 않은 보크로 결승점을 헌납했다. 올 시즌 대타 성공률 1~2위를 다투는 KIA 이범호 감독의 '감'이 또 한 번 짜임새 있는 승리를 뒷받침한 셈이다.
이범호 감독은 올 시즌 "초보감독 같지 않다", "준비된 '21세기형 감독'"이라는 찬사 속에 KIA의 질주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전임 김종국 감독이 후원 업체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해고된 뒤 2월 13일 갑작스럽게 KIA 사령탑에 올랐는데도 그렇다. 1981년생으로 현역 프로야구 감독 중 최연소인 이 감독은 타격코치로 KIA 스프링캠프를 떠났다가 느닷없이 KIA 지휘봉을 잡게 됐는데도 팀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하고 성공적으로 올 시즌의 청사진을 그렸다. 팀 2군 감독과 1군 타격코치를 경험해 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고, 젊은 선수들과 친화력도 뛰어나다. 선수들 역시 이 감독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면서 따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KIA 돌풍 이끄는 주역들
무엇보다 KIA의 막강한 외국인 원투펀치가 1위의 견인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 19일까지 윌 크로우가 4승, 제임스 네일이 3승을 올려 10개 구단 외국인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승수(7승)를 합작했다. 지난해 KIA를 거쳐간 외국인 투수 4명의 전체 승수 합계가 16승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벌써 그 절반 가까운 승수를 외국인 투수 둘이 이뤄냈다.
힘을 앞세운 정통파 투수 크로우는 첫 두 경기에서 5점씩 주고 고전하다 4월 첫 3경기 연속 무자책점 경기를 펼치면서 완벽하게 적응을 마쳤다. 네일은 '제2의 에릭 페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벌써 올해 10개 구단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페디는 지난해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뛰면서 KBO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특급 외국인 선수였다. 네일은 페디가 구사했던 스위퍼(변형 슬라이더)와 슬러브(슬라이더+커브) 등 현란한 변화구로 팔색조 투구를 하면서 KBO리그 첫 4경기를 모두 2자책점 이하로 막는 위용을 뽐냈다. 4월 19일 현재 평균자책점 1.09로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외국인 투수가 KBO리그 팀에서 차지하는 전력상 비중을 고려하면, 크로우와 네일은 포스트시즌까지 KIA의 '날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범호 감독도 "네일과 크로우는 한국 야구에 딱 맞는 투수"라며 흡족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3년차 주축 내야수 김도영의 성장도 KIA의 질주에 가속도를 붙였다. 김도영은 KIA가 2022년 1차 지명으로 뽑은 대형 내야수다. 공·수·주를 겸비해 일찌감치 '제2의 이종범'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KIA는 김도영과 진흥고의 강속구 투수 문동주(한화 이글스) 사이에서 고민하다 김도영을 선택했다. 그리고 올해가 그 결실의 시작점으로 보인다.
당초 김도영의 올 시즌 전망은 어두웠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는데, 일본과 결승전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왼쪽 엄지 인대가 파열돼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후 3개월 동안 방망이조차 잡지 못했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고, 그 여파가 꽤 오랫동안 김도영을 괴롭혔다.
다행히 빠른 속도로 회복한 김도영은 개막 엔트리 진입에 성공했지만, 3월 6경기에서 타율 0.154에 그치는 등 이달 초까지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4월 7일 삼성 라이온즈전까지 김도영의 타율은 0.192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타격코치를 맡았던 이범호 KIA 감독은 김도영을 라인업에서 빼지 않았다. "계속 기회를 주면, 언젠가는 정상 컨디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보냈다.
김도영은 결국 기대에 부응했다. 4월 9일 광주 LG전이 변곡점이었다. 김도영은 이 경기에서 5타수 4안타 3타점을 몰아치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이후 한 경기도 빠짐없이 안타 생산을 이어갔다. 심지어 장타력까지 물이 올랐다. 4월 14일 한화전에서 시즌 4호 홈런을 쳤고, 16일 SSG 랜더스전에서 5호 홈런을 날렸다. 이어 17일 SSG전에서는 7회와 9회 연타석 홈런을 터트리는 등 4타수 3안타(2홈런) 5타점 4득점으로 펄펄 날았다. 이날 김도영의 타율은 0.302로 솟구쳤고, 시즌 홈런도 7개로 늘었다. 지난해 기록한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이 7개였는데, 개막 한 달 만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추세라면 데뷔 후 첫 20홈런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누구보다 김도영의 활약을 바랐던 KIA 팬들은 "마침내 김도영의 시대가 왔다"며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김도영은 "시즌 초반엔 스트라이크 존과 자동 볼판정 시스템(ABS) 적응에 애를 먹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4월 초에 타격폼을 수정했고, 4월 9일 LG전에서 4안타를 친 뒤 개인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최근 마음을 편하게 먹고 타격하면서 자연스럽게 정확도와 장타력이 좋아진 것 같다. 홈런은 의식하지 않고 있다. 일단 풀타임으로 한 시즌을 무사히 치르는 게 목표"라고 했다.
#'170억 원 FA 트리오' 사라진 롯데
연일 축제 분위기인 광주와 달리 롯데의 홈 부산은 침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롯데는 올 시즌 4연패로 힘겹게 출발하더니 최근 8연패까지 겪으면서 리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등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만, 개막 전 짜놓은 전력 구상이 상당 부분 흔들린 터라 수정이 불가피하다.
롯데의 시즌 초반 성적 부진은 1군 엔트리 변화만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지난달 23일 개막전 1군 엔트리에 등록했던 선수 가운데 구승민·박진·우강훈(이상 투수), 유강남·강태율(이상 포수), 오선진·나승엽·노진혁·고승민(이상 내야수)까지 9명이 1군 엔트리에서 빠져 있다. 이 중 내야수 손호영을 데려오면서 LG 트윈스로 보낸 우강훈을 제외해도 8명이나 된다.
무엇보다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타자 중 2번 타자 좌익수 고승민, 5번 타자 유격수 노진혁, 6번 타자 포수 유강남, 7번 타자 1루수 나승엽, 9번 타자 2루수 오선진까지 5명이 지금 2군에 머물고 있다. 8번 타자 3루수로 나섰던 베테랑 내야수 김민성도 한 차례 2군에서 정비를 마치고 최근 돌아왔다. 겨우내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고심 끝에 확정한 개막전 선발 라인업 중 절반 이상이 흔들렸다는 건 팀 운영이 계획대로 안 풀리고 있는 롯데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장 뼈아픈 건 2023 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총액 170억 원 프리에이전트(FA) 삼총사'의 부진이다. 내야수 노진혁은 타율 0.176을 남기고 2군으로 내려갔고, 투수 한현희는 3월 30일 1군에 올라왔다가 4경기 평균자책점 7.36으로 부진해 4월 10일 1군에서 말소됐다. 설상가상으로 주전 포수 유강남까지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선발 포수 자리에서 밀리다 4월 16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당시 6연패 중이었던 김태형 감독은 유강남을 2군으로 보내면서 분명한 이유가 있는 2군행 지시임을 숨기지 않았다.
결정적인 상황은 4월 14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벌어졌다. 유강남은 2-7로 뒤진 6회 1사 만루에서 3볼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맞았지만 키움 김재웅의 4구째 바깥쪽 높은 공을 때려 병살타로 물러났다. 이닝이 끝난 직후에는 벤치와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 김태형 감독과 유강남, 고영민 작전 코치가 심각하게 대화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태형 감독은 "유강남이 마음을 좀 추스르고 와야 할 것 같다. 투수들도 생각보다 안 좋으니까 포수는 그걸 신경 안 쓸 수 없다. 타격도 안 되니까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라면서도 "유강남은 치라는 사인으로 봤다고 하고, 작전 코치는 (작전을) 안 냈다. 하지만 만루 3볼에서는 당연히 공 하나를 기다려야지, 거기서 작전 코치를 본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팀도, 자신(타율 0.122)도 성적이 안 나오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 여파로 상황에 맞는 타격도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롯데의 세대교체 주역으로 꼽히던 나승엽과 고승민이 좀처럼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롯데,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전히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타선도 문제다. 팀 타율, OPS(출루율+장타율), 타점, 득점 모두 리그 최하위권이다. 다양한 변수를 활용한 조정 득점 창출력(wRC+)에서도 올 시즌 롯데의 기록적인 '빈타'가 확인된다. 평균을 100으로 놓고 계산하는 wRC+는 구장에 따른 유불리와 시즌별 리그 평균 수치까지 모두 포함해 서로 다른 시즌에 낸 성적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KBO 기록 전문 웹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롯데의 팀 wRC+는 4월 19일 기준 77.6으로 압도적인 꼴찌다. 올 시즌 wRC+ 9위인 두산(86.2)과 격차가 크고, 원년 이후 최저 팀 wRC+를 기록한 해체 직전의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72.5)와 오히려 더 가깝다.
롯데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 흔들리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팀 쇄신 차원에서 단장을 교체했고, 두산 사령탑 시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2015~2021년)과 우승 3회(2015·2016·2019년)를 일군 김태형 감독을 선임해 도약을 꿈꿨지만 맥을 못 추고 있다. '곰의 탈을 쓴 여우'로 불리는 김태형 감독 특유의 리더십도 올 시즌 초반에는 통하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결국 롯데는 4월 10일 부산 삼성전부터 17일 잠실 LG전까지 내리 8경기를 졌다. 롯데가 8연패를 당한 것은 2019년 9월 18일 KIA전~10월 1일 키움전 이후 무려 1660일 만이었다. 게다가 2003년(2승 2무 16패) 이후 21년 만에 개막 20경기에서 16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4월 18일 잠실 LG전에서 간신히 8연패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LG 선발 투수 케이시 켈리와 롯데 2번 타자 황성빈 사이에 갈등이 생겨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는 등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모처럼 선발타자 전원 안타를 기록하며 9점을 뽑은 게 위안거리다. 김태형 감독은 경기 후 "그동안 타격이 좀 침체돼 있었는데 모처럼 활발한 타격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오늘 승리로 연패를 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팀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원정 응원으로 힘을 실어준 팬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