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조정식·정성호 3파전에 우원식 참전…‘민주당의 국회의장’ 강조에 중립 문제 제기도
#국회의장 중립 논란
국회의장은 입법부인 국회의 수장으로 국가 의전서열 2위다. 국회법 제15조에 따라 재적의원의 과반 득표를 받은 의원이 국회의장이 된다. 임기는 2년으로, 전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의장이 선출된다. 원내 1당에서 경선을 거쳐 국회의장 후보 1명을 뽑는다. 관례상 원내 제1당의 최다선·최고령 의원이 의장 후보로 나선다.
이번 22대 총선 결과 민주당이 총 175석(지역구 161석, 비례대표 14석)을 얻어 원내 1당을 확보했다. 원내 1당이 확정된 직후 민주당 중진 당선인들의 경선 출마가 잇따르며 과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이 국회의장 경선 과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총선이 끝난 다음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연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자 당대표에 나올 만한 체급을 갖춘 의원들이 국회의장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하지 않으면 다시 방향을 돌려 당대표에 출마할 수 있다.
4월 26일 기준 추미애 당선인, 조정식 정성호 우원식 의원 등 4명이 국회의장 출마 의사를 밝혔다.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후보는 22대 국회 최다선인 6선 고지에 오른 추미애 당선인이다. 추 당선인은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국회의장 도전 의사’를 묻자 “의회의 혁신적 과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역할을 기대한다면 주저하지는 않겠다는 마음”이라며 경선 출마를 시사했다. 이어 “국회의장은 중립이 아니다”라며 “혁신 의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일찍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추 당선인이 선출되면 최초 여성 국회의장이라는 기록이 세워진다.
뒤이어 같은 선수의 조정식 의원이 4월 21일 경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조 의원은 다음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민주당이 배출한 의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의장은 일단 2년 동안 당직을 내려놓는다”면서도 “지난 국회에서 민주당이 배출한 의장인데 ‘제대로 민주당의 뜻을 반영을 했느냐’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불만도 있었다. 그런 부분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1963년생인 조 의원은 추 의원보다 다섯 살 어리다.
‘친명좌장’ 정성호 의원(5선)도 출마 의사를 밝혔다. 정 의원은 4월 23일 같은 라디오 방송에서 ‘국회의장에 나가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정 의원은 “민주당 출신으로서 민주당의 다음 선거에서의 어떤 승리에 대해 보이지 않게 (바닥을) 깔아줘야 될 것”이라며 “더 큰 것은 국회의 역할과 위상을 보완해야 한다. 국회 수장인 국회의장이 행정부에 대해 단호하게 입장을 밝힐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5선 우원식 의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 의원은 4월 25일 자신의 SNS에 “삼권분립 훼손에 단호히 맞서겠다.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도 넘어서겠다”며 “22대 전반기 국회에서 민주당의 국회가 엇박자를 내거나 민주주의 개혁과 민생 문제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민심의 회초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석열 정권의 사법권 남용, 거부권 남발로 훼손된 삼권분립의 정신과 헌법정신을 수호하는 것이 국회와 국회의장의 숙명”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출마자들이 잇달아 ‘민주당의 국회의장’을 강조하자 국회의장 중립 문제가 제기됐다. 국회법 제20조의2는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적을 떠나 각 당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는 명문화돼 있지 않다.
조응천 개혁신당 의원은 “지금 22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민주당 경선 후보들은 국가 의전서열 제2위인 국회의장 위상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며 “총선 민심을 국회에 반영하여야 한다며 소속 정당의 정파적 이익에 몰두하겠다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심’은 어디에
출마자들이 민주당의 국회의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른바 ‘명심(이재명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매일경제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 당선인 175명 중 77명(44%)이 친명계로 분류된다. 친명계가 당내 최대 계파로 떠오른 셈이다. 명심을 얻는 후보가 친명계의 표심을 얻어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조정식 의원이 명심 선점에 나섰다. 조 의원은 앞서 라디오 인터뷰에서 “(명심은) 당연히 저 아니겠나”라고 답했다. 조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됐을 때 인수위원장을 맡았다. 20대 대선 때는 이재명 캠프에서 선거총괄본부장으로 있었다. 이 대표 체제에서는 약 20개월 동안 당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이 대표와 호흡을 맞췄다.
정성호 의원은 조 의원의 명심 발언에 “그건 덕담”이라며 견제구를 던졌다. 정 의원은 “이 대표 성격상 어느 분이 원내대표든 당대표든 국회의장이든 나간다고 했을 때 열심히 해보라고 했을 것”이라며 “이 대표의 고심이 이심전심 가까운 주변 의원들에게 전달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 대표와 사법연수원 동기(18기)다. 2021년 대선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를 지지하는 민주당 의원 모임 ‘성장과 공정 포럼(성공포럼)’을 이끌며 지원에 앞장섰다.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총괄특보단장을 맡았다. 정 의원에 대한 이 대표의 신임은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정 의원은 이 대표가 평소 자신을 ‘성호 형’이라고 부르고, 자문을 구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여전사로 영입된 추미애 당선인은 당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일부 민주당 당원들은 윤 대통령 등 여권에 대한 추 당선인의 강경한 입장을 보고 공개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4월 26일 민주당 당원 커뮤니티인 ‘블루웨이브’에는 추 당선인을 지지하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이 대표의 지지모임인 ‘잼잼기사단’ ‘잼잼자원봉사단’ 등은 추 당선인을 차기 국회의장으로 추대하자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다만 추 당선인은 과거 당내 인사들과도 충돌했다는 이력이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원식 의원은 현재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원내대표를 맡은 경험이 있다. 여야를 중재해 본 경험이 강점으로 꼽힌다. 우 의원도 친명계로 분류된다. 그는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 이재명 캠프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다만 다른 후보들보다 계파색은 옅다는 평가를 받는다.
명심 경쟁에서 30년 넘게 이 대표와 함께했던 정 의원이 앞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성태 전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명심은 정 의원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최 전 수석은 “명심이 작동하지 않아도 의원들이 그렇게 읽는다”며 “누가 봐도 이 대표와 지근거리에서 마음까지 서로 읽고 주고받는 관계”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명심이 없었다면, 관례를 깨고 5선 의원이 곧바로 출마 선언했겠나”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명심을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중진 의원의 반박이다. “후보들 다 명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조 의원은 (사무총장을 하며) 어려운 과정에서도 함께 했다. 추 의원은 민주당 당원들이 좋아한다. 그래서 이 대표가 공천을 준 것 아닌가. 정 의원은 이 대표가 상의하는 사람이다. 우 의원은 이 대표가 대선 경선할 때 대놓고 지지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실 명심으로는 국회의장 후보가 되지 못한다. 의원들이 정국 흐름을 보며 각자 판단하기 때문이다.”
고진동 평론가는 “현재 출마자들이 각자 좋을 대로 해석하는 상황인 것 같다”며 “이 대표가 누가 좋다고 하는 순간 당은 분열이나 진통을 겪게 된다. 오히려 명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이익을 보겠다는 쪽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5선인 김태년 윤호중 안규백 박지원 의원 등의 출마 여부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들은 자천타천으로 국회의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김태년 윤호중 의원은 친문계로 분류된다. 두 의원이 출마하면 친문계가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안규백 의원은 전략공관위원장을 맡으며 이 대표를 도와 총선 승리에 기여한 바 있다. 박지원 당선인은 경륜이 강점으로 꼽힌다. 박 당선인은 문화관광부 장관·대통령 비서실장·국정원장·원내대표 등을 역임했다.
이들은 정국을 관망하며 출마 여부를 고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박 당선인은 4월 24일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의장직에 대해서는 아직 ‘하겠다 안 하겠다’ 결정이 안 돼 있다”며 “민주당이 당직 개편을 했다. 원내대표 경선 결과가 나온 다음 그 이후의 흐름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관련기사 박지원 민주당 당선인 “국회의장 출마, 원내대표 선출 이후 결정할 것”).
민주당은 4월 24일 당무위원회를 열고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결선투표를 도입하기로 했다. 선출된 후보의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민주당에 따르면 국회의장 후보 선출을 위한 의결 정족수 기준은 과반으로 정해졌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 간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국회의장은 민주당 경선 뒤 국회 본회의 무기명 투표를 통해 재적의원 과반을 득표해야 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의원총회에서 무기명 투표를 통해 의장 후보를 선출해 왔다. 1차 투표의 최다 득표자가 후보로 뽑혔다. 경선에 나온 후보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선투표가 도입되면서 경선에서 친명계 후보들 사이에 표가 갈리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차 투표에서 친명계의 표가 갈려도 결선투표에서 다시 친명계 후보에게 표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