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대선 공약, 윤 대통령 의지에 달려…전문가들 “업무 범위 등 사전 논의 철저히 해야”
#정부 법안 통과 가능성 높아
5월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조만간 법무부 등 관계부처 및 사법부와 노동법원 설치 협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에서 노동법원 설치를 위한 협의에 즉시 착수할 예정임을 밝히며 “노동법원 설치는 사법시스템의 큰 변화가 수반돼 심도 있는 준비가 필요한 만큼, 임기 내 추진될 수 있도록 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물론 법원 등 사법부와 협의도 조속히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내 노동법원 설치에 관한 법안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한 데에 대한 후속조치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우리 사회도 이제 노동법원 설치가 필요한 단계”라며 “노동부와 법무부가 기본법을 준비해 임기 중에 노동법원 설치 관련 법안을 낼 수 있게 지금부터 준비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임금체불 등 노동자들의 피해 이슈가 종합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법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노동법원 설치 필요성과 도입 논의는 30년여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번번이 좌초됐다. 1989년 한국노총이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권리분쟁 조정 업무를 전담할 필요성이 있다며 지방노동법원과 고등노동법원을 입법청원했고, 당시 노태우 정부도 노동법원 설립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2003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주도로 논의가 재개됐다. 일반 민·형사사건과 달리 노동사건이 갖는 특수성을 감안해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논의는 물살을 타고 2004년 노무현 정부의 대법원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며 구체화 됐지만 결국 흐지부지 됐다.
이후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대법원은 사법행정자문회의 8차 회의 안건으로 ‘전문법원 추가 설치 여부 및 우선순위’를 올려 노동법원과 해사법원을 우선 추진하기도 했다. 입법부도 다르지 않다. 18~21대 국회까지 꾸준히 노동법원 신설 법안이 발의 됐지만 매번 제대로 된 논의 없이 국회 임기 만료로 폐지됐다.
다만, 이번에는 실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노동법원 설치 문제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정부와 야당 간 이견이 없는 까닭이다. 노동법원 등 전문법원의 신설 및 확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정부가 노동법원 설치 법안을 제출하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노동계 인사는 “사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여야가 통일된 의견을 보이는 만큼 윤 대통령이 얼마나 의지를 보이느냐에 따라 임기 내 설치 여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 '찬성' 노무사 '반대' 다수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쟁송절차는 행정적 구제기관인 노동위원회(노동위)와 사법적 구제기관인 법원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분쟁이 일어나면 1차적으로 노동위가 사건을 담당하는데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까지 두 번의 과정을 거쳐 결론이 나게 된다. 사건 당사자들이 판정에 불복하면 2차로 법원으로 넘어간다. 여기서도 1심과 항소심, 상고심까지 세 번의 과정을 거치므로 사실상 노동 사건은 5심제인 셈이다.
법관들은 노동쟁송철자가 일원화되면 복잡한 절차는 간소화되고 전문성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2019년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노동쟁송절차의 개선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318명의 현직 판사 가운데 79.9%가 현행 노동쟁송절차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답했고, 노동법원 신설 필요성에 대해서는 73.6%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노동사건 전담재판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판사 105명의 경우 84.8%가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노동법원이 신설될 경우 재판부 구성형태에 대해서는 법관의 52.8%가 준참심제 형태를 선택했다. 준참심제는 노사대표인 참심관이 재판 심리에 참여하고 의견을 밝히되 법관이 이것에 구속되지는 않는 형태의 재판부를 말한다. 또 변호사가 아닌 노조 대표 또는 공인노무사 등에게 소송대리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낸 판사가 전체의 73.6%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인노무사들은 현재의 노동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다. 노동법원이 도입될 시 소송대리권은 노무사가 아닌 변호사에게 부여되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한 노무사는 “노사분쟁 중 가장 많은 사건이 임금체불인데, 대다수는 법원까지 가지 않고 노동위에서 끝난다. 법원까지 갈 정도로 복잡한 사안은 많지 않다는 뜻”이라며 “사건 종결까지 걸리는 시간도 법원보다 노동위가 더 빠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노동사건의 평균 처리일수는 평균 53일로 법원 1심 종결까지 걸리는 기간 401일에 비하면 약 8배 이상 빨랐다. 다만 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법원으로 가는 사건은 2018년 452건에서 2022년 568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학계 “기존 체계 뒤엎는 수준”
노동법원 설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해도 구체적인 도입 방안이나 도입 후 문제점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디까지가 노동법원의 영역인지를 정하는 문제다.
노사분쟁은 임금체불부터 부당해고, 쟁의행위로 인한 갈등 등 영역이 방대하다. 만약 노동법원 설치 필요성의 이유로 임금체불 문제를 예시로 들었던 윤 대통령의 말처럼 임금체불만으로 범위를 좁히게 된다면 앞선 노무사가 말했던 것처럼 노동위에서의 문제 해결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반대로 쟁의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혹은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된다면 순수한 노동법의 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사전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시 의대 증원 사태처럼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부 교수는 “노동법원 설치는 기존 노사 분쟁 해결 체계 전체를 뒤집어엎고 다시 정리하는 일”이라며 “노동법원의 업무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담당 판사는 어떻게 배정할 것인지,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와 고용보험심사위원회 등이 해오던 업무는 어디서 맡을 것인지 등 선결 조건에 대한 구체적 검토 없이 임기 내 설치만을 목표로 한다면 혼란스러움만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승욱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컷뉴스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구상은 지금까지의 노동 분쟁 해결 시스템을 완전히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며 “자칫 졸속으로 입법되지 않도록 아주 신중하고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