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 얼굴들 ‘아시안컵 실패’ 이후 페이스 뚝…이강인·황인범 우승 맛 보고 ‘영건’ 배준호·이현주 가능성 증명
#아시안컵 기점으로 나뉜 분위기
한국인 유럽리거 중 국가대표에 소집되는 선수들에게는 중요한 시즌이었다. 한창 시즌을 치르는 중 아시안컵을 치렀기 때문이다. 대표팀 역사상 유럽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가장 많고, 직전 월드컵에서 성적도 좋았기에 아시안컵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대표팀의 아시안컵 성적에 더욱 기대가 컸던 이유는 주요 선수들의 컨디션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각 포지션의 핵심 자원들은 어느 때보다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프리미어리그의 두 공격수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울버햄튼)은 아시안컵 이전 20경기에서 각각 두 자릿수 골을 달성했다. 황희찬으로선 개인 첫 프리미어리그 10골이었다. 손흥민은 새 감독 지휘 아래 직전 시즌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전 시즌 이탈리아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고 독일에 입성한 김민재는 곧장 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적 직후부터 선발로 출전하며 이전에 있던 주전 경쟁에 대한 의구심과 달리 오히려 '혹사'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 같은 상승 곡선은 아시안컵을 기점으로 꺾이고 말았다. 대표팀에 다녀온 손흥민은 득점 페이스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황희찬은 부상으로 약 1개월간 결장했다. 아시안컵 이후 리그 2골을 더하는 데 그쳤다. 김민재는 교체 자원으로 분류되는 경기가 많아졌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아시안컵 참가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아시안컵에서 여유 있게 앞서는 경기가 없었다. 힘든 경기를 치러야 했고 연장전도 2경기나 했다. 대회에 다녀와서 힘들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 아프리카 대회에 다녀온 모하메드 살라도 대회 전후 활약이 달랐다"며 "물론 몸은 힘들겠지만 만약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했다면 선수들의 정신적 피로감은 덜했을 것이다. 특히 대표팀 내부에서 사건사고가 있었던 대회였기에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로피 들어 올린 코리안리거들
이번 시즌에는 다수의 한국인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품는 경사도 있었다. 지난여름 파리 생제르맹 유니폼을 입은 이강인은 이적 첫해부터 프랑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강인의 커리어 첫 리그 우승이다.
슈퍼스타들을 수집하는 팀인 파리에 입단하며 이강인은 주전 경쟁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이적 첫 시즌임에도 주요 자원으로 활용됐다. 부상과 국가대표 차출을 제외하면 그는 대부분 경기에서 그라운드를 밟았다. 다수의 선수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길 바라는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취향과 잘 맞는 것으로 보인다.
세르비아 리그에 첫선을 보인 황인범도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황인범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우승은 예상이 어렵지 않았다. 지난 시즌까지 리그 6연패를 이어오던 팀이었다. 2위권과 격차를 크게 벌린 여유 있는 우승이었다. 리그에 이어 컵대회마저 석권하며 2관왕에 올랐다.
세르비아의 절대 강자 팀에 속했다 해서 황인범이 '숟가락'만 얹은 것은 아니다. 시즌 내내 맹활약으로 리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다가오는 이적 시장에서 또 한 번이적이 이뤄질 수도 있는 분위기다. 시즌 말미 잉글랜드, 스페인 등 빅리그와 꾸준히 이적설이 나왔다.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에서 뛰는 양현준과 오현규도 리그 우승컵을 들었다. 리그 2년 차 오현규는 두 번째 우승이다. 다만 이들에게는 과제도 남긴 시즌이었다. 양현준은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주요 자원으로 인정받는 듯했으나 시즌 말미 리그 5경기 연속 출전하지 못했다. 오현규의 출전 시간은 양현준보다 적었다. 이번 시즌 리그 20경기에서 608분만 소화했다.
#영건들도 각자의 족적 남겨
A대표급 선수들 이외에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도 유럽 무대에서 각자 족적을 남겼다. 2003년생 배준호는 현지에서 팬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선수 중 하나다.
K리그 무대에서 1년 반 동안 27경기만 경험하고 잉글랜드 2부리그 스토크 시티에 입단한 배준호는 가자마자 팀의 핵심 멤버로 자리 잡았다. 한때 3부리그 강등 위기에 몰리기도 했던 팀의 리그 잔류에 큰 공을 세웠다. 구단 선정 '이달의 선수상'을 3회 수상하더니 시즌을 마치면서는 '올해의 선수'까지 등극했다. 스토크 팬들은 배준호를 '한국의 왕(South Korean King)'으로 부르고 있다.
배준호와 동갑내기인 이현주는 원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임대생 신분으로 첫 시즌을 보냈다. 그간 뮌헨 1군 팀에는 합류하지 못하고 B팀에서만 활약하던 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임대로 2부리그의 비스바덴에 합류했다. 뮌헨B팀에 남았다면 4부리그에서 활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독일 4부리그는 세미프로 리그이기에 정식 프로 무대는 처음이었다. 이현주는 개막 이후 3라운드만에 데뷔골을 넣으며 순조롭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즌 내내 선발로도 적지 않은 경기를 소화하며 향후 활약을 기대케 만들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에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지만 유럽 각지에 유망주들이 많이 나가 있다. 특히 배준호와 이현주 등은 A대표팀에서도 눈여겨보는 자원으로 알고 있다"며 "어린 나이인데도 현지에서 적응하고 많은 경기에 뛰고 있는 점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