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개인 무지성 청약 후 상장일 차익 실현 고착화…가격 상승 제한 폭 확대 및 공모가 고평가 등이 원인
'일요신문i'가 지난 5월까지 상장을 마친 22개 기업(스펙·리츠 제외)을 분석한 결과 22개 기업 모두 상장일에 매도하면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수익률은 최소 11%에서 최대 300%다. 과거에는 상장일 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에 당일 상승 제한 마지노선이 30%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6월 말 공모주의 신규상장 가격 제한 폭이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4배까지 상승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됐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모주는 기존에도 상장 첫날 수익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축에 속했지만, 제도가 바뀌면서 상장일 도달 가능한 수익률이 더 높아졌다. 기관 입장에선 투자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렇다 보니 기관 투자자들이 IPO 시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올해 기관 투자자들의 평균 수요예측 참여 건수는 2047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대 들어 주식시장이 가장 활황이었던 2021년(1271건)보다 약 800건이나 많은 수치다. 제도를 바꾼 지난해에도 1507건으로 2021년보다 많은 기관 투자자들이 수요예측에 참여했다. 올해 상장한 기업들의 의무보유확약 비율은 30%대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 70%는 주식 매도에 제한을 걸지 않고 상장일 매도를 통해 차익을 실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반 투자자들도 상장일에 매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블로그 등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공모주를 분석하는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다. 기업분석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콘텐츠도 있지만, 대부분 상장일에 수익을 낼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모주 투자자들이 중장기적인 투자가 아닌 단기 투자에 집중하는 또 다른 요인은 높아진 인기 탓에 투자자들이 배정받는 주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증권학회 회장인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기가 너무 높아진 탓에 기관이든 일반 투자자든 배정받는 주식이 소량에 불과해 이를 장기적으로 안고 갔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너무 적다 보니 용돈벌이식 단타 매매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일반 투자자들의 공모주 청약 참여 건수는 크게 늘었다. 지난 5월까지 상장을 마친 기업들의 일반 투자자 평균 청약 참여 건수는 45만 6417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37만 2684건보다 높다. IPO 시장 침체기였던 2022년(19만 9394건), 2023년(20만 8782건)보다 2배 이상 높다. 그 결과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모주는 ‘로또’가 됐다. 일반 투자자들이 균등배정으로 받을 수 있는 평균 주식 수가 2021년 1.79주, 2022년 1.93주, 2023년 1.55주로 기록됐으나 올해는 0.70주다(관련기사 개미는 1주 받기도 쉽지 않네…공모주 ‘균등배정’ 당첨률 급락 이유)
공모주 주주들의 상장일 매도 현상이 고착화함으로써 공모주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단타족’이나 시세 조종을 노리는 일부 세력의 타깃이 되고 있다. 공모주의 하루 최대 상승률은 공모가 대비 300%다. 단타족들은 짧은 시간 동안 최대 10% 수익을 얻기 위해 거래한다. 상장일 거래량이 많은 상장주는 단타족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셈이다(관련기사 작전세력 먹잇감 될라…유통금액 적은 새내기 상장주 투자 주의보).
공모주가 단기 차익을 노리는 시장으로 변질된 이유로 '고평가 공모가'가 거론된다. 공모가는 상장 주관사인 증권사와 발행사인 상장예정 기업이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확정한다. 이들은 조달할 자금 규모를 늘리기 위해 대부분 수요예측에서 높은 가격을 적어낸 기관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배정한다. 이 때문에 기관 투자자들이 공모주를 1주라도 더 배정받기 위해 수요예측 때 높은 가격을 써내기도 한다.
실제 최근 몇 년간 공모가가 대체로 희망 공모가액 범위 상단 이상에서 확정됐다. 2021년 86%에 달했으며, 침체기를 맞이한 2022년에도 54%가 희망 공모가액 밴드 상단 이상으로 공모가가 확정됐다. 지난해에는 74%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으며 올해는 그 비율이 100%에 달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지난해 6월 도입한 ‘초일가점’ 제도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초일가점 제도는 주관사가 수요예측 첫날 접수한 기관에 가점을 부여해 물량을 더 제공하도록 한 제도다. 기관들의 참여율이 높은 상황에서 가점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물량을 받으려면 기업 가치와 상관없이 공모가를 높여 접수할 수밖에 없다.
공모가가 기업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최근 상장 종목 대부분 주가가 상장일 최고가를 기록한 후 우하향하고 있다. 지난 11일 종가 기준으로 상장일 최고가보다 주가가 높은 기업은 22개 기업 중 1곳에 불과했다. 공모가를 상회하는 기업도 6곳에 불과했다. 이는 상장 기업들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던 투자자들이 진입 시기를 늦추거나 고점에 물리는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준서 교수는 “금융당국이 최근 몇 년간 균등배정 방식과 가격 제한 폭을 높이면서 IPO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으나 시장은 엉망진창이 돼가고 있다”며 “제대로 된 투자 문화 정착 차원에서 보면 현재 흐름은 기업뿐 아니라 주식시장에 부정적이다. 넥스트 스텝을 고민하지 않으면 공모주 시장은 고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