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키즈’ 동기들 하락세 속 피치 올려…팔꿈치 부상·스폰서 공백 극복도
양희영의 이번 시즌 목표는 올림픽 출전이었다. '커트라인'을 오가는 성적,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출전권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 극적으로 참가 자격을 얻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부활한 골프 종목은 국가당 2명 참가가 기본이다. 다만 뛰어난 선수를 많이 보유한 국가에는 추가 출전권을 준다. 세계랭킹 15위 이내에 다수 선수가 포진한 국가의 경우 4명까지 출전이 가능하다. 이에 여자 골프 강국 대한민국은 앞서 두 번의 올림픽에서 4명의 출전 선수를 배출한 바 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선 달랐다. 고진영과 김효주는 '안정권'에 든 상황이었다. 15위 내외를 오가던 양희영으로선 세계랭킹 상승이 필요했다. 2024년 1월, 양희영의 순위는 16위였다.
30위권을 오가다 2023년 11월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15위 내외까지 끌어올린 세계랭킹은 좀처럼 또 오르지 않았다. 올림픽을 목표로 출발한 2024시즌 양희영은 랭킹 포인트 쌓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연스레 순위는 차츰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 나서는 대회마다 톱10 진입이 쉽지 않았다. 단숨에 많은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메이저대회에서도 부진이 이어졌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쉐브론 챔피언십에서 공동 46위에 그쳤다.
심기일전했던 5월 말 US 여자 오픈에서는 더욱 부진했다. 1, 2라운드 합계 10오버파로 컷 탈락을 경험했다. 이어진 메이어 LPGA 클래식에서도 합계 6오버파로 컷오프 됐다. 15위 이내 순위를 노리던 양희영의 세계랭킹은 두 대회 연속 컷 탈락으로 25위까지 떨어졌다.
그렇게 맞은 대회가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이었다. 양희영에겐 마지막 기회였다. 올림픽 개막을 약 1개월 앞두고 참가자가 결정되는 순위를 산정하는 마지막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세계랭킹 15위 이내에 들지 못한다면 올림픽에 나설 수 없었다.
앞선 대회와 달리 양희영은 1라운드에서 2타를 줄이며 기분 좋게 대회를 시작했다. 2라운드에선 4언더파를 기록, 공동 선두로 올라섰고 3라운드부터는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4라운드에서는 전반에만 2타를 줄이며 사실상 우승을 확정 지었다.
양희영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대회 일정이 마무리된 날은 6월 24일. 이튿날 대회 결과가 세계랭킹 포인트에 반영되며 양희영은 5위로 올라섰다. 이날은 올림픽 출전권이 결정되는 날이었다. 추후 결과에 관계없이 양희영은 올림픽 출전이 확정됐다. 극적인 출전권 확보였다.
이 장면 못지않게 극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양희영이다. 현재 그는 다수의 국내 여자 선수들이 상승세가 꺾이는 30대 중반의 연령대다. 최나연, 신지애, 박인비, 김인경 등 또래 선수들과 함께 '세리 키즈'로 불리며 LPGA 투어에서 숱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세리 키즈'의 시대도 저무는 모양새다. 박세리와 약 10년 터울로 태어난 이들은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일부가 클럽을 내려놨다. 선수생활을 지속 중인 이들도 마무리를 준비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전에 비해 우승 소식도 뜸하다.
그중 양희영은 다시 한 번 피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2023년 11월 CME그룹 투어 우승은 2019년 이후 4년 넘게 오르지 못했던 대회 정상이었다. 이에 더해 이번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은 자신의 커리어 최초 메이저 우승이다. 우승 확정의 순간, 고진영과 리디아 고 등 동료 10여 명이 한 마음으로 축하 세리머니를 펼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양희영은 "은퇴하기 전에 꼭 메이저 우승을 하고 싶었다"는 말로 그간의 열망을 드러냈다.
롱런하고 있는 그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을 전후로 전성기 활약을 펼친 그는 2019년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 이후 침체에 빠졌다. 2015년 8위, 2016년 6위까지 올랐던 세계랭킹은 2022년 80위권까지 떨어졌다. 팔꿈치 통증이 심해 은퇴를 고민했다.
하락세를 보이며 올림픽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2016년 대회에선 박인비, 전인지, 김세영과 함께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메달까지 딱 한 타가 부족한 공동 4위에 올라 박수를 받았다. 이어진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앞서 함께했던 박인비와 김세영이 다시 참가했으나 부진했던 양희영은 나설 수 없었다.
부상에 이어지는 부진까지, 메인 스폰서가 구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양희영은 모자 앞면의 공백에 '스마일' 모양의 자수를 새겨 넣으며 투어에 임했다. 줄어드는 지원에도 포기는 없었다. 그를 괴롭혀 온 팔꿈치 통증은 장기간의 재활과 훈련으로 떨쳐냈다. 통증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지난해 최종전에 이어 이번 시즌 메이저 우승을 거머쥐었다.
"정말로 한국을 대표하고 싶었다. 큰 목표였다. 정말 기쁘다"는 소감을 남길 만큼 간절했던 올림픽 출전이었다. 리우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나설 올림픽 무대에서 양희영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