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만 2번 박정환 우승 도전도 관심…전문가들 “중국 신예 왕싱하오와 세계 기전 강한 리쉬안하오 경계”
#56강·28강전 여자기사들 활약 인상적
1988년 창설된 응씨배는 대만의 부호이자 열렬한 바둑 애호가인 고 잉창치(應昌期) 선생이 고안한 응씨룰을 사용한다. ‘전만법(塡滿法)’이라고도 불리는 응씨룰은 집이 아닌 점(點)으로 승부를 가리며 덤은 8점(7집 반)이다. 응씨배의 우승 상금은 단일 대회로는 최고 액수인 40만 달러(약 5억 5000만 원), 준우승 상금은 10만 달러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제 기전이며, 위상 면에서도 세계 최고 기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응씨배는 국내 팬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준 대회로 기억된다. 제1회 대회 때 조훈현이 우승하면서 당시만 해도 바둑 변방이었던 한국 바둑의 급성장을 불러왔다. 이후 한국의 4대 천왕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우승한 대회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한국 바둑계와 연관이 많고 뜻깊은 대회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답게 앞서 열렸던 56강전과 28강전에서는 재미있는 승부가 많이 연출됐다. 56강전에서 김은지가 지난해 신진서를 꺾고 난가배 초대 우승을 거머쥔 구쯔하오를 완파한 것은 대회 최고 이변이었다.
김은지는 당대 최강자 중 하나인 구쯔하오를 상대로 시종 몰아붙인 끝에 결국 대마를 잡고 쾌승을 거뒀다. 초읽기에 쫓긴 구쯔하오는 벌점까지 감수하며 필사적으로 살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비록 28강전에서 중국의 떠오르는 혜성 왕싱하오에게 잡히긴 했지만, 김은지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또 일본 여자바둑의 일인자 우에노 아사미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우에노는 28강전에서 박정환을 상대로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최후의 끝내기에서 실수를 범하며 반집으로 분루를 삼켰다. 이 밖에 한국 기사들은 신민준이 중국 황밍위를, 원성진과 김진휘는 일본의 이야마 유타와 야마시타 게이고를 각각 따돌리고 16강에 진출했다.
#신진서·박정환 우승여부 관심
16강전을 목전에 둔 현 시점에서 신진서의 대회 2연패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신진서는 9회 대회 결승에서 셰커를 2-0으로 제압하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만일 이번 대회까지 석권한다면 응씨배 사상 첫 2연패 기사가 탄생한다.
16강부터 출전하기에 전망은 다른 대회에 비해 밝은 편이다. 우려되는 것은 토너먼트 도중 의외의 기사에게 일격을 당하는 것. 신진서는 최근에 열렸던 LG배에서는 한상조에게, 춘란배에선 양카이원에게 패해 조기 탈락했다. 하지만 응씨배는 16강부터 나서기에 두 번만 이기면 번기(番棋)로 열리는 4강에 오를 수 있어, 상대적으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
박정환의 우승 도전도 눈길을 끈다. 박정환은 2013년 7회와 2016년 8회 응씨배에서 중국 기사들에 패하며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박정환은 그동안 후지쓰배, LG배, 몽백합배, 춘란배, 삼성화재배 등 메이저 세계 대회에서 총 5회 우승했다. 준우승은 3회 경험했는데 그중 두 번이 응씨배에서 나왔다.
박정환은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만일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근 개인 헬스트레이닝과 필라테스 등 체력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6년 8회 대회 탕웨이싱 우승 후 8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는 중국은 랭킹1위 커제 등 9명이 16강전에 나선다.
국내 한 바둑 전문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커제와 전기 준우승자인 셰커보다는 신예 왕싱하오와 한국 기사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는 리쉬안하오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04년생 왕싱하오는 최근 온라인 비공식 대국에서 신진서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지난해 ‘치팅 사건’으로 화제를 모았던 리쉬안하오는 자국 내 대회보다 세계 기전 성적이 더 좋은 독특한 인물이다. 이 둘이 한국 우승 전선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면 대국으로 치러지는 16강전은 7월 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며, 8강전은 4일 바로 속개된다. 이어 3번기로 치러지는 준결승전은 장소를 저장성 닝보시로 옮겨 6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다. 결승 5번기는 8월과 10월 나누어 열린다.
응씨배 제한시간은 올해 대회부터 바뀌어서 16강부터 4강까지는 각자 2시간 30분에 벌점 2점 공제 시 추가 시간 25분, 결승 5번기는 각자 3시간 30분에 벌점 2점 공제 시 추가 시간 35분이 주어진다.
제10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 선수권대회 16강 명단
한국(5명) : 신진서 9단(전기시드), 박정환·신민준·원성진 9단, 김진휘 7단
중국(9명) : 셰커 9단(전기시드), 커제·리쉬안하오·리친청·랴오위안허·쉬자양·왕싱하오 9단, 펑리야오 8단, 류위항 7단
일본(1명) : 이치리키 료 9단
대만(1명) : 쉬하오훙 9단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