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마케팅’ 버린 정봉주, 최고위원 선두 이변…명심-당심 괴리, 지도부도 “통제 불가” 우려 목소리
이재명 후보는 7월 20일 열린 첫 지역순회 경선지인 제주·인천에 이어 21일 강원·TK(대구·경북)에서까지 압승을 거뒀다. 당대표 후보들의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 누적 득표율은 △이재명(91.70%) △김두관(7.19%) △김지수(1.11%) 후보 순이다. 이 후보 지역별 득표율은 △제주 82.5% △인천 93.77% △강원 90.02% △대구 94.73% △경북 93.97%로 집계됐다.
민주당 전당대회 지역순회 경선은 모두 15차례 열리며 8월 17일 서울에서 종료된다. 경선은 권리당원 56%, 대의원 14%, 여론조사 30% 비율이다.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는 지역 경선마다 발표된다. 권리당원 ARS 투표와 대의원 온라인 투표, 여론조사 결과는 8월 18일 전당대회에서 일괄 발표된다. 전당대회에선 당대표 1명과 최고위원 5명을 선출한다.
김두관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표 몰아준 지지층을 ‘집단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7월 21일 김 후보는 SNS에 “(이번 전당대회는) 소통도 없고 판단도 필요 없이, 연설도 듣기 전에 표만 찍는 기계로 당원을 취급하면서 민주주의를 판매하는 행위는 전혀 민주당답지 않다”며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 쓰레기로 변한 집단은 정권을 잡을 수도 없거니와 잡아서도 안 된다”고 강도 높게 꼬집었다. 김 후보 측은 논란이 일자 글을 삭제한 뒤 선거캠프 담당자 실수라고 해명하며 사과했다.
이재명 후보가 90%대 득표율을 올리고 있는 것을 놓고 당내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친명계 좌장격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7월 2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90%대 득표율은) 썩 그렇게 보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7월 22일 우상호 전 의원도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초기에 90%대 지지율이 나오는 건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에게 결코 바람직한 건 아니다”라며 “다양성이 있고 살아 있는 정당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싱겁게 진행되는 당대표와 달리 최고위원 선거는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이재명 마케팅’을 버리고 ‘선명성’을 강조한 원외의 정봉주 후보가 1위를 달리며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최고위원 후보자들의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 누적 득표율(7월 24일 기준)은 △정봉주(21.67%) △김병주(16.17%) △전현희(13.76%) △김민석(12.59%) △이언주(12.29%) △한준호(10.41%) △강선우 (6.99%) △민형배(6.13%) 후보 순이다.
‘명심’ 후보들이 체면을 구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후보 캠프 총괄본부장이자 사실상 러닝메이트로 꼽히는 김민석 후보는 4위로 당선권 턱걸이에 놓인 상황이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복당한 이언주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3%포인트에 불과하다. 이재명 후보 수행 실장 출신 한준호 후보와 당내 최대 계파로 부상한 강성 친명 모임 ‘더민주혁신회의’ 소속 강선우 민형배 후보는 하위권이다.
이재명 후보는 초반 선거 결과에 당혹감을 표출했다. 이 후보는 7월 20일 경선이 끝난 뒤 본인 유튜브 방송에 김민석 후보를 초대해 “그런데 왜 김민석 의원 표가 이렇게 안 나오는 거냐? 지금 제주보다 더 떨어진 거죠?”라며 “난 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상호 전 의원은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지난번에 정봉주 후보에게 공천을 줄 수 없었던 결정을 내린 지도부로서는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봉주 후보 돌풍 배경에 대해 7월 23일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YTN ‘뉴스NOW’에서 “이재명 전 대표가 가져왔던 일종의 팬덤 현상. 그 팬덤 현상의 또 다른 얼굴과 이름이 바로 정봉주가 되는 것”이라며 “팬덤 현상이 있고 오랫동안 방송활동 해왔던 정봉주 전 의원이 일종의 언더독, 동정론으로 팬덤 현상을 몰아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후보마저도 강성 팬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고개를 들었다. 정봉주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7명 후보는 네이버 팬카페 ‘재명이네마을’에 글을 올리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통하지 않고 있다. 강성 팬덤 사이에선 정봉주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심’과 ‘당심’ 괴리가 나타난 것을 두고 팬덤 내분 양상까지 표출됐다.
그러자 ‘재명이네마을’ 측은 “최고위원 8인을 비방하는 것과 악의적 기사를 게시하며 분란을 조장하는 것을 금지한다”며 “지난 최고위원 경선 때 정청래 의원을 미는 다수 의견과 그 반대 의견이 상충하며 마을 주민 간 분쟁이 심각했던 때를 기억한다. 마을 내 분쟁이 정말 심각했다. 8인에 대한 네거티브는 통보 또는 무통보로 강력 조치 및 제재하니 규정을 지켜 활동해주길 바란다”고 공지를 올렸다.
그동안 이재명 후보는 강성 팬덤을 통제하기 쉽지 않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2023년 10월 26일 당시 이재명 대표는 전·현직 원내대표 도시락 오찬에서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등에 대해서 제가 여덟 번인가 공개적으로 촉구를 했다. 그렇다고 내 말을 듣는 것도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날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당대표나 지도부가 강성 지지자들을 일일이 통제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도 ‘체포동의안 가결파 징계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하자 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강성 팬덤은 22대 국회 들어 더욱 조직화되고, 권력화되는 양상이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가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초 친명계는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추 의원의 강성 좌충우돌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추 의원 추대를 강하게 요구했다. 결국 친명계는 조정식 정성호 의원을 사퇴시키며 ‘교통정리’에 나섰으나,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국회의장 선거 결과는 강성 지지자들 연쇄 탈당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그 규모는 약 2만 명에 달했다. 이재명 후보는 ‘당원 중심 정당’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뜻을 밝히며 수습에 나섰다. 이후 5월 30일 민주당은 22대 국회 첫 의원총회에서 당원권 강화를 위한 당헌·당규 개정안을 띄웠다. 국회의장단과 원내대표 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를 20% 반영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강성 팬덤은 검사 탄핵안에 기권했던 곽상언 민주당 의원을 원내부대표직에서 자진 사퇴시키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 내에선 “징계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강성 지지자들 반발로 인해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곽 의원을 만나 자진사퇴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조율했다고 한다.
강성 팬덤이 정봉주 후보를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시킨다면, 중도층 공략에 공을 들였던 이재명 후보로선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친명 진영에선 정 후보가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만큼 외연 확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후보는 21대 총선에선 ‘성추행 미투 의혹’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22대 총선에선 목함지뢰를 밟은 장병을 희화한 과거 발언으로 공천을 취소당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은 소수 강성 팬덤을 반긴다. 그들이 큰 목소리로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해주기 때문이다. 직접 나서지 않아도 팬덤에서 정치적 상대방을 제압해주기도 한다”며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팬덤을 이용하던 정치인이 팬덤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강성 팬덤 권력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