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어울리지 않는 마약청정국이란 이름…전현직 마약 유통업자 인터뷰해 책으로 펴내
전 기자는 2024년 8월 ‘뽕의 계보-정강봉부터 텔레그램까지 필로폰 유통왕 60년 이야기’를 팩트스토리에서 펴냈다. 이 책은 최초로 검거된 히로뽕 사범 ‘정강봉’부터 텔레그램 유통방식을 확립한 신세대 유통왕까지, 히로뽕 비즈니스맨의 역사로 보는 한국의 히로뽕 마약 실태가 담겨 있다. 뽕의 계보는 한국의 마약 유통과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를 조명한 이 책은 한국 사회에 깊숙이 스며든 마약 범죄의 실체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논픽션은 팩트스토리, ‘재혼황후’ 웹툰 제작사 엠스토리허브, 드라마 제작사 지앤지프로덕션 3개사가 공동개최한 MGF 메가fun 제1회 범죄미스터리 공모전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팩트스토리와 언론사 경향신문사의 취재협업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책을 쓴 전 기자를 만나 그가 마약 유통 업계를 다룬 녹픽션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들어봤다. 그는 ‘뽕의 계보’를 집필하게 된 배경, 마약 유통 계보, 마약 범죄와 관련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뽕의 계보는 그가 법원 출입 기자로 일하던 시절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2021년 전현진 기자는 경향신문 법원 출입 기자로서 여러 재판을 취재하던 중, 한 경찰관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듣게 됐다.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마약 유통업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전 기자는 유명 마약 유통업자 재판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한국 마약 범죄의 진짜 얼굴을 직시하게 됐다.
“재판을 보면서 마약 유통업자들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약왕’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으로, 고급 정장을 입고, 해외 네트워크와 연계돼 있고, 수백 킬로그램의 마약을 운반하는 그런 인물들이다. 그런데 내가 본 현실은 전혀 달랐다”
그가 법정에서 목격한 마약 유통업자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전 기자가 본 마약왕은 야구 모자를 쓰고 동네 사우나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에게는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전 기자는 이들의 재판을 1년 넘게 지켜보면서 이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재판을 보면서 이 사람들의 삶과 마약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깊숙이 퍼져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인생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했다. 그러다 점차 마약 자체 역사와 한국 사회에서의 위치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게 됐다”
책을 쓰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 전 기자는 수감 중인 피고인들의 인생사를 중심으로 책을 구성하려 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수감된 이들과의 편지 교환은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기에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피고인들의 개인사를 다루려 했는데, 수감된 그들과의 소통은 너무나도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 한 권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점차 이 사건의 배경, 특히 필로폰이라는 약물의 역사와 한국에 뿌리 내리게 된 유통업자들의 계보를 다루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
그렇게 전 기자는 필로폰의 한국 내 유입과 확산 과정을 추적하며, 단순히 개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한국 마약 범죄의 총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됐다. 책의 방향이 바뀌면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을 취재해야 했고, 마약 유통업계의 다양한 인물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전 기자는 전현직 마약 유통업자 약 40명 이상을 만나봤고, 서면이나 통화를 한 유통업자는 더 많았다고 한다. 이들 중 전 기자는 실제로 얼굴을 본 유통업자만 책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전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마약 유통업자들이 예상 외로 자신에게, 언론에게 열려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많은 이들이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크게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이 인터뷰에 거리낌이 없는 이유로 전 기자는 ‘마약을 유통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고 판단했다. 마약 유통업자는 마약 유통을 하나의 상거래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이 마약을 유통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이를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 생각했다.’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팔았다’는 식의 논리였다. 이들은 마약 유통업이 원하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니 피해자가 없을 뿐더러, 마약 유통은 생계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특히, 전 기자는 이들이 마약 유통을 통해 얻는 수익과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 사이의 괴리감을 강조했다. 영화 속의 마약왕과는 달리, 이들은 규모를 키우지 않고 작은 그룹으로 움직였다. 마약 유통업자는 마치 채소 유통업자가 식당에 납품하듯, 유통 조직 서로를 거래처로 여기는 모습 등 영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한 점에서 마약 범죄가 단순히 강력범죄로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그의 시각은 책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미디어에서 흔히 ‘마약 유통업자가 마약 사용하면 끝이다’는 말이 쓰인다. 필로폰 유통업자를 취재한 전 기자는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할까. 전 기자는 “내가 만난 필로폰 유통업자들은 앞서 말했듯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이들이 단순히 마약을 유통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신뢰 네트워크를 통해 거래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개 검증된 사람들에게만 물건을 공급하며, 자신들의 안전과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의 일상에서는 마약을 사용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다. 마약을 하면 일시적으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는 큰 금전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 기자는 “마약 유통업자가 마약 사용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마약을 사용하면 장사에 차질이 생긴다. 필로폰 사용자들은 투약 후 일시적으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며, 이는 직접적인 금전적 손실로 이어진다. 둘째, 마약 사용이 발각되면 법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검사를 통해 양성이 나올 경우, 변명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법적 처벌이 확실해진다. 마약 양성이 나온 경우 경찰 수사를 통해 상선(마약 유통 총책) 수사가 본격화될 수 있다. 따라서 유통업자들은 마약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통해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 기자는 ‘필로폰 중독자 중 10명 중 1명만 필로폰을 끊을 수 있고, 그 1명은 유통업자가 된다’는 얘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전 기자는 “흥미로운 점은, 마약을 유통하는 사람들은 마약 유통 자체에 중독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통을 통해 얻는 권력과 영향력, 그리고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쾌감이 중독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큰 규모 유통업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통해 대량의 마약을 유통하고, 이를 통해 얻는 금전적 보상과 권력에 중독된다”고 말했다.
마약 유통업자는 감옥에 가는 경우가 빈번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들의 네트워크를 유지할까. 전 기자는 “마약 유통업자가 중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최근에서야 일어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짧은 기간 수감 이후 출소할수 있었다. 마약 유통업자들은 감옥에 가더라도 그들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특히, 국내 감옥에서는 접견이나 편지를 이용하고 심지어 해외 감옥에서는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현직처럼 거래를 지휘하기도 한다. 이들은 감옥에서도 네트워크를 통해 지시를 내리고, 새로운 고객을 찾는 등 계속해서 유통망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 기자는 최근 마약 유통 방식이 소위 올드보이(OB) 유통 방식과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전 기자는 “현재 마약 유통의 방식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텔레그램과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유통업자들은 온라인에서 비대면 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직접 만나서 거래를 했지만, 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던지기 등 수법으로 비대면으로 마약을 대량으로 유통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 마약 유통업자들은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더 효율적으로 유통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기자는 이 책을 통해 필로폰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전 기자는 “이 책을 통해 필로폰과 같은 마약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약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는 과정을 시대에 따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마약 유통의 구조와 그 이면의 면모를 통해 독자들이 마약 문제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전 기자는 마약 유통업자는 큰 돈을 버는 것 같지만 그 끝이 불행한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도 지적했다. 전 기자는 “마약왕들의 삶은 대개 불운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짧은 순간 부를 쥐고 있지만, 결국 그들의 말로는 스스로 파멸을 초래한다. 유통망의 상층부에 위치한 이들은 종종 법의 철퇴를 피할 수 없으며, 최후에는 대부분 감옥에서 나올 수 없거나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면서 “큰 돈을 잠시 벌었다고 해도 언제 감옥에 갈지 모르기 때문에 과소비를 하는 경우가 흔하고, 추징을 당할 수 있어 착실하게 저축을 할수도 없다. 돈 관리를 할 능력이 없어 사기를 당하거나, 투자했다가 날리고, 돈을 뺏기는 사람도 있다.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은 ‘후배들한테 약도 좀 끊고, 적금을 해라’라며 조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대다수는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 기자는 앞으로 다양한 범죄와 사회적 이슈를 지속해서 다뤄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전 기자는 “연예인 마약이 사람들 관심이 많이 몰리긴 하지만, 그런 이목이 집중되는 문제 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계속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고, 독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