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일본과 협상 과정 유가족 접촉 안해…피해자 명단도 확보 못 한 상태 “추도식엔 누굴 데려가나”
#굴욕외교 논란
2007년 일본은 근대 산업 시설들을 세계유산으로 올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5년 나가사키현에 있는 하시마섬(군함도)을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협상 끝에 ‘한국인 등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속 강제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하도록 했다. 희생자 추모 시설 설치도 약속받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말을 바꿔 강제동원 자체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21년 7월 일본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일본은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사도광산은 에도막부 시기 일본 최대 금 생산지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사도광산은 강제노동으로 악명 높았다. 에도막부는 거처 없는 떠돌이나 죄수를 보내 강제노역을 시켰다.
에도막부가 무너진 다음인 1896년 2차 세계대전 전범기업 중 하나인 미쓰비시그룹이 사도광산을 인수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정부는 ‘노무동원계획’에 따라 조선인들을 동원해 사도광산에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펴낸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노동’에 따르면 1940~1945년까지 최소 1500명의 조선인이 끌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에도시대까지만 등재 대상이며 강제노동이 있었던 태평양 전쟁 기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를 배제하기 위한 꼼수로 풀이됐다. 한국 정부는 강제노동 역사를 다루지 않으면 등재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도 “전체 역사를 다루는 설명과 전시 설비를 갖추라”고 권고했다.
일본 정부는 물밑 협상 끝에 한국 정부 동의를 얻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7월 27일(현지 시간)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인도 뉴델리에서 회의를 열고 일본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기로 했다. 한국을 포함한 21개 회원국은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만장일치 결정이 관례다. 반대 의견이 나오면 합의가 될 때까지 심사가 무기한 중단된다. 이는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규정이다.
7월 30일 외교부는 “(사도광산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실제 전시 내용을 한·일 두 나라가 협의해 구성할 때 우리 쪽은 강제성이 더 분명히 드러나는 많은 내용을 요구했으며 일본이 최종적으로 수용한 것이 현재 전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8월 7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재정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에서 “사도광산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쪽에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우리 정부가 사도광산 등재에 동의해 준 사실이 드러났다.
유족들은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것에 대해 반발하는 분위기다.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 전날인 7월 26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사도광산에 강제노동 역사가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는 내용의 일부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의 호소문과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노동 실태 조사 내용이 담긴 한일시민공동조사보고서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의 호소는 반영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조선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설명하는 패널이 설치됐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패널에는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인 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대우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나 강제동원 등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구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는 배제됐다.
#‘패싱’ 당한 유가족들
일본 정부는 사도섬에서 매년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 개최 계획을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첫 추도식은 9월 중 개최될 예정이다. 정확한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노동자 유가족들을 초청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유족들은 협상 내용은 물론 추도식이 열린다는 소식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협상 과정에서 외교부는 유가족들과 접촉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들은 자신들의 입장이나 견해가 협상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강제노동 피해자 고 김종원 씨 유족인 김광선 씨는 외교부의 연락을 받은 적 없고, 일본이 계획한 추도식 등 사도광산 등재 관련 진행 상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다만 김 씨는 “옛날 (강제노동) 기억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일본을) 용서해 줘야 하지 않겠나”며 “(추도식에) 초청한다면 가서 (현장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얼굴이 알려진 유가족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유가족들과는 사도광산 진행 사안에 대해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만나서 설명을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사정이 있어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유가족들과 접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제노동 피해자와 그 유가족 명단이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공개된 피해자 명단은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와 개인 연구자가 밝혀낸 결과물이다. 이들은 연초 배부 명부, 사도광업소 자료, 해당 시기에 나온 신문 기사 등을 취합해 명단을 작성했다. 다만 이러한 명부에 중복되는 이름이 많아 현재 공개된 명단도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식 유가족 명단은 아직 없다. 이를 놓고도 정부의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확한 명단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일본 측 자료가 필요하다. 일본 니가타현 현립문서관에 있는 1414번 자료인 ‘반도 노무자 명부’에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명단이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가타현과 사도광산 측은 ‘원본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가 이 자료를 일본 측에 요청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현재 관련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의 외교부 관계자는 해당 자료를 요청했는지 묻는 말에 “통상적으로 다른 나라와 협의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답을 드리기 어렵다”며 “(피해자와 유가족) 명단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추도식을 지내려면 누가 있었고, 누가 죽었는지 알아야 한다”며 “유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부가 조사를 해야 (추도식에) 데려갈 것 아닌가. 그런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고 9월에 (추도식을) 약속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앞서 국회는 7월 27일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및 일본 근대산업시설 유네스코 권고 이행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결의안은 재석 225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결의안에는 “대한민국 국회는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신청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8월 6일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 관련 입장문’을 내고 “일본 정부는 군함도 등재 결정 직후부터 강제동원·강제노동을 부인했고, 이후 국제사회에 지속적인 여론전을 펼쳐왔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일본 대표는 강제노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강제성을 재차 부정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용인하고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 의장은 △사도광산 관련 외교협상 전모 공개 △니가타현 현립문서관 반도노무자 명부 등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확보 △일본 유초은행이 가지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통장 확보 촉구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