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윤-한 갈등’ 위기설 잠재우기 포석…채해병 특검법·의료대란 등 의제 합의 쉽지 않아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여야 대표회담이 9월 1일 개최된다. 이 대표가 지난 8월 1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연임을 확정하며 먼저 한 대표에게 대표회담을 제안한 지 2주 만에 양당 대표가 마주 앉게 됐다.
한 대표가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직후 상견례차 이 대표를 예방한 일정을 제외하고, 두 사람이 정책의제를 논의하기 위해 공식회담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야 대표간 공식회담은 2013년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황우여 대표와 민주당 김한길 대표 이후 11년여 만이다.
앞서 한동훈 이재명 대표는 양당의 지도부 진용이 갖춰지자마자 신속히 8월 25일 대표회담을 갖기로 합의했지만, 이 대표가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연기한 바 있다. 대표회담이 한 차례 미뤄지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결국 무산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여권에선 한 대표가 이 대표의 회담 제안을 너무 성급하게 받았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한 대표 취임 한 달을 두고 여전히 ‘정치초보’ 티를 벗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여러 정치적 사안에 대해 본인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도 않고, 입장도 오락가락했다. 한 대표 스스로 헛발질을 하며 존재감이 사라졌다”며 “한 대표 입장에서는 본인이 말을 잘한다 생각하기에 이 대표와 대표회담을 하면 그동안 깎인 점수를 단숨에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에 주변 참모들과 제대로 논의도 없이 대표회담에 응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동훈 대표의 ‘회담 생중계’ 제안도 언변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당내에서도 미숙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대표 후보로 경쟁했던 윤상현 의원은 8월 2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회담이라는 게 결론을 맺기 위해서는 서로 양보할 것도 있고 솔직히 밖에서 얘기 못할 것도 많다. 그게 협상인데 어떻게 생중계하나”라며 “이벤트처럼 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한 대표 측에서 9월 추석연휴·10월 국정감사 등을 핑계로 추후 일정 합의에 줄다리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없던 일로 넘어가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던 배경이다.
하지만 연기 일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대표회담 일정을 다시 잡은 데는 당 안팎서 대두되는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현재 한동훈 대표는 용산 대통령실과 친윤계에 둘러싸여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해병 특검법’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당대표 선출 이후 당 지도부는 “당헌에 따르면 국회 운영은 원내대표가 최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했다. 결국 한 대표는 “원칙적으로 특검은 수사가 진행된 이후 하는 것”이라며 ‘제3자 추천 특검 법안’ 추진을 사실상 거둬들였다.
의대 증원을 두고도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에 갈등이 분출됐다. 한 대표는 의료대란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자,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보류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 한 대표의 제안을 반박하는 입장이 쏟아졌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부와 대통령실은 검토 끝에 한 대표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고, 추경호 원내대표도 “(한 대표와) 사전에 심도 있게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고 힘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실이 “현재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한 대표의 제안은 검토대상이 아님을 못 박았다.
또한 대통령실은 8월 30일 예정됐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등 여당 지도부 만찬 회동을 추석연휴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연기 이유로 “민생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 우선”이라고 설명했으나, 정치권에서는 용산 대통령실이 ‘윤-한 갈등’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리더십 도마에 오른 한동훈 대표로선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이 국면 전환용 카드가 될 수 있다. 집권당 수장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대표의 노림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와의 회담에 오를 안건들이 녹록지 않아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회담일은 확정했지만 논의할 의제는 하나도 결정되지 않고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쟁 중단 선언 △민생회복 지원 △정치개혁 협의체 상설화 등을 의제로 제시했다. 민주당은 △채 해병 특검법 △전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법안 △의료대란 해결 등을 회담서 다루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에서도 채 해병 특검법과 의료대란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채 해병 특검법 추진 동참으로 한 대표를 다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 대표는 제3자 추전 특검 법안’ 추진을 거둬들이면서, 민주당을 향해 “정 급하면 민주당이 기존 법안에서 독소조항을 빼고 대법원장 추천 방식의 특검법을 새로 발의하라”고 대응했다.
이에 민주당 내에선 한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안을 반영한, 채 해병 특검법을 발의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이러한 특검법을 회담에 들고 나와 특검 수용을 촉구할 경우 한 대표로선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윤-한 갈등’에 불을 지핀 의료대란 문제 역시 테이블에 올라오면 한 대표가 합의점을 내놓기 쉽지 않다. 이미 민주당 이해식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의료대란·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인한 의정 갈등은 주요 의제로 확실하게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국민의힘 박정하 비서실장은 “의정갈등 문제는 국회에서 법과 예산을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당은 의제로 다루지 않을 예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 대표는 이번 회담에서 합의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채 해병 특검법이나 의정갈등 모두 윤석열 정부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문제에 이 대표와 손을 잡으면 정부여당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한 대표가 채 해병 특검법과 의료대란과 관련해 이 대표와 합의를 한다 해도, 윤 대통령은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면 한 대표는 아무런 최종 결정권도 없는 바지사장임을 입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여야 대표회담이 성사되면서 이제 관심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으로 쏠리고 있다. 앞서 4월 29일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대통령 취임 1년 11개월 만에 영수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당시 회담은 대통령실과 민주당의 의제 조율 실무회담 난항 끝에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뤄져, 별다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끝났다.
이 대표는 8월 18일 전당대회 당대표직 수락연설에서 “민주당 신임 대표로서 윤 대통령에 영수회담을 제안한다”며 “지난 영수회담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지난 회담에서 언제든 다시 만나 국정에 대해 소통하고 의논하자는 데 뜻을 같이한 만큼, 윤 대통령의 화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 가능성에 대해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영수회담을 해서 문제가 금방 풀릴 수 있다면 열 번이고 왜 못하겠나”라며 “일단 여야 간에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하고, 이렇게 해서 국회가 해야 할 본연의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앞서 여권 관계자는 “여야 대표회담은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으로 가는 지렛대 역할이다. 이 대표는 대표회담이 끝나면 계속해서 영수회담을 제안할 것”이라며 “용산 대통령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대표가 대표회담을 피함으로써 그 길목을 막아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대표는 본인 생존을 위해 대표회담을 바로 승낙했다. 이 결정에 대통령실이 불편한 기색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