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한복판 상행위, 하이힐·독일차·호텔 와이파이…“러시아 통 큰 원조가 경제 활력 불어넣은 듯”
한 러시아 유튜브 채널에 평양 여행 영상이 게재됐다. 이 영상은 10월 10일~11일경 촬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영상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평양 순안국제공항으로 이동하는 과정의 풍경, 순안공항에서 평양 시내까지 이동하는 과정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 속에 거리에서 일어나는 활발한 상업 행위 등이 포착되면서 북한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던 북한이 아니’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북한의 관문인 평양 순안국제공항은 대리석 바닥에 신식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기념품 상점, 청량음료 및 간식을 판매하는 매대, 옷 상점, ‘아시아 료리 전문식당’을 비롯한 식당 등이 공항 내부에 있었다. 순안공항 주차장엔 차가 많지 않았고, 관광객들은 공항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주차장에 있는 관광버스에 탑승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시내까지 이동하는 풍경은 한적했다. 허허벌판이 주를 이뤘다. 평양으로 진입한 뒤부터 신식 아파트 건물과 상점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점, 양복점, 정보기술교류소 등이 아래층에 위치한 주상복합식 건물도 눈에 띄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북한 특유의 선전 문구들이 일정 간격마다 배치돼 있었다.
이후 관광버스는 평양 심장부를 지났다.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이 걸려 있는 금수산 태양궁전 앞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길거리 곳곳엔 노점이 세워져 있었다.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생수 브랜드인 ‘강서약수’ 간판이 걸린 노점과 ‘빙수’라고 적혀 있는 간판 노점 앞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식료품’ 혹은 ‘청량음료’라고 적혀 있는 간판이 걸린 노점 앞에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기도 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적힌 버스가 거리를 돌아다녔고, 신식 무궤도전차가 거리를 지나가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한 여성은 가판대처럼 보이는 리어카에 과일과 채소 등을 싣고 끌고 가고 있었다. 거리 한복판에선 작물들을 바가지로 퍼담아 판매하는 장소도 목격됐다. 이곳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이 가장 놀랍게 생각한 포인트는 평양 한복판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상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우리가 알던 북한의 모습이 아니”라면서 “흡사 자유 진영 국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상업 행위가 자리 잡고 있는 장면을 보면 예전의 북한과 사뭇 다른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북한 내부 규율 중엔 세 명 이상이 모이지 못하게 돼 있는데, 이 영상을 보면 곳곳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며 “여성들은 하이힐을 신고 있고, 어린이들은 가방을 메고 뛰어다니기도 하며, 일부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내부 주민들은 빈곤하고 의욕이 없는 것처럼 알려져 있었는데, 평양 풍경을 보면 그래도 사람 사는 활력이 느껴진다”며 “자동차나 전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이색적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동차에 넣을 기름과 전기 자전거를 충전할 전기가 있다는 것”이라며 “모든 것이 부족한 것처럼 알려진 북한 관련 정보와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여행객이 찍은 유튜브 영상엔 상점 내부 모습도 담겼다. 상점 내부에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와 ‘봉사성’이라는 선전 문구가 액자에 걸려 있었다. 잡화류와 ‘위생종이(휴지)’ 등이 진열대에 놓인 가운데, 일본 브랜드 ‘요넥스’ 배드민턴 라켓도 전시돼 있었다.
식료품점엔 ‘겹과자’ ‘통합당과류’ ‘과일빵’과 더불어 각종 음료수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착용한 북한 주민이 매대 앞에 서있는 장면도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후 호텔에 체크인 한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 문구도 시선을 끌었다. 안내 문구 내용은 와이파이 사용 관련 내용이었다. 와이파이 가격은 10분당 1.7달러(약 2392원)이며, 통화 후 와이파이 전원이 차단됐는지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통화 후 와이파이를 차단하지 않으면 통화 중으로 (인식)되어 사용료금이 지불된다’는 부연 설명도 적혀 있었다.
2일 차 영상엔 북한 현지 거리 풍경 등이 보다 자세히 소개됐다. 일부 건물은 국내 타운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고급 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가야금 연주 수업, 무용 수업, 통기타 수업, 미술 수업, 피아노 수업, 컴퓨터 수업, 수학 수업, 배구 수업 등을 받는 장면도 소개됐다. 북한 현지 서커스 공연을 관람하는 장면도 영상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러시아와 밀착관계를 형성한 뒤 무기 등 군수품을 팔아넘기면서, 북한 경제에 활력이 돌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야말로 빈 집에 소가 들어간 격이다. 그것도 큰 소가 들어간 것 같다. 북한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할 당시에 중국은 북한에게 ‘죽지 않을 만큼’만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북한을 통제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재 전쟁이 급하니 ‘통 큰 행보’로 화끈하게 북한과 경제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평양 경제가 활력을 되찾은 풍경이 러시아 관광객이 촬영한 영상을 통해 공개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관계자는 “물론 북한 최대 도시인 평양에서 느껴지는 활력이 지방 곳곳까지 스며드는 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빈곤과 통제’ 속에서 각박하지 않다는 것을 영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최근 들어 K-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이유도 평양 내 새로운 활력이 공급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며 “경제적으로 활기가 생길 경우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가 한국 관련 콘텐츠를 더욱 강력하게 배격하고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전직 외교 당국 관계자는 “관광객이 직접 찍은 영상에 나온 인파는 북한 당국에서 직접 연출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다”며 “각종 북한 자체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워 상행위를 이어가는 점과 외국인에 한해 호텔 안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은 북한 내부 최신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북한과 관련한 콘텐츠는 주로 ‘북한 지도부 폐쇄성’을 지적하는 일변도로 이어져 왔다”며 “북한의 현재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남북관계 플랜을 새롭게 짜야 하는 것은 물론 북한에 과연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지 여부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러시아와 북한의 경제 협력이 북한 현지에 경제적 활력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우리 안보에 영향을 미칠 요소는 없을지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