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경제 챙기며 대권 향한 외연 확대 총력전…최측근 이화영 2심 중형 등 사법리스크 위협 지속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 다음날인 12월 15일 이재명 대표는 ‘국정안정협의체’를 띄웠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 직무정지를 거론한 뒤 “이제 여당도 야당도 없다”며 국민의힘과 정부를 향해 참여를 촉구했다. 또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문했고, 비상계엄 당시 명령에 따르지 않은 하급 지휘관 병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포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를 중심으로 경제·민생에 집중하고 있다. 12월 12일 경제단체 간담회를 진행했고, 16일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인사들을 만났다. 19일에는 이 대표가 상법 개정안 관련 정책토론회 좌장을 맡아 열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에 이어 우클릭 경제 정책을 펼치며 외연 확장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견제구를 던졌다. 12월 15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당대표 권한대행)는 “국민의힘은 여전히 여당”이라며 ‘국정안정협의체’ 참여를 거부했다. 권 원내대표는 “고위당정협의회든 실무당정협의회 등을 통해서 윤석열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겠다”며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에 민주당이 여당이 된 것처럼, 국정 운영 책임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권 대행은 20일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12월 17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SNS에 “이미 대통령이 된 듯 ‘상왕 놀이’에 심취한 이재명 한 명의 존재가 한국 경제와 정치의 최대 리스크”라며 “입으로는 경제 회복을 말하고 뒤로는 기업을 옥죄는 앞 다르고 뒤 다른 이중플레이, 국민은 준엄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 시장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관련기사 ‘먹사니즘’ 잊었나요? ‘국회증언감정법’ 재계 불만 높은 까닭).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1인 정당’이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6년 탄핵 정국 때 원외 인사로 대선 행보에 나섰다. 자신의 대권과 당을 분리해서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자유롭게 경쟁을 펼치며 정치적 체급을 키울 수 있었다.
이재명 대표는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1위로 독주하고 있다. 다른 민주당 후보들은 보이지 않는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를 거쳐 완성된 이재명 체제 민주당에서 다양성이 실종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집권 준비를 1년 안에 마치겠다”고 대놓고 말하며 당선됐을 정도다.
실제로 민주당은 집권플랜본부와 당대표특보단 등을 출범시키며 ‘이재명 대선 승리’에 집중하고 있다.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해서 과반 의석을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당 차원의 ‘이재명 변호인단’ 구성을 검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물밑에서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대북송금’ 재판 논리를 구축하고 있었다(관련기사 [단독] 이재명 1명 구하기 올인? 민주당 정치검찰사건조작대책단 내부에선).
문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처럼 현역 의원들을 동원해 세를 과시하지 않았다. 대신 각 분야 전문가들을 포섭하는 데 힘을 썼다. △학계 인사 800여 명이 모인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김대중·노무현 정부 장·차관 60여 명으로 구성된 국정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 △전직 외교관 24명으로 구성된 외교자문단 ‘국민아그레망’ △국방·안보 전문가로 구성된 ‘더불어국방안보포럼’ 등 외곽조직을 구성하며 외연 확장에 집중했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음에도 당내에서 자정 작용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른바 ‘신3김(김부겸 김동연 김경수)’을 비롯해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내 역동성, 민주성이 사라졌다는 문제는 이 대표 체제 이후 줄곧 제기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대선 기간 내내 친문 패권주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7년 1월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이 개헌 저지 문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당 대선 후보로 규정해서 파동이 불거진 바 있다. 이로 인해 당시 지지율 1위였던 문 전 대통령을 향해 당내에선 거센 비판이 일었다.
과거 친문 패권주의를 비판했던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은 12월 17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서 “공간이 열리면 반응, 돌파, 이런 것들은 당연히 하게 될 것 같은데 지금은 뭐 저도 그렇고 이른바 민주당 내 비명계 주자들, 이런 분들에게 공간이 별로 없다”며 “공간이 있어야 돌파하고 움직이고 골을 넣고 패스를 하고 할 거 아니에요. 없는 공간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친명 패권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고 토로한 것으로 읽힌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사법리스크’는 중대 변수로 꼽힌다. 이 대표 최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12월 19일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대표의 대북송금 제3자뇌물 관련 재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2심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렇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함께 ‘이재명 재판도 미루면 안 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재명 대표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 “국민 상식선에서 바라보면 이 대표는 유죄 받지 않겠나”라며 “이화영 전 부지사가 누굴 위해서 대북송금 행위를 했는지만 보면 된다. 부지사가 도지사 몰래 이 일을 추진했다는 건 비상식적이다. 이 전 부지사 변호인도 ‘이화영에 대한 유죄 판결은 불가피하게 향후 이재명에 대한 유죄를 추정하는 유력한 재판 문서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히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이런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빨리 진행, 대선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포석이다. 이 역시 이 대표 재판 일정과 무관해 보이지 않다. 앞서 11월 15일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현행법에 따라 2025년 2월 15일 전 2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되면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선거법은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 안에 재판이 마무리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민주당 내에선 이를 거론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의 생존 위기와 직결돼 있는데도 ‘플랜B’ ‘이재명 대안론’ 등의 얘기는 전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이는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이 공고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개인 범죄와 당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며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 헌법기관이다. 국민 대변자로서 소신 있게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정치인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