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보수층 2030 등장 주목, 주로 ‘디시인사이드’서 활동…여당 정치권 동조 발언이 음모론 확산시켜
#공격당한 사법부
1월 18일 윤 대통령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서부지방법원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운집했다. 이들 대부분이 흥분된 상태로 보였다. 지지자들은 오후 6시 50분경 영장실질심사에 참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가 탄 차량을 가로막았다. 이들은 차량을 훼손하며 “빨갱이를 잡았다”고 외쳤다. 공수처 차량은 1시간 가까이 위험에 노출됐다. 경찰 기동대가 지지자들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공수처 수사관 1명이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지자들은 현장에 있던 언론인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KBS, MBC, MBN 등 방송사 소속 기자가 폭행당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고스란히 촬영됐다. 촬영 기자는 카메라를 빼앗기기까지 했다. 한 지지자는 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죽여”라고 외치기도 했다. KBS와 MBC는 이 같은 폭력 행위에 대해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했다.
지지자들 상당수는 1월 19일 새벽까지 현장에 남아 있었다. 오전 3시경 윤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 공유되자 이들은 더욱 격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300여 명의 인력이 경찰 저지를 뚫고 법원 후문에 진입했다. 일부는 법원 담을 넘었다. 이 중 100여 명이 법원 외벽과 유리창을 깨부수며 본관으로 진입했다. 이들은 소화기, 모니터, 화분 등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부쉈다.
몇몇은 쇠파이프 등을 들고 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판사를 찾겠다며 판사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판사실 문을 하나하나 부쉈다. 1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유독 영장판사 방만 의도적으로 파손됐다고 했다. 지지자들이 법원 내부 상황을 미리 숙지한 채 침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이날 발생한 물적 피해는 6억~7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법원 바깥에서는 지지자들이 경찰을 공격했다. 이들은 경찰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법원 외벽에서 떼어낸 벽돌을 던졌다. 경찰은 중상자 7명을 포함해 51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사법, 행정, 언론 등이 폭력의 대상이 된 초유의 사태였다.
#음모론에 심취한 2030
이날 현장에는 20~30대 지지자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젊은 지지자들이 앞장서서 담을 넘고, 창문을 부수는 등 ‘전위대’를 자처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은 체포된 90명 중 46명이 20~30대라고 밝혔다. 그동안 강성 보수집회는 고령층이 주도해 왔는데, 청년층 등장은 새로운 현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윤 대통령 2030 지지자들은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커뮤니티에서 정보와 의견을 나누고, 집회 참석을 독려했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했다.
이들 중 대부분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심취해 있었다. 이 음모론은 전광훈 씨 등 극우 유튜버로 분류되는 이들의 주장에서 시작됐다. 극우 유튜버들은 △사전투표 조작 △전자개표기 조작 △선관위 보안시스템 해킹 및 투·개표 시스템 조작 △중국 배후설 등을 끊임없이 퍼뜨렸다. 이를 검증하는 언론 기사를 두고는 ‘중국 또는 야당의 사주를 받은 가짜뉴스’로 치부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감사원이 선관위를 감찰했다. 국정원은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공동으로 선관위 시스템에 대한 보안점검을 실시했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근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극우 유튜버들은 지속적으로 선관위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윤 대통령 역시 이러한 유튜버들에게 심취했었다는 정황들이 곳곳에서 나왔다(관련기사 계엄군 타깃 영순위…윤석열에 찍힌 ‘선관위’ 수난사).
송경재 상지대학교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극우 유튜버들이 부정선거론이라는 논리를 제공했고, 이 논리를 이용자들이 커뮤니티에서 주고받으면서 음모론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에서 선관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음모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 커뮤니티에는 윤 대통령 계엄을 호평하는 내용의 글이 주를 이루는 상태다. 이용자들은 계엄령이 부정선거 문제를 바로잡고, 중국에 조종당하는 야당·선관위를 ‘척결’하는 결단이라고 했다. 계엄령을 ‘계몽령’이라 표현하는 글도 있었다. 특단의 조치로 부정선거와 중국에 조종당하는 야당을 알아보지 못한 국민을 계몽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한남동 윤석열 체포 저지 집회,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 서부지방법원 폭동 등을 ‘십자군’이나 ‘성전’이라고 했다. 부정선거를 일삼고, 중국에 조종당하는 악 세력에 맞서는 의로운 행동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용어도 전광훈 씨 등 극우 유튜버들이 처음 사용했다. 극우 유튜버가 논리를 제공하면 이를 여과 없이 사용하는 구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광훈 씨가 언급한 ‘국민저항권’을 주장하며 서부지방법원 폭동을 정당화하는 글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글들이 많은 추천을 받아 인기 글에 대항하는 ‘개념 글’로 올라갔다. ‘과격 시위가 오히려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거나 ‘이미 내전’이라는 과격한 표현도 곳곳에서 보였다. 폭력을 비판하는 측은 ‘빨갱이’나 ‘좌파 프락치’라고 했다.
송 교수는 “나 아닌 사람은 다 타자라는 식이다. 종교 전쟁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가 아니면 다 적이었다. 나랑 조금도 다른 의견은 용납이 안 되는 것”이라며 “폭력은 기본이다. (자기 생각을) 확산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인권이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십자군’이나 ‘성전’이라는 종교 전쟁 관련 용어가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폭력 시위를) 성전화시키고 있고, 여기에 종교적 가치를 잘못 투영하고 있는 거다. 상당히 위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모론 자극하는 정치인의 입
전문가들은 서부지방법원 폭동이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폭동을 주도한 이들은 ‘큐아논’으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민주당이 정체불명의 ‘외계인 집단’에 지배를 받고 있다고 믿는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소아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트럼프 1기 때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의 지지 발언을 계기로 규모가 커졌다고 평가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을 구원자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들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하자 부정선거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의회 점거 폭동은 미국 차기 대통령을 공식 선출하는 2021년 1월 6일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지속적으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메시지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로 행진합시다. 우리의 힘을 보여 줍시다. 여러분은 강인해져야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냈다. 그 결과 4시간 동안 의회가 점령당했고, 시위대 4명과 경찰 1명이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에 따르면 이미 반박된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은 커뮤니티 속에서 ‘대안 현실’에 빠져 있다. 대안 현실에서 극우 유튜버 논리를 이용해 음모론을 발전시킨다. 이때 이들이 신봉하는 정치인이 행동하라고 독려하는 메시지를 낸다. 음모론에 빠진 이들이 현실 세계에서 의회 점거 폭동과 같은 폭력을 행사한다.
실제로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국민의힘 의원 등 여권의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었다. 김정현 반공청년단장은 일요신문에 윤 대통령의 편지가 반공청년단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흰색 안전모를 쓴 반공청년단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은 서부지방법원에서 목격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단독] “윤석열 편지 내용, 순교자의 자세” 백골단 정신 이어받겠다는 반공청년단장).
국민의힘 갤러리에서는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에 동조하는 정치인의 발언이 많은 추천을 받았다. 1월 1일 윤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보낸 신년 인사에서 ‘주권침탈세력’ ‘반국가세력’ ‘준동’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메시지는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이용자들은 주권침탈세력은 중국과 북한이라고 했고, 반국가세력은 민주당과 ‘좌파카르텔’이라고 했다. 이들을 ‘밟아버리자’거나 ‘박멸하자’는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의 편지에 나오는 “자유대한민국을 뿌리째 흔드는 부정선거의 전모를 명확히 규명해서”라는 대목에 대해서는 부정선거에 대한 전모가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압제자들에게 최악의 공포를 선사하고 그들을 격멸하자”는 글이 올라왔다.
계엄 동조, 탄핵 반대, 체포 반대 등의 발언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특히 윤상현 김민전 박대출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 석동현 변호사, 김재원 전 최고위원 등의 강성 발언에 공감한다고 했다. 윤상현 의원의 체포된 지지자가 곧 훈방된다는 문자는 폭력 집회를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월 19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서부지법 폭동에 대해 “폭력은 안 된다”면서도 경찰의 ‘폭력 진압’이 문제라고 했다. 1월 20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노총 시위대면 진작 훈방 아니었나”라고 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이 지지자들을 향해 폭도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용자들은 이러한 발언을 공유하며 ‘우리가 밀릴 이유가 없다’ ‘끝까지 가보자’ 등의 댓글을 달며 힘을 얻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김상욱 조경태 의원 등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좌표’를 찍고 ‘문자 폭탄’을 보냈다는 인증글이 속속 올라왔다.
김민하 평론가는 윤 대통령, 국민의힘, 극우 유튜브, 일부 보수언론, 윤석열 지지자 등이 ‘원 팀’이 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극우 유튜브에서 생성된 음모론이 이들의 중심축이라고 했다. 김 평론가는 “윤석열이 버티고, 이것이 극우 유튜브와 결합해 대중적인 동력이 생겨버렸다. 대중적 동력이 생기니 당이 거기서 못 빠져나오고 있다. 이 상황 자체가 다시 극우 유튜버와 윤석열에게 버티는 힘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는 극우화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폭력 시위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경찰은 다음 타깃으로 거론되는 헌법재판소 보안을 강화했다. 서부지방법원 폭동으로 체포된 사람과, 이들의 배후로 지목된 극우 유튜버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폭동에 관여한 이들에겐 특수건조물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될 전망이다. 법원에 침입한 이들은 특수건조물 침입죄가 적용된다. 징역 5년 이하의 형을 받게 된다. 경찰이나 공수처 수사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특수공무집행방해죄, 경찰을 다치게 한 사람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가 적용될 수 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가 적용되면 최소 3년 이상의 실형을 받게 된다. 소요죄가 적용되면 법정형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