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한 적 없어” “내란은 상대가 저질러” “군 투입은 장악 아닌 경계 목적” 곳곳이 흡사
이 시점에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 씨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 재판이 다시 주목된다. 12.3 비상계엄이 12.12 군산반란을 표방한 흔적이 역력하고, 주요 피의자들이 혐의를 부인하는 방식과 논리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12.12 사태의 '내란수괴' 전 씨와 가담자들은 중형을 피하지 못했다. '12.3 비상계엄' 주역 윤 대통령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12.12 군사반란은 전 씨가 만든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로 대표되는 신군부가 1979년 주도한 쿠데타다.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사건 수사 책임자인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과 하나회 소속 군인 등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대통령 재가 없이 연행, 그 과정에서 군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을 무력으로 장악하며 각종 실권과 정권까지 찬탈한 사건이다.
역사의 단죄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이뤄지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 속 12.12와 5.18 사건의 공판이 시작됐습니다.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이번 재판으로 숨겨진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참다운 정의가 구현되는 계기가 되며, 우리 후손들이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1996년 3월 10일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 417호. 김상희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12.12 군사반란' 사태 첫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영일 부장판사도 '피고인 전두환'을 호명하며 이례적 절차를 진행했다. "심리 전 국민 여러분을 위해 공판 외 절차를 잠깐 갖도록 하겠다"며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 각각 1명에 전 씨 등 피고인 16명의 뒷모습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
비장하게 돌입한 재판이지만 법정에서 연출된 장면들은 국민들 속을 뒤집어 놓았다.
3월 18일 2차 공판부터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은 반성 대신 큰 소리로 일관했다. 이날 신문에 나선 황영시(12.12 당시 육군 1군단장)·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등 피고인들은 검사의 모든 신문에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고 버텼다.
특히 전 씨는 자신들의 반란을 진압하려던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등이 되레 반란을 저질렀다는 등 진실과 아예 동떨어진 주장을 펴기도 했다. 아래는 2차 공판 신문 기록 일부다.
○검사 :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출동한 건 불법이지요.전 씨와 함께 '반란 핵심'이었던 전직 대통령 고 노태우 씨도 같은 태도였다. 그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9보병사단 참모장이었다. 서부전선 최전방을 지키는 부대였지만, 이를 빼내 경복궁 앞 중앙청에 집결시켰다.
○전두환 : 뭐가 불법이고 뭐가 정식계통입니까.
○검사 :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함으로써 계엄사령관이 유고됐으면, 윤성민 육참차장이 지휘권을 갖게 되고, 대통령·국방부 장관 등도 있지 않습니까.
○전두환 : 전혀 아닙니다. 국방부 장관은 소재가 불명확했습니다. 육참차장은 당시 수경사로 소재를 옮겼으므로 지휘관수소이탈(도피)에 유사합니다.
○검사 : 장태완, 윤성민 등이 군 병력을 동원한 게 반란이란 말입니까.
○전두환 : 그렇습니다.
노 씨는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이)효창운동장에 있는 포구를 청와대가 있는 경복궁으로 향하게 했다는 말도 나왔었다"며 "그러면 청와대가 어떻게 됐겠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승화 육참총장을 추종하는 이들이 반란군이지, 우리는 결코 반란군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나회는 자기부정에 가까운 모습도 보였다. 피고인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와 황영시 등 하나회 핵심 멤버들은 "하나회란 단체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입을 맞췄다. 전 씨의 경우 "하나회는 1973년도에 없어졌다"며 "정 총장 연행 계획을 하나회가 먼저 알긴 했으나, 이는 지휘관의 운영상 묘라는 게 있다"는 거짓 진술을 내놓았다.
이들은 '어떻든 최규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사후재가했다' 등의 결과론을 앞세워 정 총장 연행의 정당성도 피력했다. 검사가 '최 대행 재가는 안 나올 수 있었다'고 지적하자, 전 씨는 "여론상 최 대행이 재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실제 노재현 국방장관이 나타나자 곧장 재가하지 않았냐"고 되묻는 식이었다.
반란군을 진압하려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에 실탄을 발포하고, 그의 비서실장인 김오랑 소령을 사살한 사건은 '실수'로 치부했다. 아래는 그해 3월 25일 정 전 사령관과 김 전 소령에 총을 쏜 박종규 전 대령의 3차 공판 신문 기록 일부다.
○검사 : 실탄 무장은 김오랑 측이 순순히 연행에 응하지 않고 반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까.
○박종규 : 군은 출동하면 무장합니다.
○검사 : 실제 발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종규 : 저쪽에서 먼저 사격을 가해 일부 병력이 쓰러졌습니다. 분에 겨워 몇 발 쐈을 뿐입니다.
○검사 : (사격 관련)부당한 명령은 거부해야 하지 않습니까.
○박종규 : 특수부대는 그런 교육 받지 않습니다.

○검사 : (1980년)5월4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최세창 등이 모인 자리에서 시국수습 방안을 설명한 적이 있지요.전 씨는 이 밖에도 모든 사안에서 책임을 회피했다. 그는 김오랑 소령이 숨진 데 대해 "결과만 알고 과정은 자세히 모른다"고 진술했다. 또 노 씨의 9사단 등 기타 병력 출동에도 "그러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며 마치 본인은 무관하단 듯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전두환 : 전혀 거짓말입니다.
○검사 : 계엄법에 따르면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한 때 전국 비상계엄선포가 가능하잖습니까.
○전두환 : 비상계엄 선포는 국가 긴급권의 발동으로서 대통령이 결정합니다.
○검사 : 계엄 요건이 되지 않는데도 지역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는 비상기구 설치와 국회 해산 등을 추진해 국정을 장악하기 위한 게 아닌가요.
○전두환 : 국가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는 목적뿐이었습니다.
당시 군이 육군본부 투입을 '장악'이 아닌 '경계' 목적으로 인식한 지점도 눈길을 끈다. 8월 5일 결심공판 증인으로 나온 김경일 전 1공수여단 1대대장 진술 일부다.
○검사 : 증인은 육본사령실을 7∼10일 가량 점령했는데, 이유가 무엇이고 점령하면서 어떠한 일을 했습니까.전 씨는 12.12 군사반란에 따른 내란 등 혐의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노 씨는 '징역 22년 6개월' 판결을 받았다. 기타 황영시·허삼수·최세창·박종규 등 군사반란 주요 종사자 14명에는 징역 4∼10년 형이 내려졌다.
○김 대령 : 육본이 적진은 아니므로 점령은 아니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주로 경계를 했습니다.
○검사 : 그렇다면 증인은 육본 점령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 대령 : 경계 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항소심에선 이른바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배경 등이 참작됐다. 이에 따라 전 씨는 무기징역, 노 씨는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다른 가담자들도 1심 판결보다 2∼3년 낮은 형량을 받았다. 확정판결이었다.

12.12 군사반란 재판 당시 전 씨 증언을 종합하면 △9사단 등 병력출동을 지시한 바 없음 △5.17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 △반란은 정승화 육참총장 추종자와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이 저지름 △육본 등 군 투입은 점령이 아닌 경계 목적 등으로 요약된다.
이는 최근 윤 대통령 측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내세운 △정치인 등 체포를 지시한 바 없음 △12.3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 △내란은 야당이 저지름 △국회 등 군 투입은 점령이 아닌 질서유지 목적 등 논리와 판박이다.
현재 12.3 비상계엄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10명이다. 각각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등이다.
다만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군인들의 국회·선거관리위원회 투입 등 각종 위법 행위가 영상으로 존재하는 만큼, 12.12 군사반란 재판보다 기초 사실관계를 둘러싼 다툼은 비교적 적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이 수사 주체부터 체포·구속영장 발부 등까지 정당성을 일제히 부정하는 전략을 취해 재판 속도는 차질이 따를 수 있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켰다고 진작 판단을 끝냈다. 2024년 12월 27일 기소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 공소장에서만 윤 대통령을 150차례 이상 언급했다. '국헌문란' '폭동' 등의 표현까지 적시했다. 이어 올 1월 26일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구속을 유지하고 재판에 남겼다.
윤 대통령은 최장 6개월 구속 상태로 법정 심판을 받게 됐다. 올 2월 첫 공판준비기일이 예상되고, 이르면 오는 7월 말쯤 1심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윤 대통령 사건을 형사25부에 배당했다. 이 재판부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 사건도 맡고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