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외교’가 전세계 경제를 긴장시키고 있다. 19세기 신식 대포를 앞세워 약소국들을 위협했던 열강들의 군함 외교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멕시코와 캐나다를 조준한 데 이어 중국에는 예고 없이 포탄을 날렸다. 유럽에 대한 공세도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면서 글로벌 관세 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쌓여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미국만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이 힘에서 우위에 있지만 중국과 유럽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결과 예측이 어렵다. 진행 상황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 설령 승리한 쪽도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승패를 떠나 글로벌 경제 전반에 악재일 뿐이란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마약(펜타닐)과 불법 이민자 통제를 명분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예고했다. 두 나라가 부랴부랴 대책을 약속하면서 시행이 30일간 유예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뒤이어 중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도 즉각 보복에 나섰다.
다만 미국의 이번 대 중국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때 예고한 수준(60%)보다 훨씬 낮다. 중국의 보복도 그리 매섭지 못하다. 미국의 대중 관세 부과 대상(2024년 기준)은 5250억 달러다. 중국의 대미 관세 부과 대상은 140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석탄과 석유 등이 대부분이다.
중국 정부가 알파벳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로 했지만 구글은 이미 2010년부터 중국에서 서비스가 중단됐다. 중국에서 생산 비중이 높은 애플이나 테슬라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는 없었다. 미국 기업들의 제품 생산에 꼭 필요한 텅스텐 등 광물 일부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했지만 범위가 넓지 않다. 타격이 적다는 뜻이다. 중국은 보복 조치의 발효 시한도 10일로 제시했다. 싸움을 걸어와 일단 ‘멱살’은 맞잡았지만 주먹질보다는 대화로 풀기 원한다는 신호를 분명히 한 셈이다.
멕시코와 캐나다 사례로 볼 때 미국과 중국도 결국 협상을 시작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대중 수출 보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훨씬 많다. 중국은 디플레이션 탈출구로 수출을 택했다.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의 무역장벽이 높아지면 아주 곤란하다. 우회 수출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멕시코에 대해 미국이 관세를 높이면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수출길이 험난해져 경제회복이 지연되면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공약했다.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지원 중단을 요구할 만하다. 중국이 러시아산 대신 미국산 원유를 더 많이 수입하면 푸틴 대통령의 곳간은 줄어들고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무역흑자는 늘어날 수 있다. 위안화 가치 하락을 제한해 중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도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 행진에 제동을 건 1985년 ‘플라자 합의’의 새로운 버전이다.
중국 바이트댄스가 소유한 ‘틱톡’(Tiktok) 미국법인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다. 파나마운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파나마 운하의 5개 항구 중 2곳에 대한 운영권을 중국기업이 가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 통제권 확보를 위해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힘에서 우위인 미국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중국을 무리하게 몰아붙이기는 애매하다. 협상이 결렬돼 전면적인 관세 전쟁으로 돌입하면 미국도 상당한 비용 부담을 안게 된다. 미국은 공산품의 상당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이나 멕시코 등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미국 업체도 상당하다. 관세로 수입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되살아 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패한 가장 큰 원인이 물가다. 지금까지 발표된 관세만으로도 미국 가계는 연간 1200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 등으로 가계 부담을 줄이더라도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에 뒤따를 고금리와 소비둔화 등의 부작용은 피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가 불안으로 기준금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관세조치 점검 상무관 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중국과 관세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다른 나라를 압박할 힘도 분산된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동시에 여러 나라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펼치기 어렵다. 관세 전쟁이 30일간 유예됐지만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는 이미 반미 감정이 상당하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인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에 단호히 맞설 태세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유럽연합(EU)이 미국에 방위를 너무 의존한다며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높이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이후 이를 다시 5%로 높였다. EU는 보복관세와 미국 기업 규제 강화 등 ‘바주카포’급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공화당 우세 지역을 중심으로 보복 조치들을 집중하면 미국 의회를 통해 트럼프를 견제할 수 있다는 전략까지 등장했다. 2년 후 중간선거를 겨냥한 접근이다. 유럽과 세계 각국이 연대해 맞서게 되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실제 발사되기보다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많은 이유다. 협상만 잘하면 미국이 얻을 이익은 상당할 수 있다. 중국을 계속 압박하면서도 주요 이권에서 양보를 받아내고, 유럽에게 미국산 무기를 더 많이 구매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낸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관세 전쟁 승리’를 선언할 만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외교가 협상으로 마무리되더라도 글로벌 경제의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보호무역이라는 정책기조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은 계속 추진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다. 공급망 재편에 따른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 더 긴 시간까지 내다봐야 할 기업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계획을 확정하기 애매하다. 투자가 위축되면 경제활동이 둔화된다. 탈 글로벌화에 따른 방위비 부담과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복지부담까지 감안하면 전세계적인 성장 정체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증시는 물론 금융시장에도 악재다.
트럼프, 국부펀드 설립 지시…관세 전쟁 다음은 금융 전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부펀드 설립을 지시하면서 미국이 관세 전쟁에 이어 금융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달러를 발행하는 기축통화 국가가 국부펀드를 무기로 전세계 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닌다면 그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1일(현지시각)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열린 국가 기도회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은 국부펀드를 통해 첨단 제조업, 방위산업, 의료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기업들을 사냥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민간 사모펀드나 연기금과 대학기금 등도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보다 훨씬 덩치가 더 큰 국부펀드가 등장하면 미국 자본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진다.
캐나다와 그린란드로 미국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트럼프 대통령이다. 파나마운하와 가자지구 점령 가능성까지도 언급했다. 국부펀드가 글로벌 기업들의 인수합병(M&A)에 나서면 자국의 핵심기업을 지키기 위한 각국 정부와 대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영권 가치가 주가에 반영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가부양책이 늘어나는 등 증시에 긍정적 영향도 있겠지만 핵심 기업의 경영이 미국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해당국 국가경제에는 치명상이 될 만하다.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스콧 베센트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에서 헤지펀드 매니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지정학적 상황과 경제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 움직임에 베팅하는 글로벌 매크로(Global Macro) 전략의 전문가로 꼽힌다.
미국 국부펀드가 글로벌 매크로 전략을 활용해 환율과 금리 시장에 뛰어든다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재도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달러화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해왔지만 공세적 수단은 되지 못했다. 국부펀드가 만들어지면 관세 아닌 금융을 통한 공세가 가능해진다. 국부펀드의 행보에 미국의 다른 기관투자자들이 동참한다면 그 위력이 배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