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회장 가격 산정 나서, 당초 인수 금액 수준 마무리 전망…3세 승계와 이어지는 ‘지주사 전환’ 속도 낼 듯

신 회장과 어피너티 컨소시엄(어피너티) 간 풋옵션 분쟁이 가격 산정만 앞두고 있다. 지난해 말 국제중재기구 국제상업회의소(ICC)가 2차 중재를 통해 신 회장이 미루고 있던 풋옵션 가격 산정을 강제해달라는 어피너티의 청구를 인용하면서다.
신 회장은 EY한영을 외부 평가기관으로 선정하고 공정시장가격(FMV) 산정을 위한 작업을 의뢰했다. 어피너티가 풋옵션을 행사한 지 7년 만이다. ICC는 30일 이내로 풋옵션 가격을 제출하도록 했지만 신 회장 측은 구체적인 실사 등을 이유로 두세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ICC에 제출한 바 있다.
2012년 어피너티는 신 회장과 주주간 계약을 체결하며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1주당 24만 5000원에 매입한 바 있다. 계약서에는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 기업공개(IPO)를 진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IPO가 되지 않았을 경우 어피너티가 풋옵션을 행사해 신 회장에게 지분을 매도할 수 있도록 했다. 생명보험업계 업황 악화 등으로 약속한 기한 내에 IPO가 이뤄지지 않았고, 2018년 어피너티는 1주당 40만 9912원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또 다른 FI인 어펄마캐피탈(어펄마)은 2007년 1주당 18만 5000원에 교보생명 지분 5.33%를 인수했는데, 어피너티와 비슷한 시기에 풋옵션(1주당 39만 7900원)을 행사했다.

먼저 백기를 든 건 어펄마였다. 지난 7일 어펄마는 신 회장에게 보유 지분을 1주당 19만 8000원(액면분할 전 기준)에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2162억 원이다. 어펄마는 18년 동안 장기 투자를 한 셈인데 이익을 남기지 못한 셈이다. 어펄마는 교보생명에서 받아온 배당금과 펀드 만기를 고려해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일종의 가격 ‘기준선’이 생겼다며 어피너티와 분쟁에서도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상 둘의 의견 차이는 좁히기 쉽지 않아 보인다. 최종적으로 풋옵션 계약에 따라 신 회장은 어피너티의 교보생명 주식 취득가인 24만 5000원 수준에서 지분을 매입할 것으로 분석된다. 신 회장이 선정한 기관인 EY한영이 공정시장가격을 산출하면 어피너티가 2018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을 통해 제시한 공정시장가격(1주당 40만 9912원)과 비교하게 된다. 주주 간 계약에 따라 차이가 10% 이내면 두 가격의 평균값이 풋옵션 가격으로 정해진다.
시장에서는 교보생명 주식 가격을 19만 8000원 선으로 보고 있다. 교보생명이 2023년 8월 우리사주조합, 골드만삭스에서 자사주 2%를 매입한 가격이다. 이것이 기준이 돼 어펄마와도 해당 가격으로 풋옵션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이는 어피너티가 제시한 가격에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가격이 10% 이상 차이날 경우 어피너티가 평가기관 3곳을 제시하면 신 회장이 1곳을 고른다. 선택된 기관이 정한 풋옵션 가격과 어피너티 취득가 중 높은 쪽으로 최종 선택된다. 또 선정된 가격이 어피너티 측 투자원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원금과 함께 연 6% 수준의 지연 이자도 함께 내야 한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교보생명 주식은 시장에서 19만 8000원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어피너티 취득 가격과 갭이 커 (신 회장이) 가격 산정을 최대한 미룬 것 아니겠냐”며 “신 회장이 가격 산정에 나선 만큼 늦어도 6개월 안에 어피너티 지분도 취득 가격 선에서 정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1월 신세계그룹과 어피너티의 풋옵션 분쟁이 있었는데 투자금 1조 원에 합의금 형태로 1500억 원을 지급하며 법적 분쟁 없이 비교적 원만하게 합의했다”며 “양측 사이 감정 골이 깊어지면서 사태가 악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신 회장은 평가기관 EY한영 선정을 마친 상태다. 한영은 가치평가보고서 작업에 2~3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승계·먹거리 발굴 등 과제 산적…신사업 주도 장남 ‘디지털 전환’ 실적 내야
교보생명은 2023년 2월 9일 지주사 전환을 공식화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명보험 중심 중·장기 성장이 한계에 부딪혀 비보험 부문 사업포트폴리오를 강화한다는 방침에서다. 주요주주 어피너티와 분쟁이 지주사 전환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지난해 말 신중하 상무가 임원으로 승진해 전진 배치됐다. 차남 신중현 실장도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다만 디지털 전환이라는 그룹 핵심 임무를 수행하게 된 신 상무가 추후 경영권을 승계받을 가능성이 높다.
신 상무의 계열사 내에서 입지도 점점 커지고 있어 지주사 전환과 동시에 승계작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 상무가 디플래닉스에서도 지난 1월 9일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되며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사실도 파악됐다. 기타비상무이사는 회사에 상근하지 않지만 사내이사와 마찬가지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신중하 상무는 2021년 교보DTS(전 교보정보통신) 디지털혁신(DX) 신사업 팀장을 맡았을 당시 데이터분석 전문 자회사 디플래닉스(Dpleanex) 설립을 주도한 바 있다. 교보생명에 집중하되 설립을 주도했던 디플래닉스도 챙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신창재 회장은 평소 “시기가 된다면 내 자녀든 아니든 유능하고 준비된 사람이 경영에 나설 것”이라고 한 만큼 장남 신 상무도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신 상무가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디플래닉스는 교보생명 등 그룹에 흩어진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디플래닉스는 2023년 그룹 통합 데이터 레이크(Data Lake) 운영 명목으로 교보생명 등과 17억 원 규모의 거래를 했으며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높아져 62억 원 상당의 거래를 올리고 있다. 수집한 데이터가 많아지며 비용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작업은 지속 중”이라며 “성공적인 금융지주 전환으로 안정적인 사업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디지털전환 기반의 종합금융서비스 제공을 통해 그룹의 장기 안정적 성장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일요신문i’는 디플래닉스 거래 증가 등과 관련해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정동민 기자 workhar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