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X 50시리즈 품귀, 용산 상인 “5090 대기자만 30명”…중국 쪽 사재기 속 국내 연구용 칩 확보도 어려워

지난 3월 6일 일요신문이 방문한 서울 용산전자상가. 이날 선인상가에서는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카드 ‘RTX 50’시리즈를 구경도 할 수 없었다. RTX 50시리즈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 선보인 최신 게임용 그래픽카드로 올해 1월 30일 정식 출시됐다.
특히 RTX 50시리즈의 최상위 모델인 RTX 5090은 전 세대 동급 모델인 RTX 4090 대비 성능이 약 33% 향상돼 시장에서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수입사는 첫 판매 시점부터 엔비디아 RTX시리즈 가격을 미국 판매 가격보다 30%가량 올렸다. 이에 따라 소매점 판매 단가도 1.5~2배가량 인상됐다. 그렇지만 웃돈을 얹어주고도 현재 용산전자상가는 물론 온라인 전자부품 쇼핑몰에서도 구할 수 없는 상태다.
선인상가 한 상인은 “워낙 물건이 없고 언제 들어올지도 잘 모르겠다. 들어와봤자 RTX 5080·5090 같은 고사양 칩 같은 경우는 10개 정도 들어오고 총판점에서 그걸 다시 나눠봤자 저희는 1개 정도 받을까 말까”라고 말했다. 다른 상인은 “한 달 넘게 기다려도 물건이 없으니 소비자들이 용산으로 온다. 제 휴대폰에만 해도 지금 RTX 5090에 걸어놓은 대기자만 30명이 넘어간다”라고 밝혔다.
품귀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게임용 GPU의 생산 부족이다. 엔비디아가 GPU 생산을 대만 TSMC의 4나노미터 공정에 맡기고 있는데 TSMC의 생산 스케줄이 꽉 차서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 가능 물량이 한정되다보니 엔비디아도 더 수익성이 높은 AI 가속기용 GPU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이번 공급 대란이 빚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인상가 다른 상인은 “게다가 엔비디아가 제조사들한테 GPU를 넘겨서 그래픽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공정이 성숙되지 못해서 TSMC의 GPU 수율이 너무 낮다. 지금 한 30~40% 수준인 걸로 알고 있다”라며 “기존의 RTX 40시리즈는 단종됐는데 신형인 RTX 50시리즈는 들어오지 않다보니 그래픽카드 자체를 용산전자상가에서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약 3개월 전부터는 재고도 다 소진되면서 소비자들이 번번이 허탕을 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래픽카드의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픽 카드에 들어가는 GPU는 AI 가속기용 GPU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기본적인 AI 학습 등에는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요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의 수출 규제로 GPU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에서 그래픽카드 사재기에 나서면서 품귀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의 선인상가 한 상인은 “지금은 재고가 아예 없는 상황이고 중국인 방문객이 다소 줄었지만 2월까지만 해도 하루에 3~4명씩은 와서 RTX 5090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갔다”라며 “RTX 3090이나 RTX 4090은 많이 사갔다”라고 밝혔다.
선인상가의 또 다른 상인 또한 “엔비디아의 H100~H200 같은 AI용 고성능 칩들은 저희가 발주하면 납품처까지 다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사갈 수 없다. 그렇지만 민간에서 가끔씩 풀리는 게임용 GPU까지는 단속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대안으로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사 간 다음 GPU를 뜯어서 쓰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중국은 수출 규제로 한 종의 GPU만 지속적으로 구매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종류의 GPU를 연결해 활용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여러 종류의 GPU를 연동해 쓰는 연구를 활발히 진행했기 때문에 민간에서 유통되는 그래픽카드를 구입해서 자기네들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국내에서는 고성능 AI용 GPU 칩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 수준에 맞는 연구를 위해서는 최소 H100급 GPU가 필요하지만 양이 적고 가격이 비싸 학교 단위 연구소에서는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H100~H200급 GPU의 경우 대당 가격이 5000만~6000만 원을 호가한다. 6개들이 팩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한번 구입할 때마다 최소 3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최병호 교수는 “국가 단위에서 5만 장 이상 대량 구매하는 경우 우선순위가 배정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공급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며 “AI 관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 기업이나 연구소들이 원하는 시점에 GPU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H100급 GPU는 전체 2000장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최근 발표한 AI 슈퍼컴퓨터 ‘그록3(Grok-3)’에만 20만 장의 H100을 투입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평균적으로 기업당 15만 장 이상의 H100을 보유하고 있어 국내와의 격차가 상당하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민간에서 유통되는 하급 GPU들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AI 연구개발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H100급 확보에도 어려움이 커서 진퇴양난”이라며 “한국은 특정 GPU 모델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 연구개발 과정에서 유연성이 부족하다. 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GPU 아키텍처를 활용하는 기술 개발과 함께 안정적인 GPU 수급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