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자 집단 반발 ‘형사고소’까지 고려…기업회생 준비 의혹 나돌아 불안감 가중

발란은 외부 판매자들이 상품을 등록해 판매하는 오픈마켓 방식과 자체적으로 상품을 소싱해 직접 판매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이미 판매돼 외부 판매자들에게 줘야 할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정산금 지급 지연 공지에 외부 판매자들은 ‘제2의 티메프 사태’를 우려하며 극도의 불안에 빠졌다.
판매자 A 씨는 “만약 정산에 실제로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일단 지급일에 판매액을 정산해 주고, 오류를 수정한 뒤 판매자들에게 청구하면 된다. 아니면 최소한 ‘28일 재정산 후 다음 날 지급하겠다'처럼 언제 지급하겠다고 확정을 해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언제 정산해준다는 말도 없이 일단 지급을 정지하면 판매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며 “발란에 받아야 할 돈이 억 단위다. 발란 정산 스케줄에 맞춰 대금 지급을 세팅해 놨는데 갑작스럽게 이 돈을 못 받게 되자 판매자들 대부분이 난리다”라고 호소했다.
판매자들 중에서는 이미 지난해 티몬·위메프 사태를 겪은 판매자도 있다고 한다. 대규모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를 경험한 시장에서는 발란의 설명만으로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렇게 되자 25일 판매자 약 40명은 직접 발란 본사를 방문해 강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발란 본사를 찾은 판매자들은 정산금을 반드시 지급하겠다는 확답을 받고자 했다. 판매자들은 현장에 있던 발란 임원들에게 “지장을 찍어서라도 지급 보증을 해달라”고 했지만 이들이 거절했고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고 한다. 발란 관계자는 “격앙이 되니 혹시라도 불상사가 있을까 싶어 경찰을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발란 측은 직원들의 안전을 우려해 전 직원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발란 붕괴 우려는 온라인상에서도 급속히 확산 중이다.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발란 기업회생절차 준비 증거 파일’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입점 판매자들이 발란 사무실을 찾았을 때 발란 직원 컴퓨터 화면 속 파일들을 사진으로 찍었다고 한다. 이 사진은 발란 판매자 채팅방에서도 확산됐다. 해당 게시물에는 ‘회생 관련 제출 자료’, ‘발란 정산 내역 재검토 공지’, ‘판매자 문의별 대응 메시지’ 등의 파일명이 담긴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게시글 작성자는 “이미 회생을 신청했고 변론 기간이 4월 23일까지로 기재돼 있는 것 같다”며 “이 사실이 맞다면 발란이 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약속은 허울 뿐일 가능성이 크다” 주장했다. 또 작성자는 “최근 투자를 받은 실리콘투와 함께 미리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회생절차 및 폐업 프로세스를 진행 중인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발란 관계자는 “회생과 관련해서 회사 내부에서도 진위 여부를 몰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을 찾았던 판매자 B 씨는 “재무담당자 노트를 봤는데 촬영은 못했다. ‘고의, risk’라고 적혀 있었다”며 “켜져 있는 직원 컴퓨터에 25년 4월 25일 변론기일 준비라는 문서가 있었다”고 말했다. 판매자 C 씨도 “나도 봤는데, 회생 관련 제출자료가 네 장 정도 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발란의 유동성 위기가 커지면서 판매자들은 스스로 방어 조치를 취하고 있고 이를 단체 채팅방에서 공유하고 있다. 한 판매자는 “발란에서 판매를 못할 거 같은 상황이다. 가격만 올려둔 상태로 판매가 들어와도 발송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판매자도 “배송했더라도 아직 구매자에게 도착하지 않았다면 회수하고 환불해줘야 한다. 발란에서 돈을 받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판매자는 “어차피 구매자들도 발란 사이트를 못 믿고 있다. 발란에서 결제 요청을 해도 ‘뭘 믿고 해주느냐’는 말도 들었다면서 ‘나중에 카드 취소라도 확실히 되는 것이냐’라고 한다”고 전했다.

발란은 2024년 9월 말 셀러들에게 에스크로 시스템 도입을 공지했다. 이 시스템은 제3자(에스크로 사업자)가 소비자의 결제대금을 예치한 후 상품 배송이 완료되면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결제대금을 플랫폼 업체가 임의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안전장치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하이픈코퍼레이션이 “발란 정산금 지급과 관련해 인프라만 제공할 뿐 정산자금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혀 판매자 사이에서 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
회사 측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발란 관계자는 “현재 관련 이슈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며 “미정산 문제와 관련한 판매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발란의 경영과 관련한 핵심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최형록 발란 대표는 현재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키우고 있다.
최형록 대표는 28일 오전 판매자들에게 공지를 띄웠다. 최 대표는 판매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정산 지연 문제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 대표는 현재 발란이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재택근무 체제로 정상 운영 중이라며 “혼란을 최소화하고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정산 문제 해결을 위해 “2월 기업가치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고 경영권을 내려놓는 조건까지 감수하며 투자 유치를 진행했다”며 “외부 자금 유입을 포함한 구조적인 변화까지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복원 시나리오를 실현하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 대표는 “이 플랫폼이 무너지면 단지 발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명품 시장 전체의 신뢰까지 흔들릴 수 있다”며 “여러분께서 느끼고 계실 불안과 피로, 그리고 실망감 모두 깊이 공감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 대면 소통을 시작으로, 실질적인 변화와 해결을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공지에 28일 정산일 확정을 기다리던 판매자들은 좌절했다. 판매자 A 씨는 “사실상 끝났다고 본다. 정산일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사과 글만 올려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상황은 발란의 심각한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예정된 일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설립된 발란은 출범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명품 거래 플랫폼 ‘머트발’(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3사 거래액은 최근 고점 대비 약 30% 감소했다. 업계 시장 점유율 1위인 발란은 2022년 6800억 원 거래액을 기록했지만 2023년 4000억 원대로 줄었다. 업계에서는 2024년에 거래액은 전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정점을 찍었던 다른 명품 플랫폼사들도 대부분 거래액 급감을 피하지 못했다.
실질 매출도 급감하고 있다. 2023년 감사보고서 기준, 발란의 매출은 392억 원으로 전년 대비 56%나 감소했으며 영업손실은 99억 원에 달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본구조로, 2023년 말 기준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77억 3000만 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다. 업계 4위였던 캐치패션은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해 지난해 3월 폐업했다.
발란 답변만 기다려야 하는 판매자들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한 판매자는 “잠이 안 온다. 회생 단어를 본 뒤부터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힌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판매자는 “발란 본사에 가서 담당자와 대화하는데 담당자가 명확한 답을 안주고 어떻게든 지급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하기에 ‘공지에는 정산 데이터 해결되면 줄 것처럼 하더니 지금은 왜 상황이 안 좋아서 노력해보겠다’고 말하느냐고 하자 아무 말도 못 하더라”라며 암담해 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