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업 매각 아쉬움, 글로벌 50위 목표 리더십 물음표…“환골탈태 해야” 목소리
하지만 풍산의 주가 상승폭이 다른 방산주와 구리 기업에 비해 높지 않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적게는 서너 배, 많게는 10배 가까이 급등한 기업들도 있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벗고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풍산 주주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지난 2017년 풍산마이크로텍(PSMC)의 장비사업팀을 매각했다는 점이다. PSMC의 장비사업팀은 현재 코스닥 상장사 HPSP인데, 2017년 사모펀드 크레센도에 불과 100억 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에 매각됐다. 그랬던 HPSP가 현재 시가총액은 2조 4000억 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2월 반도체 기대감이 가장 뜨거웠던 당시엔 시총이 5조 원을 넘었었다. 최근 풍산 주가가 올랐기에 망정이지, 지난해 2월만 해도 HPSP의 시가총액이 풍산보다 5배 가까이 컸다.
반도체 장비 사업은 풍산그룹의 미래 먹거리였다. 2004년 그룹 회장직에 오른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반도체 장비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저온·고압 수소 열처리 장치’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국내외 매출처를 공략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 속에 본업에 집중하자는 결정을 내리면서 2010년 PSMC를 매각했고, 뒤이어 2017년 장비사업팀인 HPSP도 매각한 것이다. 두 회사 매각은 다른 의미로 상처를 냈다. PSMC는 하이디스라는 회사에 240억 원에 매각됐는데, 당시 일으킨 사채금융이 문제가 돼 PSMC는 두 달 만에 또 주인이 바뀌었다. PSMC 노동조합은 풍산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거세게 저항하기도 했다. PSMC는 이후로도 수차례 손바뀜을 거치다가 현재는 코스닥 바이오 대형주인 HLB의 자회사 HLB이노베이션이 됐다.
HPSP는 PSMC를 매각할 때도 일단은 들고 있었을 정도로 풍산 내부적으로도 전망을 좋게 봤다. 하지만 2017년이 될 때까지 버티다 결국 매각 결정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매각하자마자 HPSP는 떠오르기 시작했다. HPSP는 2018년 매출이 23억 원이었는데 2019년 251억 원, 2020년 612억 원, 2021년 918억 원 등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올해 연간 매출 예상치는 1944억 원, 영업이익은 993억 원이다.
이의진 KB증권 연구원은 “순이익 예상치가 줄고 있긴 하지만 고객사들이 증설에 나서면서 매출 회복이 기대되고, 중국 파운드리 업체와 첫 계약 물꼬를 트는 등 고객사 다변화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압도적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내놨다. 이 연구원은 “기존에 사용하던 수소를 대체한 플루오린과 암모니아 가스를 사용하는 신규 장비 매출이 기대된다. 플루오린과 암모니아 가스는 메탈 레이어의 계면 결함을 치유하는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압수소를 활용한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도 수율 개선에 기여할 수 있어 수혜가 예상된다”고 했다.
#인적분할 목소리 나오는 까닭
이재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5월 보고서와 언론 기고를 통해 “풍산은 인적분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방산회사들의 주가이익비율(PER)이 20배에 달하는 상황에서 풍산이 7배에 그치는 것은 방산과 구리 사업이 하나의 회사로 묶인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 것이다.
풍산은 실제 2022년 분할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주력 사업인 방산 부문을 물적분할하려 했으나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물적분할 후 재상장하면, 알짜 사업을 자회사로 떼주게 된다고 우려한 것이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인적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면서 “조직 관리 이슈와 자사주 신주배당 금지 등으로 인해 장점이 다소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주주 및 경영진 입장에서 인적분할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풍산의 구리 사업은 신동이다. 신동은 구리와 구리 합금을 가공해 만드는 금속인데 반도체 및 자동차, 건설에 주로 쓰인다.
구리업계 한 관계자는 “풍산은 온수용 동관을 독점했었고, 동전 제작용 소전에서도 독보적인 경쟁력이 있었다”면서 “국내 대표 구리 기업이었는데, LS처럼 제때 전선 등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리사업의 영업이익률은 2023년과 2024년 각각 2.4%, 2.2%에 불과했다. 그나마 올해 들어서는 구리 가격 급등으로 4%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방위산업 역시 다른 방산기업과 비교하면 평가 절하가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풍산의 방산은 탄약 공급인데, 탄약은 공급하는 기업이 많아 기술장벽이 낮다는 인식이 있다. 다른 방산기업이 수출할 때 탄약도 함께 수출하게끔 계약을 맺어 매출이 유사하게 늘어나긴 하지만, 기본적인 경쟁력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폴란드 탄약 공장 설립 추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기술 유출, 수출 감소 우려가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
#류진 회장 아들,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 없어
류진 회장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으로 취임하기 직전인 2022년, 풍산그룹은 2030년까지 방산 부문에서 글로벌 50위권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소·중구경 현대화·자동화, 대구경 성능 개선, 다목적 전투드론 개발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5년 6월 현재, 당시 내놓은 청사진 중 현실화 단계를 밟고 있는 사안은 딱히 없다.
풍산그룹 내부에서는 고위 경영진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국통인 류진 회장은 국내외에 많은 인맥을 갖추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경협 회장직을 맡고 있다 보니 사업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풍산이 최근 몇 년간 방산 초호황에도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것이 이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류진 회장의 아들인 류성곤 씨는 미국법인인 PMX인더스트리에서 임원으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 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철학, 경제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거쳐 골드만삭스 등 금융권에서 일했다.
류성곤 씨는 2014년 아예 미국 국적을 취득, 지분 공시에서도 이름이 로이스 류로 등장한다. 류 씨가 미국 국적을 선택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풍산의 차기 총수가 될 업적을 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PMX인더스트리는 과거에도 수차례 풍산의 자금 수혈로 생명을 연장했던 기업이다. 2016년 한차례 흑자를 냈으나,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22억 6900만 원, 21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PMX인더스트리는 류진 회장의 친형인 류청 씨가 근무했던 회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령 씨와 결혼했던 류청 씨는 박 씨와 이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PMX인더스트리에서만 일했고, 결국 후계구도에서 탈락했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