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사수 뒤 서울·경기 노려, 2018년 악몽 소환 총력전 각오…이준석 한동훈 등 연대 여부 변수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잃었던 2018년 지방선거 때 텃밭인 부(산)·울(산)·경(남)을 한꺼번에 잃었던 악몽이 소환되면서 텃밭 사수를 최우선 목표로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까지 승리 바통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보수 대연합까지 성공한다면 불리한 구도 속에도 해볼 만하다는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모습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으로 인한 탄핵, 대선 패배, 3대 특검의 압박 등 연이은 강펀치를 맏고 그로기 상태에 몰린 국민의힘은 내부적으로 지방선거가 유일한 카운터펀치이자 탈출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웰빙 정당’이라고 비판 받을 만큼 움직임이 느리기로 소문난 국민의힘이지만 조기에 선거 모드를 가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9월 18일 5선 나경원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지방선거총괄기획단을 출범시켰다. 당 지도부는 부산과 대구에 이어 9월 24일에는 대전을 찾았고, 9월 27일에는 서울에서의 대규모 장외집회를 통해 내년 6월 지방권력을 확실히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부선 상행선을 타고 지방선거 사전 민심 몰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텃밭부터 확실히 잡아놔 기초 체력을 충분히 확보한 뒤 격전지로 나간다는 대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공천이 곧 당선’으로 여겨지는 TK(대구·경북)에선 감동 공천을 통해 핵심 지지층 마음을 다잡겠다는 각오다. 부·울·경에서도 ‘경쟁력’을 원칙으로 삼아 후보를 찾겠다고 밝혔다.
TK에선 민주당 후보에 따라 ‘맞춤형’ 선수가 결정될 전망이다. 민주당이 강한 후보를 낼 경우, 급수에 맞는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그동안 TK에서 ‘그 나물에 그 밥’ 공천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이번엔 공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룬다.
부·울·경은 서울과 함께 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가 될 것으로 점쳐지는 곳이다. 특히 부산의 경우, 일부 여론조사에서 박형준 현 시장 지지율이 예상보다 낮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구원투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 들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추진으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민주당 후보로 등판하면 거물급 동원령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뒤를 잇는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 정책인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사안도 당초 어정쩡한 자세에서 탈피, 부산 민심을 고려해 적극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장동혁 대표는 9월 15일 부산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에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관련해 “부산이 더 큰 도약을 이루려면 해수부의 물리적 이전뿐 아니라 제도적·기능적으로 온전한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국민의힘은 TK와 부·울·경 등 영남을 확실히 다진다면 그 여세를 몰아 오세훈 서울시장이 버티고 있는 서울을 지키고 결국 지방선거 승세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 동작을이 지역구인 중진 나경원 의원에게 지방선거총괄기획단을 맡긴 것 역시 그만큼 서울의 중요성을 당이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시각이다. 국민의힘은 오 시장이 메신저가 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의 이른바 ‘오·석 연대’ 추진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서울로 가는 경부선 길목 중 하나인 경기도 역시 탈환을 노린다. 민주당 소속 후보들의 도전장이 쇄도하면서 김동연 현 경기지사 공천이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김은혜 의원을 비롯해 유승민 전 의원 등이 나와도 승산이 있다는 진단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지방선거에 대해 일찌감치 얼리버드 전략을 쓰는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며 “선거는 구도와 인물인데 정권 심판론이 가동되고 지도부가 전례 없이 공정한 공천을 통해 최적의 인물을 동원하면 승리는 국민의힘 차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되새겨보는 2018년 악몽
국민의힘에게 2018년 6·13 지방선거는 지우고 싶은 악몽 중의 악몽이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파면으로 열린 그해 5·9 대선에서 패배, 야당 신세가 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17개 시·도지사 중 대구와 경북 불과 2곳만 사수하는 데 그쳤다. 함께 치러진 12곳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자유한국당은 텃밭 1곳(경북 김천)만 이겼다. 1995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 부활 이래 특정 정당(민주당)이 가장 많은 광역단체장을 따낸 선거였다.
자유한국당이 가장 아팠던 부분은 텃밭의 붕괴였다. 부산, 울산, 경남에서 민주당이 시·도지사를 차지하면서 보수정당의 부·울·경 안방 시대가 무너졌다. 집을 나갔던 옛 동지 바른미래당과의 지방선거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했고, 광역단체장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바른미래당과 함께 자유한국당은 자멸했다.
탄핵 여진에다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뤄지면서 구도가 여당 우세로 흘러갔지만 자유한국당은 선거판을 읽지 못하고 문재인 정부를 향한 ‘닥치고 공격’에만 매달렸다. 견제 야당으로서 민생과 경제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샤이 보수’의 결집에만 기댄 채 네거티브 캠페인으로만 일관했다.
인재영입위원장과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총지휘하며 광역단체장 6곳 수성을 자신했던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 리더십도 선거 국면 내내 흔들렸다. 홍 전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막말에 ‘사천’ 논란에 휩싸이면서 당내 분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선거운동 기간 일부 후보자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를 피하는 ‘홍준표 패싱’ 현상까지 나왔다.
구도가 나쁘면 인물이라도 좋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주도한 공천은 사실상 낙제점 평가를 받았다. 과거 감정이 남아있던 안상수 후보를 떨어트리고 최측근인 조진래 후보를 공천한 창원시장 선거는 물론 최측근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을 내려 보냈던 부산 해운대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졌다. ‘문재인 정부 방송장악 저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천했던 서울 송파을 배현진 후보와 충남 천안갑 길환영 후보도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참패 여파는 컸다. 보수정당은 그 이후 툭하면 비상대책위원회로 가야했고 리더십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2020년 봄 총선에서도 대패했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2020년 총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4전 전패를 기록하는 오욕의 선거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일한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10년 가까이 오랜 여당 생활에 젖어있던 우리 당은 웰빙 상태에 빠져 민주당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며 “민주당은 당시 17곳 광역단체장 판세 분석에서 14곳 승리를 내세울 만큼 판세 분석에서도 앞서 있었는데 결국 분열하고 오만한 정당에게는 주권자가 절대 표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선거였다”고 회고했다.

강성 지지층이 당의 진로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최근 정치권의 ‘뉴노멀’이다. 민주당 못지않게 국민의힘도 이들의 관리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보수 선명성을 내세운 강성 당원들의 지지로 당권을 거머쥔 장동혁 대표 입장에서는 이들이 내밀 ‘청구서’를 모른 체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강성 지지층과 절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장 대표로선 곤란한 처지다.
실제로 이른바 찬탄(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파인 조경태·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은 전당대회 직후인 8월 28일 열린 중진회의에서 장동혁 대표에게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내부 분열 극복을 우선 주문했다. 분열과 갈등 치유가 지방선거 승리의 열쇠라는 의미였다.
이런 연장선에서 적잖은 현역 의원들은 “한 명의 자원이라도 더 필요하며 유용하다”고 보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 등 비주류를 안고 가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상당수 강성 당원들은 여전히 ‘배신자’ 프레임을 가동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된 것은 당내 배신자들 탓도 크고, 향후 선거에서 이들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 씨가 대표적이다.
당내에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보는 것은 강성 당원들에게 ‘찍혀 있는’ 한동훈 전 대표나 옛 식구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행보다. 한 전 대표는 전국 순회를 하면서 낮은 자세로 돌아섰고 내부 총질을 멈췄다. 이 대표도 친정을 향한 공격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정부·여당을 향한 최전방 공격수를 자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정치권의 격언 중에 적의 적은 바로 동지라는 말이 있다”며 “야권 모두가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 세력인데 헤어져서 참패했던 2018년 지방선거를 반면교사로 반드시 삼아야 하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옛말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