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대응 및 출연 시점 갑론을박, 고소·고발전 비화…재난의 정쟁화 우려 고개

10월 2일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냉부해)’ 추석 특집 편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 대통령 부부가 제철 음식으로 요리한 K푸드를 홍보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은 10월 5일 방영될 예정이었다.
국민의힘은 날 선 반응을 내놨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발생 무렵 방송 촬영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주 의원은 10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적 재난을 수습하고 지휘할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스스로 한 말”이라며 “국정자원 화재로 국민 피해가 속출할 때, 대통령은 무려 2일간 회의 주재도, 현장 방문도 없이 침묵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주 의원의 글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라며 “억지 의혹을 제기해 국가적 위기 상황을 정쟁화한 점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여야가 다투는 사이 10월 3일 행정안전부(행안부) 소속 한 공무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공무원은 국정자원 화재로 인해 발생한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 수습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국정자원 화재 관련 조사나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은 일제히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SNS(소셜미디어)에 “공직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국민과 함께 애도를 표한다”며 “국민의 일상을 회복하고 국가가 위기를 극복하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고 노력했던 고인의 헌신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연휴 첫날 이런 비통한 소식이 전해져 마음이 무겁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께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공무원들이 사태 복구를 위해 연휴를 반납하면서 비상근무를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담당 공무원이 사망하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 부부께서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웃으며 박수치는 모습을 비추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주진우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실의 ‘허위사실 유포’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을 올렸다. 주 의원은 “화재 발생 다음 날인 27일 오전 9시 39분 홍보수석을 통해 공지 문자 보냈고, 9월 28일 10시 50분 대통령실 내부 회의한 것이 전부”라며 “도대체 2일간 뭐 하고 있었나. 이것이 ‘잃어버린 48시간’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프로그램 촬영일도 공개했다. 대통령 동선 관련 논란이 커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9월 26일 방미 일정을 마친 후 귀국해 밤부터 화재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다. 27일 국무총리 주재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가 개최됐다. 같은 날 오후 6시 화재가 진압됐다. 28일 이 대통령은 오전 10시 50분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해 대통령실 3실장, 위기관리센터장, 국정 상황실장, 대변인 등에게 상황을 보고받고 대책을 논의했다. 28일 오후 프로그램 녹화를 진행했고, 오후 5시 30분 중대본 회의를 주재했다.
상황은 고소·고발 국면으로 치달았다. 10월 5일 모경종 민주당 의원은 주진우 의원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모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48시간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도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범죄에 이르는 허위사실 유포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주진우 의원은 10월 6일 강유정 대변인과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주 의원은 “피고소인들은 냉부해 예능 촬영 시점을 국민에게 은폐할 목적으로, ‘국정자원 화재 후 냉부해를 촬영했다는 주진우 의원의 문제 제기는 허위사실이다’는 취지의 적반하장식 거짓 브리핑을 했다”고 했다.
#대통령실 대응 적절했나
대통령 부부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다. 국민과 소통하고, 주요 현안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도 2017년 SBS ‘동상이몽’에, 2021년 대선 전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전례도 많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3년 MBC ‘느낌표’에 나와 청소년들의 고민을 청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추석을 앞두고 KBS ‘아침마당’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 부부는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SBS ‘심장이 뛴다’에서 소방 훈련 시연을 관람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당선인 신분으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문제는 대통령실 대응이다. 강유정 대변인은 주진우 의원이 처음 이 문제를 거론했을 때 이 대통령 동선과 일정을 공개했지만, 프로그램 촬영 시점은 말하지 않았다. 주 의원에 대한 법적 조치만 강조했을 뿐이다. 이른바 ‘냉부해 논란’을 대통령실이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촬영 시점도 도마에 올랐다. 국정자원 화재로 행정 전산망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재로 중단된 정부 전산시스템은 647개로 집계됐다가 10월 9일 다시 709개로 정정됐다. 추석 연휴 때는 공무원 220명, 관련 사업자 상주 인원 570명, 기술지원·분진 제거 전문 인력 30명 등 800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이 대통령은 10월 10일 대전에 있는 국정자원 현장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수습 상황을 점검하고, 담당자들의 보고를 받았다. 이날 기준 행정 시스템 214개(복구율 30.2%)가 복구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재준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0월 9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담당 공무원은 목숨을 끊을 정도로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이나 이런 것들은 매우 컸던 사안이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께서 중대본 회의 전에 예능 촬영하고 왔다고 하니 그게 적절하지 않았다고 볼 수가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우 최고위원은 여야가 고소·고발전으로 갈 사안인지 묻는 말에 “그렇다. 다만 문제를 키우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라며 “시인하고 넘어갔으면 될 일”이라고 답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아쉬운 대응’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0월 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대통령실에서 솔직하게 잘 대응을 했었으면 좋았는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의원은 “꼭 이재명 대통령이 하지 못할 일을 하신 건 아니다”며 “K컬처 K푸드 전 세계에 선전하려고 하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대통령실에서 설사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 하더라도 꼭 문제가 그렇게 되느냐 이건 너무 심하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이 나가서 K푸드 홍보도 하고,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도 할 겸 해서 나간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며 “국민의힘이 그만큼 이슈가 궁핍하다는 것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정무 감각이 부족했다. 그래도 이러한 사태가 있으니 다음 명절인 설날에 (방송을) 하든지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재난의 정쟁화’ 우려
국민의힘은 ‘냉부해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0월 9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국정 수습에 앞장서는 대신 예능 출연에 앞장서며 불편함 속에 더 큰불을 질렀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해명에 대해서는 “무도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진실을 덮기 위해 위협과 협박을 가하고 위기를 감추기 위해 선동과 왜곡을 일삼는다”고 꼬집었다.
정청래 대표는 “K푸드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며 “국민의힘은 그 성과를 폄훼하기에 바빴다”고 했다. 정 대표는 “윤석열 때문에 잃어버린 3년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모른 척하더니 국민의 곁으로 다가간 이 대통령의 친근한 모습에는 분노한다”며 “계엄에 침묵한 자들이 예능에는 눈 흘기며 분노한다”고 응수했다.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검찰 개혁 법안,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70개 비쟁점 법안 처리, 10월 중순 시작되는 국정감사 등 굵직한 현안들은 추석 연휴 내내 벌어진 ‘냉부해 공방’에 뒷전으로 밀린 모습이다.
‘재난의 정쟁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앞서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가 나올 때마다 정치적 갈등이 발생했다. 야권은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고, 여권은 ‘야권의 발목잡기’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을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재난 대응 효율성이 저하되고 피해 복구 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는 많은 재난을 겪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국정 자원 화재까지. 그런 것들이 정상화되려면 객관적으로 원인을 규명해서, 규명된 원인을 토대로 재발 방지책을 수립해야 된다”며 “이것이 정쟁화가 되면 네 탓 공방이 된다. 그러면 근본적으로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 (이런 정쟁화가) 반복돼 재난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냉부해 공방’을 계속 이슈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한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계속 공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정감사 때 결국 화재 관련해서 계속 다룰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난의 정쟁화 우려에 대해서는 “(관련 우려는) 공유가 됐다. 그래도 강유정 대변인이 잘못했다. 제대로 설명하면 될 일이지 그것을 고발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 초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