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합작법인 설립 추진에 트럼프 정부 측 호응…영풍 측 의결권 회복 관건, MBK 움직임도 변수

이번 거래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자. 고려아연은 미국 전쟁부(국방부) 및 전략적투자자(SI)들과 합작법인(JV) ‘크루셔블(Crucible)’을 설립하고 지분 9.9%를 출자한다. 이 JV는 다시 고려아연이 발행하는 신주를 2조 8000억 원에 인수해 지분 10.3%를 가진 주주가 된다. 핵심은 숫자다. 상법상 A 사가 B 사 지분 10%를 넘게 가지면 B 사가 가진 A 사 의결권은 행사가 제한(상호주 규제)된다. 최윤범 회장 측은 고려아연의 JV 지분율을 10% 미만인 9.9%로 설계해 이 규제를 피하도록 했다. JV가 강력한 의결권(10.3%)을 가진 ‘백기사’로 활동할 수 있는 합법적 우회로를 만든 셈이다.
최윤범 회장은 지난해 상호주 제한 법령을 이용해 40%에 달하는 영풍·MBK의 고려아연 보유 지분 가운데 25%의 의결권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이 때문에 영풍·MBK의 현재 의결권은 15% 수준이다. 미국 JV가 백기사로 나서준다면 최 회장 측에 우호적인 지분율은 35%에서 45%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중국 견제 위해 고려아연이 꼭 필요한 미국
이번 딜을 이해하는 첫번째 키워드는 미국의 입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의 필수 소재인 희토류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희토류 가공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중국이 수출 통제를 무기화할 경우, 미국의 첨단 무기 생산은 물론 미래 산업 전체가 마비된다. 중국을 대상으로 관세 전쟁의 수위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희토류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최근 우방국을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0월 호주와 대규모 핵심 광물 합작 프로젝트에 합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고려아연과의 합작도 이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미국 내 가동 중인 1차 아연 제련소는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위치한 니어스타(Nyrstar) 제련소뿐이다. 이마저도 시설이 노후화되고 채산성이 맞지 않아 가동이 불안정하다.
고려아연은 이 제련소 부지를 인수한 뒤 기반 시설을 재구축해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고려아연의 독보적인 습식 제련 기술로 아연 광석을 제련하면 안티모니(탄약·미사일 필수재), 게르마늄(야간투시경·광섬유), 갈륨(반도체) 같은 희귀 금속들이 함께 생산된다. 미국이 꼭 필요한 전략 자산이다.
#상대가 미국이라…영풍의 반격 논리 ‘부메랑’ 가능성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즉각 법원에 고려아연의 신주발행을 금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내 공장 건설이 목적이라면 JV가 직접 미국 측 투자를 받거나 차입을 하면 되는데, 굳이 본사 주식을 발행하려는 것은 기존 주주 가치를 희석시키는 배임이고 경영권 방어용 꼼수라는 주장이다.
특히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미국 전쟁부와 맺은 대출 계약에서 제련소 생산법인이 전쟁부에 신주인수권(워런트)을 발행하고, 주당 1센트(14원)에 최대 14.5%까지 회사 지분을 매입하도록 구조를 짰다고 주장했다. 생산법인 기업 가치가 150억 달러(약 22조 원)에 이르면 추가로 지분 20%를 취득할 권리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최대 34.5%의 생산법인 지분이 미국 측에 넘어갈 수 있는 구조다. 생산법인은 JV에 각종 인허가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매년 최대 1억 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영풍 측은 강조했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에 과도한 혜택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JV가 취득할 수 있는 생산법인 지분은 경영권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고, 구체적인 조건(기업가치 150억 달러)까지 걸려 있어 크게 논란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생산법인이 JV에 연간 1억 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한 점은 적정성과 관련해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
영풍과 MBK의 주장처럼 고려아연과 미국의 이번 거래가 미국 측에 더 유리하다면 미국 정부가 이 같은 조건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이번 거래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입장을 한국 법원에 전달한다면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12월 15일(현지시각)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고려아연이 테네시주에 대규모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트럼프 행정부와 계약한 데 대해 “미국의 큰 승리”라며 반겼다.
#영풍, 25% 의결권 되살릴 수 있을까
가처분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변수는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다. 시장의 이목은 영풍(엄밀히 말해 영풍의 100% 자회사인 YPC 등)이 보유한 약 25% 지분의 의결권 부활 여부에 쏠려 있다. 지난해 주총에서 영풍 측은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이슈에 발목이 잡혀 의결권 행사에 제동이 걸렸다. 고려아연이 영풍 지분을 보유(10% 이상)하고 있어, 영풍이 가진 고려아연 지분도 의결권이 제한됐다.
11월 말 기준으로 여전히 고려아연(엄밀히 자회사 Sun Metals Holdings Limited)의 영풍 지분율은 10.3%다. 영풍은 100% 자회사인 YPC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여전히 상호주 의결권 제한에 적용될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연내에 영풍이 고려아연의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떨어뜨리거나, 자회사가 아닌 곳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넘긴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는 있다. 25%의 의결권이 되살아나면 영풍 측 지분율은 40%를 넘어 과반에 근접할 수 있다.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에는 큰 위협이다. 미국 JV의 의결권은 내년 1월 주식 발행 이후부터 발생한다.
#영원한 우군은 없다…MBK 출구 전략 펼칠까
미국 정부라는 강력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홈플러스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MBK파트너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MBK의 고려아연 지분 평균 매수 단가는 약 93만 원대로 추정된다. 현재 주가(약 130만 원대)를 고려하면 이미 막대한 평가 차익 구간에 진입해 있다. MBK로서는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든 못하든 중요한 것은 차익실현이다.
경영권 확보에 성공한다면 고려아연을 통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차익실현을 하면 된다. 문제는 경영권 확보가 어려워질 때다. 영풍은 MBK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우선매수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자금력이 제한적이다. 영풍이 지분을 살 수 없다면 MBK는 더 높은 값을 주는 제3자에게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고려아연이 이를 사들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자사주로 매입해 소각한다면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이익이다.
우군의 이탈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영풍뿐만은 아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역시 안심할 수 없다. 최 회장이 가진 고려아연 지분은 1.67%에 불과하다. 특수관계인 지분을 다 모아도 19%다. 이런 최 회장이 최대주주인 영풍에 맞서 경영권 분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은 현대차그룹, 한화,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의 지지 덕분이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계속 최 회장을 지지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영풍은 여전히 고려아연 지분 35% 이상을 가진 최대주주다. 영풍이 비록 이번 승부에서 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경영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