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S 제소 시 미국 쿠팡 집단소송에 영향 전망…소송 참여 등 주주권 행사 목소리, 국민연금 “검토 중”
[일요신문] 쿠팡의 미국 기관투자자 두 곳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제소를 예고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한국 정부의 차별적 대우로 손해를 입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ISDS 제소로 이어질 경우 미국에서 제기된 증권 집단소송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쿠팡 사태가 통상 문제로 번지면 정보유출 피해자나 투자자들의 피해 구제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쿠팡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집단소송 참여 등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쿠팡의 미국 기관투자자 두 곳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제소를 예고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미국 투자기관과 쿠팡 투자자, 손실 원인 두고 다른 해석”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월 22일 쿠팡의 주주인 미국 투자회사 그린옥스(Greenoaks)와 알티미터(Altimeter)가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절차에 착수하기 위해 중재의향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다.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공정·공평대우의무’ ‘최혜국대우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중재의향서는 청구인이 중재 제기 의사를 상대 국가에 보내는 서면이다. 중재의향서 제출 90일 이후 정식으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한국 정부가 과도한 대응을 하면서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쿠팡이 데이터 추가 유출 방지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했음에도, 한국 정부가 전례 없는 속도와 강도로 행정 권한을 행사해 사안의 심각성을 과도하게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또 카카오페이나 SK텔레콤의 데이터 유출 사고 당시에는 소액의 과징금 등 비교적 가벼운 처분에 그쳤던 반면, 쿠팡에 대해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위협적인 발언이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쿠팡과 인연이 깊다. 그린옥스는 2012년 설립 직후 조성한 첫 펀드 자금의 약 40%를 쿠팡에 투자했다. 2018년엔 적자를 내던 쿠팡에 약 5000억 원을 투자했다. 그린옥스는 2023년 쿠팡이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할 때도 자금 투입과 구조 설계를 함께한 인수합병(M&A) 파트너였다. 그린옥스 창업자인 닐 메타는 쿠팡 Inc. 이사회 멤버다. 알티미터 창업자인 브래드 거스트너는 김범석 쿠팡 의장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동문이다. 그린옥스와 알티미터의 쿠팡 Inc. 지분율은 각각 3%, 0.5%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7일 쿠팡 한국 투자자 30명가량이 쿠팡 Inc.와 한국 쿠팡, 김범석 쿠팡 Inc. 의장 등을 상대로 미국 워싱턴 서부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소장 캡처법조계에서는 ISDS 제소가 현실화할 경우, 이 판단 결과가 쿠팡을 상대로 제기된 미국 증권 집단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미국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허위 발표와 부실 공시로 주가 하락을 초래해 손실을 입었다며 한국 투자자 30명가량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쿠팡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집단소송을 이끌고 있는 이영기 위더피플 법률사무소 외국변호사는 1월 27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ISDS 중재의향서 역시 기관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구조”라며 “같은 사실관계에 대해 두 가지 원인이 양립할 수 없다. 한쪽이 승소하면 한쪽은 패소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른 해석도 있다. 손동후 SJKP 미국변호사는 “집단소송은 쿠팡이 보안 실패와 같은 내부 리스크를 사전에 인지하고도 이를 투자자들에게 은폐하거나 축소 공시했는지를 따지는 반면, ISDS는 한국 정부의 제재가 한미 FTA 규정에 비춰 차별적이거나 절차적으로 부당했는지를 다루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의 규제가 그토록 치명적인 리스크였다면, 왜 이를 사전에 투자자들에게 경고하지 않았느냐는 투자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와 구제 조치도 요청했다. 쿠팡은 미국 투자기관들의 행보와 관련해선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사실상 쿠팡 측이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국가 간 통상 갈등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손동후 미국변호사는 “USTR 청원은 자국 기업 보호 기조를 등에 업고 신속하게 규제 철회나 완화를 압박하는 속도전의 성격이 강하다. ISDS 제소는 한국 정부를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하는 장기전인 법적 방패의 수단”이라며 “(그린옥스와 알티미터의 행보는) 기업의 위기를 국가 대항전의 구도로 전환해 집단소송의 파급력을 희석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주주권 행사 필요 목소리도
국민연금의 집단소송 참여 등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에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 지역본부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국민연금의 집단소송 참여 등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4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약 2181억 원 규모의 쿠팡 주식(지분율 약 1%)을 보유하고 있다. 이영기 변호사는 “쿠팡의 허위 발표와 부실 공시에 따른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제시해 주주 손해를 입증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 원칙)에 따른 주주권을 행사해 집단소송에 참여하면, 쿠팡의 주가 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역시 주주 권한을 행사할 명분이 있고 주주 실익을 찾아줄 수 있는 결과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쿠팡 집단 소송 관련해선 소관부서에서 검토 중으로 세부 내역은 확인해드리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내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쿠팡 지분율은 미미해 집단소송 참여 실익이 불분명하다”며 “해외주식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기준도 아직은 정립 단계”라고 말했다.
김범석 쿠팡 Inc. 의장. 사진=쿠팡 제공국민연금은 쿠팡에 주주서한을 보낼지 여부를 검토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국민연금 내부 관계자는 “해외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주주서한을 보낼 수는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연금에 외교·통상 관련 부담이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정부와의 관계 속에서 운영되는 만큼, 미국 플랫폼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쿠팡 로비 영향 끼쳤나…미국 정부 움직임 '심상찮네'
쿠팡이 미국 기업임을 앞세워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빠져나가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가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려 하자,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은 ‘미국 시민권자인데 국회에 불러도 되느냐’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쿠팡은 암참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대관 능력을 강화한 쿠팡이 미국에도 로비를 하지 않았겠느냐’하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1월 20일 쿠팡 Inc.가 미국 의회에 제출한 로비 집행액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4분기 89만 5000달러(약 13억 원·환율 1450원)의 로비 자금을 집행했다.
지난 1월 23일(현지시각) 김민석 국무총리(왼쪽)가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제이디 밴스 부통령과 면담을 하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총리실 제공미국 정부의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이 미국 시민권자인 데다 쿠팡 Inc. 본사는 미국에 위치하고 있다. 1월 2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JD밴스 미국 부통령이 23일 김민석 국무총리를 만나 쿠팡 등 미국 IT(정보기술) 기업에 불이익을 주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주한 미국대사관 측은 지난해 12월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쿠팡 청문회에 참석해 본국에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1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합의 이행 절차 지연을 이유로 들며 한국산 자동차·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 미국 정치권에선 한국 정부의 쿠팡에 대한 압박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조현 외교부 장관은 1월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국) 국무부와 접촉한 바로는 쿠팡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서 쿠팡을 향한 비판은 커지고 있다. 1월 27일 소상공인연합회는 논평을 내고 “쿠팡은 대한민국 소상공인의 고혈을 착취해 미국 로비 자금으로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