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저촉 피하기 위해 지자체들 공연·축제 중단…일 끊긴 예술인들 알바·부업 뛰며 보릿고개 버텨

육 씨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스트릿댄스에 입문했다. 흥미가 생겨 관련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키웠다. 2018년 동아리에서 함께했던 지인의 요청으로 스트릿댄스 크루에 입단했다. 스트릿댄스를 생업으로 삼게 된 셈이다.
크루의 주요 수입은 지자체나 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이었다. 육 씨는 “문화재단이나 지자체 공지가 뜨는지 직접 찾는다. ‘예술인, 공연 단체 모집합니다’는 식으로 지원 사업이 뜨면 서류를 준비하고, 소개서도 쓴다. 그렇게 해서 선발되면 (해당 지역에 가서)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지원 사업이 있는 곳이 육 씨의 활동 지역이 됐다. 육 씨는 “보통 충청권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데, 전국적으로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며 “이제 공연이 있으면 수도권도 가고 영남권을 가기도 한다.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육 씨 말처럼 예술계는 공공 지원 의존도가 높다. 예술의 공공재적 성격 때문이다. 예술은 개인의 행복 증진, 도시 이미지 개선, 공동체 형성 등 다양한 영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 영향력은 ‘표 가격’과는 무관하다. 표를 구매하지 않는 사람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사회 전체에 주는 이익에 비해 예술가가 받을 수 있는 이익은 낮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와 지자체는 의무적으로 예술인들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화기본법’ 제5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예술 진흥을 위하여 지원하되, 정당한 사유 없이 그 내용에 대하여 간섭하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예술인들은 아트누리, e나라도움,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등을 통해 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선거철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예술 활동에 간섭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생기는 시기다. 공직선거법 제86조 등은 선거일 6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지자체장이 행사 참석이나 홍보물 배부 등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공직선거법 9조 역시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선거 기간 지자체 축제나 행사는 대부분 중단된다. 선거법 위반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지원 사업을 계속할 경우 해당 지자체장이 재선에 도전하기 위해 선심성 사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대선이나 총선 때도 지자체장이 자신이 속한 정당 후보를 지원할 목적으로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법령에 의해 개최하는 행사라든지 그런 예외 조항이 있다”며 “지자체에서는 선거가 임박하면 관할 선관위에 질의를 한다. 구체적인 행사 내용, 개최 가능 여부에 대해 질의를 해서 진행을 한다”고 설명했다.
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육철호 씨는 “축제가 있는 시즌에는 한 달에 10여 건의 공연이 있다”면서도 “선거 기간이 있다 보니 상반기에 잡혀 있는 (공연이) 아예 없다”고 했다.
지역 문화 사업 전문가인 백현빈 조국혁신당 경기도당 청년위원장은 “지역사회 회의도 자제를 하라고 한다. 작은 행사나 프로그램까지도 다 하반기에 하자는 식으로 미뤄지게 된다”며 “제가 문화 거리 활성화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매년 상·하반기 프로그램을 했다. 그런데 올해는 담당 기관인 문화관광재단에서 상반기는 선거 때문에 안 하겠다는 식이다. 가이드라인을 자체적으로 엄격하게 잡는 것”이라고 전했다.
선거 때마다 오는 ‘보릿고개’로 예술인들은 생계에 치명타를 받는다고 했다. 두 달 남짓한 기간을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대다수 예술인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않다. 문체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25년 발표한 ‘예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예술인 1인당 평균 연 소득은 1055만 원으로 조사됐다. 국민 1인당 평균 연 소득의 41.3% 수준이다. 500만 원 미만이라고 답한 예술인도 29.2%였다. 소득이 없다는 예술인은 31%에 달했다.
육 씨는 “잠깐의 기간에도 지원 사업이 끊기면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예술인들이 많다. 전업 예술인은 이런 이슈에 민감하다”며 “그래서 지역 문화나 예술 활동이 경직이 된다”고 설명했다.
예술 기획자인 강 아무개 대표는 “예술단이나 오케스트라나 이렇게 단체로 움직이는 분들은 타격이 좀 크다. 공예나 도예처럼 개인으로 하는 분들은 조금 타격이 덜하다”며 “단체들은 한 번 무너지면 구성원 전체가 다 같이 무너진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예술단 단장이나 예술감독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배우들을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데리고 있자니 본인 타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차상위 지원금을 신청하는 예술인도 있다. 진짜 못 먹고 하니까 생필품을 지원받고 생계급여도 받는 경우도 있다. 지역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예술인들에게 생계 보장은 확실히 되지 않는 시즌인 것이 명확하다”고 했다.
연계 산업들도 타격을 받는다고 했다. 강 대표는 “음향이나 조명을 임대하는 분들도 사업이 아예 안 돌아갈 것”이라며 “(물품을 보관할) 창고세는 세대로 내야 한다. 그 금액이 엄청날 것”이라고 했다.
많은 예술인들이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부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원 음악·연기 개인지도, 학교 강의, 아르바이트 등을 한다고 했다.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들도 개인 지도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육철호 씨는 부업으로 영상편집을 하고 있다.
강 대표는 “저도 소속 배우들에게 계속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부업으로) 나가라고 한다. 찾아가는 문화예술 공연 같은 것”이라며 “여름이나 겨울에는 지역 축제에 포커싱이 돼 있다. 경쟁자가 많지만, 이런 빈 곳을 잘 노리는 분들은 그나마 유지는 되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이 선거철마다 반복되지만, 뾰족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관련 논의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백현빈 청년위원장은 “예술인들의 소득 구조는 소수를 빼고는 다 하위에 있는 편이다 보니까 이분들은 투잡 스리잡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결집된 목소리를 내기가 더 힘든 것”이라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