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부서 신설·KPI 개편 등…선별 역량·리스크 관리가 성패 가를 전망

생산적 금융은 담보 중심의 부동산·가계대출에서 벗어나 첨단산업과 벤처기업, 중소기업 등 성장 잠재력이 있는 부문으로 자금을 공급한다는 게 핵심이다.
5대 금융그룹은 2030년까지 생산적·포용 금융에 모두 508조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KB와 신한이 각각 110조 원, 농협은 108조 원, 하나는 100조 원, 우리는 80조 원 규모의 공급안을 제시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3월 6일 ‘생산적금융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생산적금융 협의체는 본부 경영진 및 본부 부서장으로 구성된 조직과 영업현장 경영진 조직 등 총 3개 체계로 나뉘어 생산적 금융 전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방침이다. KB국민은행은 임직원들이 영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생산적금융 종합 가이드’도 발간해 배포한 상태다.
신한은행도 생산적 금융 실행 조직을 별도로 꾸린 상태다. 최근 여신그룹 내에 ‘생산포용금융부’를 신설했다. 생산적 금융 취지에 걸맞은 기업대출 확대와 여신 상품 설계, 리스크 관리 등을 총괄하는 부서다. 기업금융 강화 전략 일환으로 생산적 금융 전담 조직을 별도로 둔 것이다. 기업대출 확대와 건전성 관리를 함께 챙기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하나은행은 성과 평가 체계를 손보는 방식으로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핵심성과지표(KPI) 항목을 개편하고 가점 제도를 도입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선정한 ‘코어 첨단산업’ 업종에 기업대출을 공급하면 실적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눈에 띈다. 금융권에서는 단순 정책 권고를 넘어 영업 현장의 평가와 보상 체계에 생산적 금융을 반영함으로써 전행 차원의 참여를 끌어내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은행도 현장 지원 체계를 정비하며 생산적 금융 확대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지난 1월 영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업금융 가이드북을 제작해 배포했다. 가이드북에는 기업금융 지원 제도와 정책자금 프로그램, 산업별 금융지원 사례 등이 담겼다. 영업점 직원들이 기업 고객 상담 과정에서 이를 실무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현장 대응력을 높이려는 조치로 분석된다.
농협은행은 신용평가 체계 고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곳은 지난 3월 11일 기업여신 리스크 관리 정밀도를 높이고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에 대한 생산적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자 ‘벤치마크모형’을 전면 개편했다. 이 모형은 기업 비재무 신용평가 체계로, 재무 정보뿐 아니라 매출·매입 거래 정보 및 고용 정보 등 다양한 데이터를 반영해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하는 구조다. 심사자의 정성적 판단을 보완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 배경 가운데 하나로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론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21일 ‘금융업권 생산적 금융협의체’를 출범시켰다. 당시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생산적 금융을 일부 부서의 과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목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심성과지표(KPI) 등 보상체계와 투자에 따른 리스크 부담구조를 포함한 인사·조직·성과관리 체계 전반의 재설계를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생산적 금융 확대가 속력을 더하는 만큼, 리스크도 커지는 점은 숙제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59%로 1년 전보다 0.09%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대출와 중소법인 연체율도 각각 0.72%, 0.78%씩 높아졌다. 생산적 금융 확대도 결국 기업대출 확대를 의미하는 만큼, 담보 위주 심사에 익숙한 은행권 안팎에서는 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담보 의존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기업 담보대출 잔액은 377조 43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1% 증가했다. 정부는 기업의 현금흐름과 기술력, 성장성을 반영한 비담보 대출 확대를 주문하고 있지만, 은행들로서는 사업성 평가 대출 비중이 커질수록 연체율 상승과 자본비율 부담이 함께 커질 수 있어 쉽게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계기업 연명’은 더 큰 문제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연 ‘2026년 경제 및 금융 전망 세미나’에서는 생산적 금융 정책 전환이 자칫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늦출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자금이 성장성 낮은 기업까지 흘러 들어가면 자원 배분 효율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정상 기업과 금융회사마저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한계기업 비중은 약 4%로 추정됐지만 실제 퇴출 기업 비중은 절반 수준인 2%에 그쳤다. 코로나19 이후인 2022년부터 2024년 사이에도 실제 퇴출 기업 비중은 0.4%로 퇴출 고위험 기업 비중 3.8%에 크게 못 미쳤다. 만약 해당 두 기간 동안 고위험 기업이 정상 기업으로 대체됐다면, 같은 기간 국내 투자는 각각 3.3%, 2.8% 늘고 국내총생산은 0.5%, 0.4%씩 더 성장했을 것이란 게 한은의 분석이다.
은행권의 생산적 금융 확대가 그저 목표액을 채우는 데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평가 모델을 고도화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과 부실 위험이 큰 기업을 각각 걸러낼 수 있는 심사 역량이 필수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3월 15일 발표한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은행의 선별 능력 및 인센티브 구조’ 보고서에서 “개별 대출담당자 수준에서 은행 전체 수준까지 여러 차원에서 선별 노력에 따른 적절한 보상과 패널티가 이어져야 생산적 금융의 성공가능성이 커진다”고 내다봤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