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출신 소설가, 스노보드 대회 창설…106권 펴내고 주요 문학상 휩쓸어, 영화·드라마 흥행 기록도

히가시노는 1958년 오사카시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책보다 만화를 더 좋아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소설이었다. 고미네 하지메의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를 접하면서 미스터리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이후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거의 다 읽을 정도로 추리소설에 몰두했다. 대학에서는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1981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덴소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일했다. 직장 생활과 소설 집필을 병행하며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엔지니어 출신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② 화려한 데뷔에도 길었던 무명
등단은 1985년이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밀실 살인 미스터리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듬해 전업 작가가 됐지만, 좀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문학상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책 판매도 신통치 않았다. 훗날 히가시노는 “책이 팔리지 않던 시절에는 사인회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오랜 무명에 마침표를 찍은 작품은 1998년 발표한 ‘비밀’이었다. 사고로 숨진 아내의 영혼이 살아남은 딸에게 깃든다는 독창적인 설정으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았고, 이듬해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나오키상은 일본 대중문학을 대표하는 문학상이다. 하지만 히가시노에게는 유독 넘기 힘든 벽이었다. 여러 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수상이 불발됐고 출판계에서는 “또 히가시노가 탈락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2006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여섯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나오키상을 거머쥐었다. 수상 인터뷰에서 그는 “후보에 올라 상을 받기까지 7년이 걸렸다”며 “떨어질 때마다 친구들과 홧김에 술을 마시며 심사위원 욕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오늘은 누구와 축하하겠느냐”는 질문에 “늘 함께 홧술을 마시던 친구들과 ‘나오키상은 정말 대단한 상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술을 마실 것”이라고 답해 좌중을 웃음 짓게 했다.

히가시노는 정통 미스터리부터 판타지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공계 출신다운 치밀한 논리와 과학적 설정 위에 인간의 욕망과 애증 같은 복잡한 감정을 촘촘히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추리소설은 인간을 그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범인을 맞히는 과정보다 희생, 죄책감, 질투 같은 인간의 감정이다. 그래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추리 요소가 거의 없는 작품도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히가시노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그는 “독자가 읽다가 지루해지는 책은 절대로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어릴 적 책을 싫어하던 아이였다. 그때의 나 같은 아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의 힘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신작을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용의자 X의 헌신’ ‘갈릴레오’ ‘신참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대표작은 영화와 드라마로 잇따라 제작됐다. 후쿠야마 마사하루, 아베 히로시, 기무라 다쿠야 등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그의 작품 속 인물을 연기했다. 현지에서는 “히가시노 작품이 영상화되지 않는 해가 없다”고 할 만큼 일본을 대표하는 흥행 원작자로 자리 잡았다.

히가시노에게 스노보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한 시즌에 30일 이상 설산을 찾을 정도로 푹 빠져 지냈다. 일본 매체 ‘동양경제온라인’은 “히가시노가 ‘지금의 성공은 80%가 스노보드 덕분’이라고 말하며, 스노보드가 자신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전했다. 스노보드는 작품에도 스며들었다. 설산을 배경으로 한 ‘눈보라 체이스’는 지난해 NHK 스페셜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애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8년에는 창설에 참여해 일본 최고 수준의 총상금을 내건 스노보드 대회 ‘스노보드 마스터스’를 만들었고, 운영에도 사비를 보탰다. 이 대회는 일본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표 대회로 성장했다. 당시 스노보드계에서는 “미스터리 작가가 스노보드 대회를 창설했다. 이것이야말로 미스터리”라는 농담이 돌았다.
⑦ 세계 양대 미스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히가시노의 작품은 현재 41개 국가와 지역에서 번역·출간되고 있다. 2012년 ‘용의자 X의 헌신’은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MWA)가 주관하는 에드거상 장편소설 부문 후보에 올랐고, 2019년 ‘신참자’는 영국 추리작가협회(CWA)의 인터내셔널 대거상 후보로 선정됐다. 그는 세계 양대 미스터리 문학상으로 꼽히는 에드거상과 인터내셔널 대거상 후보에 모두 오른 최초의 일본인 작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해외에서도 그의 작품은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매체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일본 문단에 히가시노가 남긴 족적은 수많은 문학상으로 증명된다. 나오키상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은 물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중앙공론문예상, ‘몽환화’로 시바타 렌자부로상,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2023년에는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인 ‘자수포장’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펴낸 책은 모두 106권이다. 일본 내 누적 발행 부수는 약 1억 900만 부, 전 세계 누적 발행 부수는 1억 6800만 부에 달한다. 공교롭게도 오는 8월 5일 출간되는 마지막 작품의 제목은 ‘영원한 기억’이다. 작가가 생의 마지막까지 써 내려간 작품은 제목처럼 독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유작이 됐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