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의 사극 복귀에 첫 OTT 도전까지…배우로서 선택할 수 있는 인물의 폭 넓어져

2003년 개봉한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그 원작소설 '위험한 관계'를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스캔들'에서 조씨 부인은 자신을 연모하는 사촌동생 조원(지창욱 분)에게 먼저 위험한 유혹의 내기를 제안한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이름 '조윤'조차 온전히 내세우기 어려웠던 시대, 조씨 부인은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정숙한 사대부 여인의 얼굴 뒤에 욕망을 감춘 채 사람과 상황을 장기판 위의 말처럼 움직인다. 다만 그의 선택들이 언제나 논리적으로 확실하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보니 연기한 배우 역시 캐릭터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마다 그 안에 감춰진 진짜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대본을 볼 때마다 '이 여자는 무슨 마음으로 이런 행동을, 이런 말을 할까'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제 생각에 조씨 부인은 속으로는 삐뚤어져 있으면서도 겉보기엔 사람들에게 잘 살고 있다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 담긴 캐릭터 같아요. 그렇게 자기와의 싸움을 하며 정숙한 사대부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또 이 캐릭터의 매력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감정을 명확히 이해하기 조금 어려워서 촬영할 땐 마치 숙제하듯이 스스로 해석해보려고 노력했죠(웃음). 감독님과도 이런 지점에 대해 대본 회의를 정말 많이 하면서 고민을 나눴어요."
특히 조원 앞에서 조씨 부인이 가진 복잡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속내를 나누며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였던 두 사람이지만, 어른이 돼 재회한 뒤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을 번번이 삼킨다. 사랑이라 하기엔 질투와 원망이 섞여 있고, 복수심으로 접근하기엔 오래 묵은 애정과 동경이 남아 있다. 서로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었던 사이였기에 오히려 끝내 솔직해지지 못하는 모순이 두 사람의 관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됐다.

'스캔들'은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이후 24년 만에 손예진이 선택한 사극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한복이 잘 어울리는 배우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스타 중 한 명이었지만 정작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사극은 오랜 기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복과 무거운 머리 모양, 분장을 장시간 유지해야 하는 장르 특유의 불편함이 자칫 연기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될까 우려해 일부러 피해왔다는 게 손예진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스캔들'이 주는 흥미는 오랜 망설임을 넘어설 만큼 컸고, 덕분에 시청자들은 아주 오랜만에 한복 차림의 손예진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사극은 너무 매력적인 장르지만 한편으론 한복을 계속 입고 머리 모양도 틀어 올린 채로 있어야 하는 게 너무 불편해요(웃음). 그런 이유로 스스로 연기할 때 집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극을 조금 피해왔는데, '스캔들'은 조씨 부인이 주는 매력에 빠져서 오랜만에 한 번 도전해 볼까 한 거죠. 이십몇 년 만에 사극에 도전한 걸로 생각하면 결과에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또 이번에 입은 한복들이 너무 예뻐서 그 매력에 다시 푹 빠지게 됐고요. 제가 봐도 한복 입은 제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웃음)."

"방송에서 얘기한 게 기사로 활자화된 걸 보니까 영상으로 볼 때완 다르게 '헉!' 하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저도 기사를 보면서 '아, 이거 아닌데. 약간 재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좀 정정하고 싶었어요(웃음). 만약 제 아들이 나중에 커서 연예인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저는 좋지만, 아무래도 이 일이 어려움이 많으니까요. 재능이 있으면 시키겠지만 그렇다고 재능이 없다고 해서 너무 하고 싶어 하는데 막을 순 없고(웃음). 제가 보기엔 아들이 표현력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크리스마스 공연할 때 보니까 혼자만 얼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무대 울렁증이 심한가 봐요(웃음)."
웃으며 꺼내놓는 육아 이야기와 달리 배우의 일을 다시 본격적으로 이어가는 과정은 결코 가볍지만 않았다.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7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데 이어 '스캔들'까지 연달아 선보인 시기는 손예진이 네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시간과 정확히 겹친다. 촬영장에서는 한 작품을 이끄는 주연배우로 집중하다가도 집에 돌아가면 다시 아내이자 엄마의 일상이 기다렸다. 아이를 낳기 전 미처 알지 못했던 생활의 영역까지 직접 경험하다 보니 사람과 감정을 바라보는 시야 역시 자연스레 달라졌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어디서 봤는데 엄마는 육아하는 시간 외에도 늘 아이를 생각해서 뇌를 계속 풀가동해야 한대요. '냉장고에 뭐가 있었지, 기저귀는 몇 개 남았지, 어린이집 준비물은 뭐가 있지' 이런 식으로요. 일을 할 땐 거기에 올인하기도 벅찬데 아이를 돌보는 만큼 뇌를 더 가동시키니까 엄마들은 버거울 수밖에 없죠. 그래도 다행히 네 살까지 키워놓으니 이제 말도 통하고 혼나는 것도 알게 돼서 좀 수월해요(웃음). 힘들어도 아이가 주는 행복은 정말 비교불가하니까, 아프지 않고 가족끼리 함께 소중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정말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웃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모든 엄마분들, 존경합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