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루트 막히자 해외 거주 상류층 망명 늘어나…베이징 북한대사관 지하 비밀감옥 설치 의혹

탈북 루트는 막혔다 열렸다를 반복했다. e-나라지표가 제시한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 현황’에 따르면, 탈북민 입국자 수는 2002년 1142명에서 2009년 2914명으로 폭증했다. 이 과정서 다양한 루트가 개척됐다. 2011년 2706명이던 탈북민 입국자 수는 2012년 1502명으로 급감했다. 이후 탈북민 입국자 수는 감소세를 보였다.
북한 내부 통제와 중국 당국의 탈북민 체포 공조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탈북 시도 자체가 줄어들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루트가 막히자 탈북민들은 몽골이나 동남아를 2차 거점으로 활용해 한국행을 타진했다(관련기사 “수천만원 뒷거래가 유일한 살길” 사선 넘는 탈북민 구출 작전 비화).

한 대북 소식통은 “탈북민 수가 줄어든 것은 탈북 수요가 줄어든 것이 아니고, 루트가 막혔기 때문”이라면서 “코로나19 당시 북한의 강력한 국경 폐쇄는 ‘탈북 프로세스’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들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탈북은 북한 국경을 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전제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완전히 붕괴됐다. 출발선이 사라졌다”면서 “탈북을 선택할 수 있는 계층은 이미 제3국에 체류하고 있는 부류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이들은 북한에서 상류층으로 분류되는 계층”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제3국에 체류하고 있던 북한 주민들은 외부 정보에 노출돼 있었다”면서 “이들에겐 무작정 또 다른 국경을 넘는 선택지 말고도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인식이 존재했다. 현지 대사관이나 정보당국과 접촉을 통해 망명을 타진하는 방식이 더욱 합리적이며 편한 루트라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반적인 탈북과 망명의 차이는 분명하다”면서 “탈북은 안전지대까지 여러 거점을 거치는 험난하고 피 말리는 과정이라면, 망명은 제3국 외교기관이나 정보기관과 협의를 거쳐 곧바로 원하는 행선지로 향하는 ‘하이패스’ 같은 과정이다. 그러나 북한의 감시가 삼엄해질수록 망명 시도가 일반적인 탈북보다 노출될 염려가 더 크다”고 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개막 이후 알려진 ‘북한 대표단 2명 망명 추진설’도 변화한 탈북 프로세스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는 평가다. 북한은 1985년 고베 하계유니버시아드 이후 41년 만에 대규모 방일 선수단을 파견했다. 9월 22일 ‘월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북한 대표단 2명은 한국이 아닌 일본 망명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 일본 정보기관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관련기사 망명설에 신칸센 제한까지…아시안게임에서 드러난 묘한 북일 관계).
대표단 2명이 북한 귀국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 북한 선수단 내부 경계는 더욱 삼엄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망명 추진 결과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0월 4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폐막식 이후에도 관련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망명이 추진 단계에서 중단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가상자산 탈취, 한국 정부기관 해킹 등에 참여했던 배 씨는 한국 망명을 시도하다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중국 측 취조를 거친 뒤 배 씨 신병은 랴오닝성 선양 주재 북한 총영사관으로 넘겨졌다. 이후 그는 베이징 소재 주중 북한 대사관으로 옮겨졌다.
TJWG가 작성한 보고서 ‘북한의 초국가적 인권탄압: 중국’에 따르면, 북한은 베이징 차오양구 소재 북한대사관 영사부 건물 지하에 비밀감옥을 설치했다고 한다. 해외에 파견된 자국민 중 망명 시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이곳으로 유인해 감금한 뒤 북송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현지에서 북한 노동자를 관리했던 관계자는 “대사관 지하감옥에서 적어도 일주일, 또는 한 달간 수사를 진행한 뒤 귀국시켜 처벌한다”고 했다. TJWG는 “북한의 초국가적 인권탄압은 심각한 국제범죄이자 인권침해”라면서 “중국의 사법 주권과 적법 절차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TJWG는 “배 씨의 탈북 가능성이 있는 한 (정보에 대한) 공개를 보류해 왔다”면서 “그가 최근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신원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TJWG가 공개한 북한 해커 관련 내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베이징 북한 대사관 지하의 비밀감옥”이라면서 “망명의 낌새가 보이는 이들을 대사관으로 유인해 감금한다는 점은 북한도 ‘망명 시도 모니터링’을 이미 고도화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기존 제3국 거점 탈북의 경우 국경을 통한 이동이라는 점과 행선지가 한국이라는 점이 공통점이었다면, 최근 북한 주민들의 망명 시도는 행선지가 불규칙적인 가운데 특정 국가의 외교기관이나 정보기관 등 ‘공식 라인’과 접촉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면서 “망명 시도가 노출될 경우 브로커를 통한 탈북보다 리스크가 클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망명 시도와 추진은 결국 한국을 비롯한 제3국 대사관·영사관 또는 정보기관과 접촉을 해야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중국과 러시아 현지에 체류하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 및 사무소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는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 체류하는 북한 주민들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어떻게 하면 망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언제든 마음 속 ‘한 가닥’ 망명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탈북 수감자들이 한국 관련 시설 전화번호와 주소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면서 “현지에서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얼마나 그들이 귀국하기 싫어하는지를 몸소 알 수 있었다”고 했다(관련기사 [단독] 출소 전 독방행…중국 교도소 북한 수감자들 이유 있는 ‘특별대우’).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최근 해외에서 북한 주민들의 망명 시도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못하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는 양상”이라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류층에게 열려 있던 ‘망명 동아줄’도 북한의 삼엄한 경비 속에 끊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북한을 나가고 싶은 주민들의 마음이 존재하는 한 또 다른 탈출 방식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섭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