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손회사 규제, 다중대표소송 감시망 회피 가능…SK하이닉스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가 판단 기준”

SK하이닉스는 지난 10월 1일 입장문을 내고 “이를 ‘중복상장’과 연결해 기존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으나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면서도 “외부 자본 또는 내부 자본 활용 여부는 기존 주주의 경제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금이 있다는 사실이 모든 투자를 자체 자금으로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 IPO 추진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따른다. 프리IPO를 비롯한 외부 자금 유치에 대해 중복 상장 논란이 있으나,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기존 주주도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솔리다임 상장을 위한 구조는 이미 완성 단계다. 현재 지배 경로는 최태원 회장 및 특수관계인에서 SK(주), SK스퀘어, SK하이닉스, 미국 ‘AI컴퍼니’, 솔리다임으로 이어지는 5단 구조다. SK(주) SK스퀘어, SK하이닉스에 솔리다임까지 상장하면 한 지배 경로에 상장사만 4곳이다.
회사는 지난해 10월 인텔 낸드 사업 인수로 출범한 기존 솔리다임 법인을 AI 컴퍼니로 전환하고 낸드·SSD 사업은 신설 자회사 솔리다임으로 넘긴다고 밝혔다. 시장 일각에서는 적자 이력이 있는 법인과 AI 수요로 흑자 전환한 알짜 사업을 분리해 ‘깨끗한 회사’로 신규 투자를 유치하거나 미국에 상장시키려는 포석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이 구조가 국내 규제의 사정권을 벗어나는 효과를 낸다고 본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계열회사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 단 지분 100%를 가진 증손회사만 예외로 둔다. 지주회사 체제상 SK(주)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국내 계열사를 증손회사로 두면 상장 전 외부 자본 유치가 사실상 막히지만, 규정이 ‘국내 계열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미국 법인인 AI컴퍼니와 솔리다임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AI컴퍼니와 솔리다임이 미국 법인인 만큼 상법상 다중대표소송의 범위도 애매하다. 다중대표소송은 모회사 지분 1% 이상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상법은 모·자회사가 합산 50% 넘게 보유한 손자회사도 자회사로 간주해 형식상 솔리다임 경영진도 다중대표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본점이 미국이면 국내 법원에서 다투기 어렵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해외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한 다중대표소송은 학계에서도 이제 막 논의되는 단계로 프리IPO에서 특정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이 주어져도 국내 소액주주가 직접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프리IPO 자금 모집 구조에도 시선이 쏠린다. 솔리다임 프리IPO 전체 규모의 최대 20%를 책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테크브릿지인베스트먼트’는 노종원 전 SK하이닉스 사장이 이끄는 투자사다. 노 전 사장은 2020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인텔 낸드사업부, 현 솔리다임 인수를 총괄했고 2023~2025년 솔리다임 각자대표를 지냈다. 인수를 주도한 핵심 경영진이 계열사 상장 전 투자에 나서는 모양새다. 자금을 누가 대느냐를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법적으로 흠이 없더라도 알짜 사업을 해외로 떼어내 거버넌스 우회로로 활용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기조와도 어긋나는 행보인 데다 세계 최고 수준 영업이익을 이어가는 SK하이닉스의 투자 재원이 부족하다 보기도 힘들다”며 “10월 말 SK하이닉스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주주 보호 방안이 얼마나 구체화하느냐가 시장 신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솔리다임 상장에 대해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경제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사안”이라며 “어떤 방안이든 장기적인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를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고 설명했다.
민영훈 언론인 [email protected]
박호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