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윤석열 재판부 모두 ‘사전 합의’ 불인정…오 시장 1심은 ‘비용 대납 공모’ 인정, 항소심엔 “모른다” 녹취록 변수
두 사건의 재판부 모두 여론조사 실시·제공에 관한 사전 합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오 시장의 1심 재판부는 명 씨의 진술과 자금 흐름 등을 근거로 조사 의뢰와 비용 대납에 대한 공모를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오는 23일 오 시장의 항소심도 선고하는 만큼, 새로 제출된 녹취록과 명 씨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주목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과거 명태균 씨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받은 혐의에 대해 지난 7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이 김건희 씨와 공모해 2021년 6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명 씨에게 총 58차례에 걸쳐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받은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 7월 1심 재판부는 이 가운데 여론조사 14회에 대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명 씨 사이에 여론조사 실시·제공에 관한 사전 의뢰나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명 씨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윤 전 대통령 부부 외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제공했고, 무상 제공을 사전에 합의했다는 증거도 부족하다고 봤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경남 창원시 의창구 후보로 공천받는 데 윤 전 대통령 부부가 관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여론조사 제공의 대가로 볼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치자금법상 재산상 이익의 제공도 인정하지 않았다. 명 씨가 제공한 것은 여론 동향에 관한 정치적 조언과 조력이었고,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하는 수단에 불과했다고 봤다. 조사에 비용이 들었더라도 그 결과를 받은 사람에게 그 비용에 상응하는 재산상 이익이 생겼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반복적 제공과 문자메시지, 공천 관련 정황만으로는 당사자 간 암묵적 합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1심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13일 상고했다.
김건희 씨 사건 재판부도 여론조사 제공에 관한 사전 합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같은 판단을 내렸다. 1·2심 재판부는 김건희 씨가 조사 방식 등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고 명 씨가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결과를 보낸 점을 근거로 들었다. 2021년 7월 김건희 씨가 명 씨에게 “충성”, “감사합니다”라고 보낸 문자메시지도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상승 조사 결과를 축하한 명 씨의 말에 대해 김 씨가 의례적 반응을 보인 것일 수 있어 사전 합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오세훈 시장 사건은 제3자가 여론조사 비용을 실제로 지급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윤 전 대통령 사건과 차이가 있다. 오 시장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 씨에게 여론조사 10회를 의뢰하고 후원자 김한정 씨에게 3300만 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 가운데 5회에 대한 2100만 원의 대납을 인정해 벌금 1000만 원과 추징금 21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오 시장과 명 씨가 만난 뒤 여론조사가 진행된 점,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조사 과정에 관여한 점, 김 씨의 송금 내역이 조사 경위와 맞물린 점 등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또 김 씨가 오 시장 측 요청 없이 명 씨에게 거액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제3자의 비용 대납을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나머지 5회는 의뢰와 대납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항소심의 핵심은 1심이 인정한 정황만으로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비용 대납을 인식·공모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됐느냐로 정리된다. 앞서 김건희 씨와 윤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여론조사 제공에 관한 사전 합의가 인정되지 않은 만큼, 오 시장 사건에서는 실제 송금과 선거캠프의 관여가 의뢰 및 공모관계를 입증할 수 있을지가 쟁점이다.
항소심에 새로 제출된 명 씨와 김 씨의 통화 녹음파일이 1심 판단을 흔들 수 있는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2021년 3월 김한정 씨와 명 씨의 통화 녹음파일에 따르면 명 씨는 김 씨에게 “오세훈이는 몰라요. 모르고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오 시장 측은 이를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의뢰하지 않았고 비용 대납도 몰랐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반면 명 씨는 녹음파일이 제출된 이후 재판부에 진술서를 내고 오 시장이 몰랐던 것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전략이었다고 반박했다.
녹취록에 대한 명 씨 해명의 신빙성을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도 변수다. 앞서 김건희 씨 사건 재판부는 명 씨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장한다며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오 시장 1심 재판부 역시 명 씨 진술 중 과장되거나 일관되지 않은 부분은 배제하고 객관적 증거와 부합하는 내용만 인정했다. 두 재판부 모두 명 씨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만큼 항소심에서도 명 씨의 해명이 녹취 내용과 다른 객관적 증거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뤄진 윤 전 대통령 부부 판결이 오 시장 항소심에 미칠 영향을 두고 법조계 의견은 엇갈린다. 원영섭 변호사(전 국민의힘 미디어법률단장)는 “명태균 씨는 정치인에게 접근해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해온 것으로 평가되는 인물로 이를 위해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무상으로 여론조사가 제공된 것으로 판단되며, 오세훈 서울시장은 김한정 씨가 대납을 진행한 것일 뿐 두 사건을 다르게 평가할 이유가 크지 않다”며 “오 시장이 비용 대납을 인식하고 관여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윤 전 대통령과 다른 판단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윤미 변호사(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는 “오 시장 사건은 실제 비용 지급과 여론조사 관여 정황이 존재해 윤 전 대통령 사건과 다르다”며 “오세훈 세 글자를 지우면 사실 이 돈이 건너갔던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 김한정 씨가 비용을 지급한 경위 등을 고려하면 윤 전 대통령의 무죄 판결이 오 시장 사건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철준 기자 cj512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