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큰 ‘호랑이’ 러브콜 응할까
최근 정가에는 안철수 전 교수와 박원순 시장 연대설이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안 전 교수가 지난해 9월 13일 서울시청을 방문해 박원순 시장을 만나는 모습. 사진제공=서울시청
그러나 두 사람의 입지는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안 전 교수가 대선 후보로서 일찍 자리매김을 했지만 박 시장도 차기대선이라면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안 전 교수의 양보에 힘입어 당선된 박 시장이 이제는 홀로서기가 가능한 ‘호랑이’가 된 것이다. 야권 진영의 잠재적 차기 대선 후보로 손꼽히는 두 거물급 정치인의 연대는 과연 가능한 시나리오일까.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안철수 전 교수로부터 출마 전 의사를 밝히는 전화를 받고 “‘잘하셨다’고 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안 전 교수가 지난해 대선 직후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에도 줄곧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국내 정치 현황과 관련해 정보를 교류하며 연락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안 전 교수의 행보에 최근 서울시장 재선 도전 의사를 밝힌 박 시장의 ‘변수’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 전 교수가 내년 지방선거에 박 시장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안-박 연대론’이 급부상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안 전 교수에게 있어 내년 지방선거는 본인과 신당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안철수 전 교수가 정계에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오는 4월과 10월 재보선보다는 내년 지방선거가 더 중요하다”며 “안 전 교수가 전국 무대에서 자기 힘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기회가 내년 지방선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내년 지방선거는 여야 대결 이전에 ‘야야대결(안철수 진영-민주통합당)’이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만약 안 전 교수가 신당 창당 후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전한다면, ‘안풍은 태풍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안-박 연대론’이 급부상하고 있는 데에는 서울시장 자리가 결국 지방선거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지역이라는 이유가 크다. 실제 정계에서 서울시장은 대권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공직으로 바라볼 정도로 중요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홍형식 소장은 “서울시장은 나머지 지방자치단체장들 다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인천의 송영길 시장이 재선된다고 한들, 서울시장과 비교가 되겠느냐”고 설명했다. 안 전 후보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 바로 서울이라는 얘기다. 이어 그는 “지금 박 시장의 서울시장 자리는 애당초 안 전 교수의 후보 단일화 양보를 통해 얻은 자리다. 현재로서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박 시장의 신당 입당 등 두 사람의 연대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전 교수로서는 자신이 양보해 키운 ‘호랑이’를 품에 안아야 성공할 수 있는 셈이다.
내년 지방선거 선전을 위한 안 전 교수의 필요성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박 시장 입장에서도 안 전 교수와의 연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컨설턴트 이재관 마레컴 대표는 “만약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신당이 들어섰다고 치자. 이 신당이 잘만 정비된다면, 박원순 시장도 현재의 민주통합당 당적과 안철수 신당의 합류를 두고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안-박 연대론’의 전제 조건으로 민주통합당의 분당 등 야권 정계개편을 꼽았다. 김 대표는 “만약 민주통합당이 올해 10월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야권 정계 재개편이 불가피하다. 그렇게 되면, 박원순 시장도 민주통합당을 나와 안 전 교수에게 갈 수밖에 없다”며 “어찌 됐건 박 시장은 현재의 민주통합당보다 안 전 교수와 심정적으로 가까운 사람이다. 서울시장 당선 직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것은 전체 의석의 80%에 달하는 서울시 의회의 사정 등 전략적 필요에 따라 선택한 카드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김 대표는 “다만, 지금 당장 박 시장이 안 전 교수에 손을 내밀 상황은 아니다. 아직 안철수의 바람은 3m 반경의 소용돌이에 불과하다. 정계개편이라는 거대한 태풍이 불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일각에서 안 전 교수와 함께 야권에서 차기 대권 유력 주자로 꼽히는 박 시장이 다음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둘 경우, 안 전 교수와의 연대를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의 전문가들 모두 “안철수와 비교해 박원순은 대권에 나설 재목이 되기에 부족한 주자”라고 입을 모았다.
홍형식 소장은 “박 시장은 아직 대권 주자로서 이미지 메이킹이 덜 된 인물”이라며 “대선에 나서기엔 약점도 너무 많다. 특히 과거 참여연대 등 본인이 참여한 시민단체 때문에 종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본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재관 대표 역시 “박 시장은 안 전 교수의 대타라는 시선이 강하다. 서울시장도 결국 안 전 교수의 힘으로 된 자리지 본인의 힘으로 오른 자리는 아니다”라며 “박 시장 스스로도 여론조사를 돌려보며 본인과 안 전 교수의 지지율을 비교해 볼 거다. 스스로 대선보다는 서울시장 재선에 만족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야권 주요 인사들은 ‘안-박 연대론’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통합당 김부겸 전 의원은 “호사가들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지방선거는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무리다. 그 문제는 어찌 됐건 내년 선거 구도를 더 살펴봐야지 않겠느냐”라고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안 전 교수의 최측근인 금태섭 변호사 역시 이에 대한 질문에 “박원순 시장과 연대를 해야 한다, 혹은 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얘기는 있겠지만 두 분이 귀국 전 연락만 취했을 뿐 그런 논의는 한 적도 없고 특별한 움직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지금은 노원병 보궐선거에 집중할 시기다. 박 시장과의 연대 문제보다는 현재 우리의 틀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먼저”라고 밝혔다.
박 시장의 ‘복심’으로 지난 서울시장 재보선 당시 박 시장 캠프 총괄기획단장을 활약하다, 지난 대선 안철수 캠프에서 대외협력팀장으로 합류한 바 있는 하승창 싱크카페 대표는 “물론 두 사람의 당적은 다르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아직 그런 전망을 하기에는 이른 시기다.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